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 (39) 조카와 나눈 과거사 문제에 대한 (두 번째) – 권길홍 수필가
앞에서 말한 대로 제 나이가 올해 일흔다섯입니다. 아무 한일도 없이 세월만 보냈다는 생각에 때로는 잠 못 이루는 시간을 보낸 적도 있을 정도로 허망한 시간의 흐름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보았고 겪었던 4.19니 5.16, 그리고 서울도심이 체류탄 연기로 뒤덮인 6.8사태와 월남전 파병, 광부와 간호사의 파독을 통해 우리나라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10월유신의 찬반 투표는 월남참전 중에 직접 반대했을 정도로 내 한 몸은 보잘 것 없지만 보고 들었고 현장에서 겪어낸 사실은 바로 대하드라마였습니다. 한마디로 격동의 현장 속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이런 글을 조카에게 보냈더니,
박정희를 몹쓸 사람으로 치부하고, 단정한 적 없습니다. 사실 저는 그가 있었기에
한국전쟁 이후 지금의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여느 후진국들과 조금도 나을 수 없었을 대한민국을 이 만큼 있게 한 선구자였다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썼던 글 중 박정희를 비하, 왜곡했던 부분은 저의 잘못이었고, 지금의 제 뜻을 미리 밝히지 못한 것 또한 잘못입니다. 친일이라는 것… 과연, 내가 그 시대에 존재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친일노선을 택했을지, 아님 주변의 시선과 분위기에 눈치 보며 그럴 순 없다며 순혈을 고수했을지…사실 함부로 장담할 자신은 없습니다. 박정희가 일본육사에 지원한 건… 그 사람의 순전히 개인적 신념이 아닐까요?
그래서 다시 제가 말했습니다. 이런 내가 역사의 증언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비겁하고 못난 사람이 되어 제 할일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에 사로잡혀 세월만 죽이는 게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화려한 정치라는 뒤에는 무능한 정치꾼들이 있고 제 일신만 챙기는 데는 익숙하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그 극도의 가난에 허우적대는 고통에는 아무도 관심쓰지 않았다는 걸 우리 젊은이들은 알까? 국민소득 100불이라면 실감나기 어렵지만 개보다 못한 인간의 존재라면 이해가 될까. 오로지 먹기 위해 사는 인간들이 바로 4.19가 일어난 우리나라의 실상이었다. 위정자중 아무도 관심 쓰지 않았던 먹고사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통일벼니 옥수수종자개량이니 하면서 전력을 투구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자랑스러운 반만년 역사 속에 진정으로 이 백성의 배고픔에 매달렸던 왕이 몇이나 있었고 지배계급인 양반이라는 인간들 중에 진정으로 백성의 가난에 아파한 지도자가 몇이나 있었을까? 우리 소득이 3만불, 아니, 30,000불이란다. 100불도 안 되는 나라가 3만불이 되었다면 그건 누구 때문인가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우리는 왜 월남파병을 결정했을까?
이 땅의 젊은이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그 귀한 생명까지 팔아서라도 이루어내야 했던 가난과의 사투는 얼마나 숭고한 전쟁이었나? 4천만이 넘는 국민의 다수를 기아에서 해방시키려면 그 귀한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이 없다면서 월남파병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자신도 정당성이 없으면서 애꿎은 죽음이 넘칠 건 뻔한 전쟁터로 파병한다는 건 자신이 어려워지고 그 전장터의 죽음으로 인해 국정 책임자인 자신에게 엄청난 반대와 책임에 대한 추궁이 뒤따를 걸 각오하지 않으면 안될 힘든 결정이었는데 우리나라는 파병을 했다. 5500명 젊음의 죽음으로 우리나라는 화려한 비상을 하게 된다. 돌아가신 그 분 전우들께는 진심으로 명복을 빌면서 진심으로 이 나라의 부흥을 저 세상에서도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기뻐해주시리라 믿는다.
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정통성 없는 정권을 유지하려면 국민의 희생이 없는 편이 훨씬 통치하기가 쉬웠을 텐데 미국이 파병을 요구하기 전에 파병하겠다고 제안한 그 뱃장에 용기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조카의 글입니다.
큰아버지의 장황한 글, 역사와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글, 그를 군부독재자라고만 치부하는 이들에게 그를 대신한 변호인같은 글에 대해 공감하는 바입니다.
그래. 고맙다. 우리 사회의 한 부분만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아 나도 조심스럽지만 남의 말이나 언론은 함부로 동조하면 안 될 것 같다. 역사는 젊은이들이나 교사들이 안다는 것보다도 훨씬 더 장대한 드라마다. 크게 보고 넓게 사고하고 깊이 있는 행동해라.
조카의 글입니다.
역사를 알아야 현실에 직면한 과제를 풀 수 있고, 미래에 대한 발전이 있음에 반대할 자 없을 것입니다. 큰아버지의 글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선 처음으로 생각과 고민의 시간을 갖게 되고, 몰랐던 부분에 대해선 새로이 알게되는 지식축적의 시간을 갖게 합니다. 큰아버지의 글에 우려 혹은 비난과 비판의 모습을 보이는 이들에 대해선 설득할 것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어조카와 나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첫 번째)쩌면 잘못된 사상은 큰아버지의 열변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큰아버지를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말테니까요…
큰아버지의 후미의 글처럼 언론에 동조하진 않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습니다.
맞습니다. 역사는 장대한, 대하드라마이지요. 역사 속 그들의 심경, 고뇌의 깊이를 알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우리 근현대 역사의 흔적에 대해 얼마나 심도있는 고민이 있었을지요? 역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사람이 사람에 대한 고민과 공부도 필요한 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속 인물에 대한 심도있는 재조명보단 박수 혹은 비판에만 그치지는 않았을런지요?! 역사학자들 또한 인간으로서의 지식을 넘어 뜨거운 심장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은 ‘보여주기에 급급한 지식의 가벼움’ 일테구요…요즘 일부 젊은 사람들… 자신들의 얄팍한 지식을 페이스북 등의 SNS을 통해 맘껏 뽐내고 있습니다. 그런 글들, 정보(?)등을 대할 때면 이들이 이렇게 애국자였고, 이렇게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나 싶습니다. 대단하구나~! 라는 느낌을 받게 되지만, 점점 더 계속되는 게시글들이 역사지식 과시처럼 보이더군요. 차라리 조용히나 좀 해줬음하는 생각으로 바뀌기도 했구요… 큰아버지~ 세상속사람들~? 다~ 지 잘났다고 떠들어댑니다.
그들이 알면 얼마나 알까요?
이제 보내는 글은 이 큰아버지의 넋두리다. 그냥 읽어주면 고맙겠다. 내가 군에 입대한 거도 기적이지만 월남전에 참전한 사건도 기적이다. 절망과 고민 속에 핀 기적! 1968년도에 초임으로 부임한 9급인(그 당시엔 5급을류) 나의 한달 급료가 4천 몇 백 원인데 이 돈으로 나 혼자 쌀을 사서 밥을 해먹기에도 부족한 돈이었다. 그래도 먹는 일만 해결되면 걱정이 반으로 줄 터이지만 네 할머니와 가족들 부양하고 동생들 학비에 항상 사투를 벌이다시피하는 우리 생활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 교사들 중에는 아직도 박봉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 건 아니다. 현재의 우리 사회에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 교사니 공무원은 아니지 싶다. 그래서 박봉으로 살아가려니 너무 힘들어 군에 가게 되었고 군에서도 너무 힘들었다. 건강도 문제고 집에서 들리는 소식은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이고, 결국에는 월남밖에 답이 없었다. 이런 온 국민이 겪었던 가난의 문제에 대한 답은 오로지 박정희라는 사람만이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 정치는 부패하고 국민들 사고는 부정적이다 못해 자학적이기까지 했던 사회! 누가 이런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희망을 주었을까?
내가 1970년 전방부대의 정보상황병을 할 때다. 북한에서 날아온 불온삐라를 수거하는데 그 중에 우리 대통령을 조롱하는 내용이 많았다. 미국에 아부하고 매일 돈이나 빌리려 하는 대통령이라고, 마치 거지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기에 나도 동조를 했다. 거지 나라에 거지같은 대통령이라고!
그러면서도 월남에 있을 때 실시한 10월유신의 개헌투표에 반대했다. 왜?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이런 게 아니었으니, 국민이 하지마라고 하면 물러나야 되고 고속도로를 반대하고, 경제개발 하지마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으니까! 그런데 박정희는 그런 민주주의의 기본도 무시했다. 누가 옳았나? 월남에 있을 때 10월유신에 반대투표를 했다고 부관에게 터지면서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이런 게 아니라고 하면서! 누가 옳았을까? 마치 조선조 말에 백성은 굶어 죽어가는 데도 죽은 왕비의 복식과 삼년상의 유교예법 문제로 줄기차게 싸워댄 양반집단과 같이!
가난하다고 버릴 수 있는 나라면 버렸을지도 모르고 욕이라도 해서 이 나라가 변한다면 즐겨 그리 했을 거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월남전에 가서 죽으면 되는 거였다. 죽으면 나도 없고 나라도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죽지도 않지만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도 욕한 내 나라는 월남이라는 따뜻한 나라보다 귀했고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민족의 가난이라는 괴물과 싸우는 박정희라는 인간에 대한 이해였다. 내가 죽는다 해서 지가 편할 것도 없는데 왜 이 전장터로 우리 젊은이를 내몰았을까? 왜? 왜?
뭐? 한일협정을 발효하고 나니 누군가가 친일파라서 그리 했다고! 말이 되는 이야긴가? 울산공단을 만들 때 그 반대와 데모는? 월남파병한다니 국민 전체가 반대를 하고, 온 나라를 뒤덮으며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 파병을 감행하신 분!
우리 민족은 참 복이 많은 국민들이다. 박정희는 이십대 때에 중국과 일본을 보았다.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한마디로 동양의 부자인 일본과 무능하고 퇴폐한 청나라 말기를 보고 느낀 게 얼마나 많았을까? 양반으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선진국인 외국유학을 가면 본 건 고작 귀족들의 삶이나 행동거지를 배웠을 텐데! 그런데 박정희가 본 건 잘사는 나라의 국민정신을 보았고 그래서 강원도까지 찾아가 오죽헌을 짓고 우리나라 여성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 게 아닐까?
우리나라의 자칭 진보라는 사람들과 학자들에게 한마디 한다. 이제 박정희를 가지고 부정적으로 기록하지 마라. 작은 부분을 가지고 이 나라의 역사를 부끄럽게 하지 마라. 그분을 위대하게 기록했다고 해서 잘못될 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