수필| 동상례(東床禮)란 – 이병생 합천문화원 향토사소장
가야면지를 만들면서 축문을 어지간한 것은 모두 발췌하여 기록하였는데 동상례가 생각이 나서 타 면에서 발간한 면지에 수록되었는지 찾아보았으나 한 곳도 기록이 되어있는 곳이 없다. 자료를 전부 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내가 장가 갔을때 동상례문 썼던 기억은 있는데 전문만 생각이 나고 세월이 오래되어 기억할 수가 없어 지역의 한 선비 어른에게 부탁을 하였다.
연세가 높은 분들은 옛날 장가 갔을 때 거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동상례라는 문구 자체도 처음 들어 볼 것이다. 즉 동상례란 장가간 새신랑이 처갓집에서 혼사 이튿날 음식(돼지)을 준비하여 처갓집과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월이 흘러갈수록 옛 풍속은 모두 잊어져 버리고 지금 사람들은 결혼식을 해도 신혼여행 가버리고 하면 재행 걸음시에도 동상례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 이젠 아주 먼 옛이야기로만 남는다. 연필을 들었으니 옛날 신랑 다루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옛날에는 결혼식 후 방으로 들어가서 신랑과 신부를 상대로 집안의 친척들이 모여 작란을 치고 신랑의 실력을 점검하는 행위를 당연히 했다.
신랑과 신부를 상대로 작란을 치는 것은 옛날에는 결혼이 오직 중매로 이루어진 관계로 두 남녀는 사실상 초면인 것이다. 그 옛날 남녀의 만남이 극도로 제한된 사회에서 초면의 남녀가 만난다는 것은 상당히 쑥스럽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그리하여 신랑과 신부를 상대로 작란을 하여 서로가 빨리 친숙한 관계가 되도록하기 위하여 작란을 심하게 쳤던 것이다.
이러는 과정에서 동상례라는 것을 들먹여 신랑을 다루었다.
동상례(東床禮)란 여러 가지 전해지는 말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신랑이 한턱 내어 처갓집이나 마을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을 이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동상례란 신랑이 야무지면 어느 정도 면죄부(免罪符 : 죄를 면해주는 문서)를 주지만 사람이 야무지지 못하면 텀터기를 씌우는 나쁜 풍습이 있었다. 옛날 어느 큰 마을에서 그 마을의 제일가는 부자집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신부는 마당에서 혼례식을 올린 후 방으로 들어가 집안 친척들이 모여 일반적으로 행하는 신랑 신부를 상대로 작란이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신랑이 변변치 못했다. 옛날에는 오직 중매쟁이의 말에 의하여 혼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장본인인 신랑이나 신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일반적인 예이다. 이래서 작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신랑과 신부는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옛날 결혼식에는 첫날밤에 신랑과 신부가 술을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라고 술상을 하나 차려놓아 준다. 이에 이들 신랑 신부도 술상 머리에 단둘이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신부가 보기에는 신랑이 아주 잘생기고 지식 또한 풍부할 것으로 보이는데 신랑은 여전히 무식한 짓만 하였다. 그리하여 신부는 갑갑한 나머지 공부는 어느 정도 하였는지 물었다. 그런데 대답은 청천벽력이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하나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는 천자문도 배우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신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자기 남편이 무식한 것도 큰 문제이지만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신랑을 다룰 것인데 그때 신랑이 무식하여 자기 부모들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을 것을 상상하니 기가 막혔다. 그렇지만 신부의 눈에는 분명코 자기 신랑이 유식하고 똑똑한 걸로 비쳤다. 신부는 신랑에게 며칠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신랑을 다룰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신랑은 안 배운 공부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태평세월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부는 갑갑한 나머지 오늘부터라도 천자문을 배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신랑은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신랑 신부는 천자문 공부에 밤을 세웠다. 옛날 결혼 풍습에 재행(再行 : 신혼부부가 결혼하여 시집으로 갔다가 며칠후에 처갓집에 오는것)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 신랑 신부는 앉은 재행을 해서 그리하여 밤마다 신랑 신부는 천자문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랑은 기억력이 억망이어서 천자문 첫머리 넉자 천지현황(天地玄黃)도 마스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동안에 내일에는 마을 청년들이 몰려오는 날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신부는 한 방편으로 천지현황에 대한 적합한 물건을 보여주며 기억하도록 하려했다. 하늘을 가르키면서 하늘천(天) 또 대패침(곪은 곳을 따는침) 보여주며 이것을 종기따는 것이니 “따지”실패를 보여주며 이것은 실을 감는 것이니 “감을현”마침 신부의 윗저고리가 노랑색이어서 “누르황”이렇게 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하고 보니 신랑은 신부가 보여주는데로 하늘을 보여주면 하늘천, 대패침을 보여주면 따지, 실패를 보여주면 감을현, 노랑저고리를 가르키면 누르황이라고 잘도 대답했다. 이렇게 공부를 한 후 신부는 “내일 청년들이 몰려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을 것이니 당신은 큰 방문을 보고 앉으라”고 했다. 그러면 자기가 구경꾼들의 뒤에 서서 물건을 차례로 보여 줄것이니 천자문을 읽으라고 했다. 과연 그날이 와서 마을 청년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좌정했다. 신랑도 약속대로 큰방 문을 향해 자기 풍채를 뽐내고 있었다. 이렇게 모인 신랑과 부락 청년들이 서로가 지식자랑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청년들이 신랑은 공부를 어느 만큼 했느냐는 이야기에 도달했다. 이에 신랑은 당당하게 요사히 신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고 말했다. 좌중에 모인 청년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신부에게 배운 천자문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청년들은 천자문을 한번 읽어 보라고 했다. 신랑은 당당히 천자문을 읽기 시작했고 신부는 불안하지만 그래도 신랑을 믿고 약속대로 물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신랑은 당당하게 하늘천은 어디 가고 뚫을천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박장대소였다. 신부는 포기하지 않고 대패침을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딴다는 따지는 어디 가고 쭉 찢는다고 해서 찢을지하지 않은가 다음은 실패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감는다는 것은 어디 가고 돌릴현 하는것이었다. 좌중은 오히려 명청해 버렸다. 신부의 가족들은 어떻겠는가 신부는 최후로 자기의 노랑 저고리를 가르켰다. 신랑은 저고리 황하는것이었다. 이렇게 만사는 끝났다.
신부는 숨어 버렸고 마을 청년들은 수근거리며 자리를 떳다. 신부의 부모들은 돼지를 잡는다. 음식을 만든다. 법석을 떨며 마을 사람들의 입막음에 열중하게 되었다. 신랑은 자기방에 자연스럽게 혼자 남게 되었다. 그래도 신부는 신랑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에 10살짜리 자기 동생에게 손님을 혼자 둘 수 없으니 신랑에게 가서 같이 놀아라고 했다. 신랑은 어린 처남과 함께 놀면서 시렁위의 병풍을 가르키면서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니 처남은 백병풍(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는 병풍)이라고 했다. 이에 신랑은 처남에게 붓과 벼루 그리고 먹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했다. 어린 처남은 자기 누나에게 와서 전했다. 신부는 직감적으로 무엇을 느꼈다. 시집가 쓰려고 새로 장만해둔 벼루, 붓, 먹 그리고 연적에 물을 담아 동생에게 보냈다. 조금 있으니 동생이 달려오면서 작은방 손님이 병풍을 다 버린다는 것이다. 신부는 직접 가지는 못하고 아버지에게 알리라고 했다. 신랑은 병풍에 풍채있게 시 두 줄을 써놓고 누워 있었다. 신부의 아버지는 체면 돌볼 겨를도 없이 방에 들어가 병풍을 안고 나와 마을 사람들이 대접받고 있는 마당으로 내 던지며 “이것이 내 사위다”라고 했다. 그 병풍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맹호출림교토묘(猛虎出林狡兔瞄) 용잠천수세하침(龍潛淺水細瑕侵)이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을 해석하면 “용맹스런 호랑이가 숲 밖으로 나오니 교만한 토끼가 한판 붙자고 덤비고 용이 얕은 물에 잠기니 조그만 새우가 물어 뜯는다” 즉 이말은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이 분수없이 날 뛴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이 일이 있은후 그마을에서는 그릇된 동상례라는 풍습이 없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