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 (38) | 조카와 나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첫 번째) – 권길홍 수필가
너도! 어리석다. 조선조 역사에서 지배계층이라는 왕과 양반 중 세종대왕과 이순신 또 정약용선생 외의 몇몇을 제외한 사람 중 백성을 위하고 사랑한 놈들이 있었나? 지 권력, 지 가문, 지 당만을 위한 지배계급들인데 그 영향을 받은 게 자유당 민주당이고 지금의 공부한 고위층으로 있는 지배계급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태연히 자기 자식 군대에 안 보내도 되는 사고로 살았다. 명색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 서울시장까지도 그리했다. 이런 사회였지만 박정희는 이 백성의 배고픔에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신 분이다. 너희 젊은이가 하는 사고나 행동이 그분이 살았을 때 보인 박정희를 미워하고 반대한 어리석은 내 꼴을 보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하다. 왜 그리도 부분만 보고 아는 체 하려는지 전체를 보고 종합적 판단을 해라.
역사는 우리가 아는 일부분만으로 단정지을 수가 없는 장대하고 엄청난 대하드라마에 한두 개의 사건 사고로만 보려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되는 건데 이 땅의 얄팍한 지식인들이 하는 그 버릇을 너는 배우지 마라. 네가 울면서 이 조국을 욕하고 저주해보았나? 가난이라는 게 얼마나 더러운지 얼마나 지긋지긋한 고통인지 모르는 가벼운 지식인들을 경멸해라. 마치 박정희를 욕해야 제가 잘나 보이는 집단들이 바로 그런 부류다. 월남전 참전해서 박정희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 5천명이 넘는 젊은이가 피 흘리고 죽어갔고 몇만명이 아직도 고엽제로 힘들어하는데 그 박정희는 왜 그리도 악착같이 참전을 주장했을까?
일제 삼십육년의 지배와 청일전쟁 그 이전부터 일본은 이 땅을 지배했고 그리 치면 오십 년 넘은 세월 속에서 한국의 미래에 절망한 한 젊은이가 일본육사에 간 거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인가. 오히려 양반이라는 인간들이 편하게 사는 데에만 맛을 들이거나 제 한 몸만 잘 살려고 캠브릿지대학의 영국이나 일본과 같은 외국으로 유학간 그런 사람이 잘한 건가.
또 이 땅의 얄팍한 역사학자들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식민사관이라는 괴물은 일본만 욕하면서 제 잘못은 모른 체하고 제 조상의 무능도 덮으면서 이 땅의 무지렁이 백성을 수탈한 가렴주구를 호도하려는 조선조 말기의 양반부스러기들이 하는 짓 아닌가? 너는 그러지 마라? 네 할배는 그런 무능한 지배계층 때문에 만주로 쫓겨 가서 밥벌이하고 묵고 살았다.
그들 껍데기 뿐인 이론으로 무장한 거지같은 이 나라를 데모로 달려들 듯 하는 반대 가운데에서 지켜낸 분이 바로 박정희다.
매판자본이니 재벌과 결탁했니 하면서 박정희를 마구잡이로 비난했던 조중동의 나이 드신 기자들이 왜 지금은 입 닫고 침묵하는지 너희 젊은 세대는 알아야 한다. 섣부르게 단정하지 마라. 조금 안다고 큰소리치지 마라. 역사란 부분만 가지고 주장할 수 있는 가벼운 게 아니다. 부화뇌동하지마라. 그 건 너를 못나게 한다.
얼마나 우리 국민들의 비난과 반대가 심했던지 강철같은 박정희도 거꾸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불평하듯 말한다. (1969년 10월 10일 박정희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에 있는 내용)
내가 해온 모든 일에대해서 지금까지 야당은 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오늘까지 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 지지나 격려도 받아보지 못한 채 오로지 극한적 반대 속에서 막중한 국정을 이끌어 왔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하여 나는 야당으로 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으며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고 하여 “젊은이의 피를 판다”고 그들은 악담을 하였습니다. 없는 나라에서 남의 돈이라도 빌려와서 경제건설을 서둘러 보겠다는 나의 노력에 대하여 그들은”차관망국”이라고 비난 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 창설 한다고 하여 그들은 국토방위를 “정치적 이용을 꾀한다”고 모함하였고 국토의 대동맥을 뚫는 고속도로 건설을 그들은”국토해체”라고 비난 하였습니다. 반대하여 온 것 등등 대소사를 막론하고 내가하는 모든 일에 비방. 중상. 모략. 악담을 퍼부어 결사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에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더라면 과연 오늘 대한민국이 설 땅이 어디겠습니까? 내가 해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야당은 유세에서 나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야당은 언필칭 나를 독재자라고 비방합니다.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탄 듯” 소신 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독재자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 소신껏 굳히지 않고 일해 온 나의 태도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나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이 소신과 태도를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1969년 10월 10일
그러면서 저도 나이는 어렸을 때였지만 무려 56년 전의 내가 겪었던 걸 보고 들은 대로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아는 그 조그만 지식을 글로 쓰려 하는 데도 벌써부터 주눅이 든다. 그 시절, 그 현장을 담아내려는 내 눈이 정확할 수가 있으며 잘 할 수가 있을까? 걱정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함부로 단정하고 판단하는 그 얄팍한 지식이 너무 두렵다. 내가 하는 말도 그래서 나 자신만의 어리석은 판단이 아닌지 고민하면서 이 글을 쓴다.
우선 4.19가 터지고 난 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혼란. 무질서. 불안이 곳곳에 흘러넘쳤다. 데모, 데모. 시위, 끊임없는 주장에, 주먹과 팔을 흔들면서 목청을 높이면서 온갖 단체들의 행렬이 계속되는 날들의 연속적 데모, 뭐 데모는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용조합에서 데모하고 나중에는 국민학생까지도 데모를 했다. 이런 엉망인 사회에 제대로 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집에서 통학을 하는데 귀가시에는 버스도 멈추어 내 바로 아래 동생과 약 15키로가 넘는 거리를 오랫동안을 계속 걸어 다닐 정도였다. 좀도둑에 깡패에 거지에 한마디로 혼란의 극치였던 시절이었다.
이런 끝없는 혼란은 비록 중학교 1학년밖에 안 되는 내 눈에는 극도의 공포에다 불신을 남겨주었다. 오죽하면 민주투사이시고 반체제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치신 장준하선생께서 5.16군사혁명은 일어나야 할 당위의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이런 불안은 어린 내게만 문제가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들어가면 일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무슨 큰일이 일어난다고 모이신 어른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하시던 말씀을 기억한다. 무능한 정부에 무능한 경찰들. 이 불안은 불과 10년 전의 6.25전쟁와 관련되는지도 모른다. 사회의 혼란이 얼마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흔들어대는지 깡패나 좀도둑들까지 행패부리고 난동부리는 그 사회를 요즘의 젊은이들은 알까?
또 그 당시의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 된다는 그 100불이 어느 정도의 고통인줄 우리 젊은이들은 이해할까? 길가다가 이웃집의 개밥이 흩어져 있으면 그걸 줏어와서 끓여먹거나 바닷가에 가서 아무 해초라도 있으면 그런 것도 모아서 마구잡이로 입에 쑤셔넣어 배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걸 알까? 그리고 또 온 식구가 아이스케키 통을 매고 다니며 하나라도 더 팔아야 배를 채운다는 사실을 알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