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난리록 (壬癸亂離錄) (2) – 淸隱전호열
▲9일 五邑(5읍)의 軍隊(군대)가 館洞(관동)뒤 荊田里(형전리)에 모여서 討賊(토적)할 期日(기일)을 約束(약속)하고 高靈(고령) 居昌(거창) 陜川(합천) 星州(성주) 軍(군)이 모두 모였다. 그때 賊兵(적병)이 星州(성주)로부터 때마참 玄風(현풍)쪽길로 내려오려 하거늘 初10日 새벽 일찍이 五邑兵(5읍병)과 더불어 豆里谷(두리곡)에 伏兵(복병) 하였더니賊(적)이 내려오지 아니하므로 兵士(병사)를 이끌고 돌아 오다 因(인)하여 左右(좌우)와 中衛(중위)를 나누어 茂溪(무계)의 賊(적)을 討伐(토벌)하여 大捷(대첩) 하였다.
▲11日 낮에 郡(군)으로 돌아 오다. 高陽(고양) 星州(성주)의 賊(적)이 結陣(결진)하여 서로 바라다봄이 거의 萬餘(만여)나 되는데 郭將軍(곽장군)이 兵(병)을 거느리고 高陽(고양)으로 向(향)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同心(동심)하여 討伐(토벌) 하기로 盟誓(맹서)하였다.
▲14日 高陽郡(고양군)과 더불어 右道亞使(우도아사)의 令(영)을 使用(사용)하였다. 15日 五邑(5읍)의 兵(병)과 더불어 星州(성주)에서 伏兵討伐(복병토벌)하여 이를 쳐 부셨었다. 그때 官舍(관사)와 倉庫(창고)가 모두다 잿더미가 되어버렸으니 外面(외면)의 穀食(곡식)을 村家(촌가)에 別途(별도)로 쌓아 놓도록 했다.
▲10月에 沙漠(사막)에다 留陣(류진)하였다. 13日 察訪(찰방)이 스스로 가서 皇帝(황제의 勅文(칙문)을 받들고 陣(진)에 도착하였다.
▲癸巳年 正月 15日 아들 雨 및 軍官數人(군관수인)이 臨時職 郡守(임시군수)와 內面義將(내면의장) 및 金瑛과 더불어 金沔大將(대장)을 娥林陣所(아림진소)로 찾아가봤는데 星州召募官 (성주모관)李弘宇 및 裵應袞과 高靈(고령)의 李得春과 全永期와 더불어 모두 來會(내회)하여 함께 機務(기무)를 謀議(모의)하였다.
▲17日 金大將(김대장)을 따라 宜寧(의령) 嘉禮里(가례리)에 留陣(류진)하였는데 昌原府使(창원부사)張義國 熊川縣監(웅천현감) 李宗仁과 宜寧縣監(의령현감) 朴思齊 義兵左將(의병장) 郭再祐 義兵右將(의병장) 鄭仁弘과 參謀(참모) 郭䞭과 文緯가 모두 있었으며 牧使(목사)吳澐 또한 와서 조용히 일을 議論(의논)하였다.
▲19日 三嘉縣(삼가현)을 지나가다가 本縣(본현)의 원과 尹鐸과 尹銑 丹城(단상)의召募官(소모관) 權緯와 主議(주의) 權世春과 靈山(영산)의 李厚慶과 李道孜와 더불어 모두 와서 만나다.
▲26日 郡으로 돌아오면서 中途(중도)의 賊(적)의 動態(동태)를 듣고 箕城(기성)의 賊(적)이 明(명)나라 軍(군)에 敗(패)하여 그 歸路(귀로)를 끊으려는 謀議(모의)를 하였다. ▲2月2日 明兵十萬(명장10만)이 遼東(요동)을 출발 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12日 宣傳官(선전관) 李受訓이 聖旨(성지)를 받들고 來到(내도)하여 告(고)하기를 明兵(명병)이 平壤(평양)에서 이기고 餘賊(여적)이 무너져 달아났으니 中途(중도)에서 遮斷(차단)함으로 죽여 없애기로 期約(기약)하자는 뜻을 전하였다.
▲缺日(결일) 朝廷(조정)에서 沙斤道察訪(사근도찰방)을 除授(제수)하니 金誠一과 金宇웅 등이 片紙(편지)를 보내 일어서기를 勸(권)하였고 監司(감사)가 또한 符(부)를 옮겨 赴任(부임)을 재촉하였으나 스스로 年老(년노)함으로 仕進(사진)함을 원치않았으며 歌辭(가사)를 지어 比喩(비유)하기를 五十에 비로소 出家(출가)함에 比較(비교)하여 끝내 不就(불취)하였다.
▲20日 明兵(명병)이 約法十章(약법십장)을 만들어 備邊司(비변사)가 3번을 관여하여 巡察(순찰)로부터 陣中(진중)에 이르도록 시켰다.
▲3月 12日 金沔 大將(대장)을 哭(곡)하다. 그때에 軍糧(군량)이 부족함으로 兵(병)과 屯田(둔전)으로 나누어서 한편 守備(수비)하고 한편 耕作(경작)하였기에 時機(시기)를 잃지 않았다. ▲5月 4日 金誠一 哭(곡)하다. 7月에 朴進士(박진사)와 李直講 彦英이 와서 나라의 運命(운명)이 근심스럽다고 어려움을 함께 論(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作別(작별)하였다. ▲8月에 明將(명장) 李如松 提督(제독)이 장차 還軍(환군)하고 朝廷(조정)에서 和議(화의)를 주장하니 憤(분)하고 歎息(탄식)을 이기지 못하여 詩(시)를 지었다. 9月에 듣기로 大駕(대가)가 海西(해서)로부터 서울로 廻鑾(還宮)하시다.
▲10月에는 年老(년노)하고 賊勢(적세)도 조금 늦춰 졌으므로 兵事(병사)는 內面義兵將(내면의병장)과 아들 雨(號 睡足堂)에게 부탁하고 古里(고리)로 돌아와 살았다. (끝)
참고문헌: 탁계 선생 문집(濯溪 先生 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