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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반세기 전 어느 전경의 신병 훈련실화 (5)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25연대를 향하여 출발

1974년 10월 4일 금요일이다. 아침을 먹고 나니, 내무반장이 우리들은 오늘 훈련소 25연대로 가게 될 것이므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 소리에 신체검사 결과 훈련소에 같이 가지 못하고 귀가 조치된 장정들은 “다음 기회에 꼭 오겠다.” 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귀가(歸家) 장정들과 훈련소로 가게 될 360명 우리들이 무슨 차이가 있기에 이런 희비가 생긴단 말인가? 나는 귀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떠날 준비를 마쳤다.
준비라곤 하지만 내 몸통 하나가 다이므로 남은 것은 돈 보관이다. 경험에 의하면 돈 분실 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 “훈련병들은 훈련 기간에 돈을 직접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돈을 구내매점(PX)에 맡기고 대신 돈표와 교환하라.” 는 것이다. 나도 쓰다 남은 몇 푼을 맡겼다. 10시쯤이 되자, 훈련소의 중대장, 소대장, 조교들이 나타났다. 눈이 보일 듯 말듯이 모자를 내려 쓴 채 “차려, 열중 쉬어”를 반복하더니, 몇 명이 “줄을 잘못 섰다” 는 이유로 우리들이 보기에도 아찔할 정도로 무참히 짓밟는 것이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다. 듣긴 하였지만 아직 그렇게 맞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긴장이 고조되며 정신이 번쩍 든다.
곧이어 키 크기 대 중 소로 줄을 세우고는 피복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장정들은 옷이 크고 작고, 맞고 안 맞고는 애시 당초 안중에도 없다. 몸에 걸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훈련화도 지급 받았다. 푸른 제복을 입은 장정들은 서로 어색한지 싱겁게 웃는다. 저승사자같이 지켜보는 조교들 앞에서 우리는 천리 길을 단숨에 달렸던 조자룡 같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입고 왔던 옷과 신발은 모두 소포로 싸 집으로 보내버리고, 팬티에서부터 머리까지 새로운 모습으로 변장했다. 그리고 11시 정도가 되어 우리 장정들은 조교의 구령에 따라 수용 연대를 떠나 드디어 25연대 훈련장으로 향했다. 세면 백(bag) 하나만 들고 오른 손은 90도를 유지하며 간간이 구보도 하며 4㎞가 넘는 길을 구령에 맞추어 걸어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씩씩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긴장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몇몇 장정들은 처음 신는 훈련화로 발뒤꿈치가 까져 걷지를 못했고, 소변은 무조건 참아야 했다. 들판은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있고, 강아지들은 자유롭게 뛰고 있는데, 지나는 행인들은 너무나 대조적으로 무감각하게 우리들을 대한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가 싶은 시점에 논산훈련소 정문을 통과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주문처럼 말했다.
“언젠가 교육이 끝나는 날이 오겠지? 그때쯤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저 코스모스도 떨어져 없겠지! 참고 또 참아 견딜 것이야!”
이윽고 전반기 교육을 받을 25연대에 도착했다. 우리 3개 중대 360명은 120명씩 묶어 한라산 중대, 지리산 중대 그리고 설악산 중대로 구분했다. 나는 지리산 중대로 분류되었고, 각 중대는 다시 1개 소대 40명씩 다시 10명씩 4개 분대로 편성되는데, 난 1소대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