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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어느 전경의 신병 훈련실화(8) 점호시간이 무서워 – 정병수 재경합천문인회 회원

10월 6일 일, 7시 기상, 훈련소에서 처음 맞이하는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하루 일과가 사역에서 시작하여 사역으로 끝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날씨까지 갑자기 춥다. 우리 훈련병에겐 좋지 않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오후 4~5시에 영화 관람이 있다는 것이다.
“웬 영화 관람이지?”
나치가 유대인을 가스실로 유인하여 몰살시키면서도 목욕할 것이라고 달랬던 것처럼, “우리를 영화 관람시켜 준다면서 힘든 사역을 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부정적인 선입감에 발걸음이 무겁다. 연무대에 도착하니 다행히 벌써 A연대, B연대, C연대 소속 훈련병들이 영화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헤어진 작업복에다 누렇게 뜬 얼굴들이 보기에 민망스럽다. 흰 얼굴이었던 저 청춘 미남들이 훈련으로 햇볕에 그을려 구리 빛으로 변하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전경요원 훈련병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소곤댄다.
“우리들도 언젠가 저렇게 될 날이 올까? 참으면 오겠지!”
구릿빛 얼굴이 부러웠다. 옆 좌석에 앉은 훈련병이 자기들은 화요일이면 자대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보고 ‘고생 더 해야지!’ 하며 동정을 보낸다. 그야말로 자기들은 고참 훈련병이고, 우리는 새까만 후배들이라고 놀리는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점호는 특히 엄하다. 월요일 훈련에 대비하라는 신호인지 모르겠지만,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하는 먼저 배워 숙달된 자의 형식적이고 교만한 자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차려 자세의 목적이 뭐냐? 부동자세를 모르냐?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놈들이 이렇게밖에 하지 못해?”
소대장 내무반장 일직 하사가 소대를 돌며 점호인지 퀴즈시간인지 분간이 안가는 질문을 정신없이 해댄다. 즉각적인 대답이 없을 땐 지휘봉이 허공을 난다. 정신을 어디다 두야 할지 모르겠다. 회의(懷疑)가 생긴다. 이렇게 하면 적군을 방어하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 청소여부도 점호 시간에 주요 체크 사항이다. 불량이면 몽둥이로 맞는다. 아니 훈련소에선 ‘청소 양호’란 단어가 멸종된 듯 하다. 맞고 보면 아픔보다 서러움이 앞선다. 비록 군이란 특수한 집단이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고된 훈련을 견뎌내야 하루가 끝나니 정성적인 사고(思考) 자에겐 혼란스럽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건 아니다’ 싶다. 모든 것이 소화불량 증세인데, 실제는 소화는 물론이고 오히려 배가 고픈 이율배반적 ‘군사 훈련’이라는 특수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diais 하다니. 점호(點呼)의 참 뜻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점호는 군대 등의 단체생활의 경우 인원파악 및 인원 수 상태를 점검하고, 그 날 훈련의 잘잘못을 되새김하여 보도 나은 훈련을 하도록 하는 절차인 것이다. 그 참 뜻을 살리자고 하면 “잘 난 체 하지마!. 여기가 어디라고?말이 많은 거야? “ 할 것이다. 아니 매질이 준비될 것이다. 논어(論語)를 비판하는 촉망받는 유학자들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가는 기득권의 세력처럼 조교가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