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연재 | 반세기 전 어느 전경의 신병 훈련실화 (7)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훈련병과 사역

1974년 10월 5일 토, 6시 기상 나팔 소리에 후닥닥 일어났다. 3분 만에 모든 동작 완료하고 운동장에 집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두르기는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나름 애쓴 노력에 비해 정렬(整列)이 잘 되지 않았다. 당연히 애인 이 남친 기다리듯 기합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첫날이라 용서해 준다는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장정(壯丁)이라는 호칭이 떨어지고, 훈련병이라는 새로운 대명사가 붙게 되었다.
훈련병! 훈련병이란 이름으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애환과 곡절을 견뎌야만 할까?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구 또는 애인과 헤어진 채 “우리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과 체력 연마를 위하여 여기에 모였노라!” 라고 끊임없이 주입 교육을 받는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첫 번째 시간의 과목은 중대장의 훈화였다. 중대장은 집안에서 아버님과 같은 것이라고 대충 이야기를 마치고, 어머님과 같은 분이 소대장이라며 훈련을 마치는 그날까지 인내하며 훈련을 받아 달라고 한다. 이어 소대장의 말씀이 있고 총검술 제식훈련에 들어갔다.
“좌향 앞으로 가! 우향 앞으로 가! 뒤로 돌아 가!…….”
학교에서 교련시간을 통해 얼마나 많이 들었던 말인가? 이 모든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숙달을 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첫날부터 매질이다. 매질이 곧 교육의 효율성과 비례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점심시간에는 라면을 먹게 되었다. 라면 1개에 달걀 1개, 얼마나 훈련 탓에 배고픈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다. 수용 연대에서만 하더라도 배가 부르다면서 먹지 않던 밥을 이젠 부족하다며 밥 타령이다. 오후에는 ‘사역(事役)’이 시작되었다. 사역이란 정해진 교과 외의 잡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전달” 하는 소리에 훈련병들은 가슴 졸이며 조용해진다.
“각 소대, 새마을 사역병 5명씩 차출, 훈련화 신고 선착순으로 운동장에 집합!”
후닥닥 번개같이 모인다. 그나마도 늦게 모이면 뺨과 기합은 각오해야 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사역과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태양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취사장 사역, 비품 옮기기 등 웬 사역의 종류가 그렇게도 많을까? 그것도 최악의 비효율로!
자유시간, 자습시간, 정훈시간을 보내고, 점호시간으로 들어갔다. 9시 30분, 일석점호는 시간도 30분에서 50분으로 늘려야 한다는)내무반장의 매질시간이다. 가슴을 졸이는 40분을 운 좋게 참아야 한다. 기합에서 기합으로, 몽둥이에서 몽둥이로 끝난다. 불안을 조성한다. 그래야 다른 생각없이 훈련에 임할 수 있다는 전 근대적 접근방법이다.
“10월 5일 일석점호 끝!”
정말 듣고 싶은 말이다. 이후는 취침하면 되니까 말이다. 30초 만에 매트리스 깔고 모포 3장 사이로 몸을 들인다. 분대장 자리는 창가라 달빛이 비췬다. 보름달이 언제 하현달로 변하였는지 모르나 달빛이 포근하게 나를 안아 준다. 언제 다시 보름달로 변하여 지려나? 하루의 피곤이 잠과 함께 녹아내린다. 갑자기 어머님이 그리워진다. 어머님! 오늘도 잘 계시는지요? 이 자식은 낯선 환경에도 잘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걱정 한 하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