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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2) 이미숭(李美崇) 장군의 생애와 미숭산에 남긴 흔적

미숭장군 묘(고령군 쌍림면 용리 소재)
남문 입구(기둥을 세운 홈이 파인 주춧돌이 양쪽에 있다)

이미숭(1346~?) 장군은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반곡(盤谷), 이규보(李奎報)의 4세 손으로 , 아버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야) 이언(李彦),어머니는 평강채씨(平康蔡氏) 채윤(蔡允)의 딸 사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후손으로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이천을(李天乙)과 7세손 이경령이 있으며, 그의 묘소주변(고령군 쌍림면 반룡리) 일대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포은 정몽주의 문인(門人)으로 경학(經學)을 전수받고 고려후반 조선전기의 무반(武班)으로 입신하였으나 고려를 회복하려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의 충절은 미숭산성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미숭산성(美崇山城)은 경남 기념물 제67호, 합천군 야로면 하빈리 산 3번지, 757m의 미숭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8부능선을 따라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1,325m에 이르며 삼국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여러차례 보축하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적 요충지인 미숭산은 원래 상원산(上元山)이었다.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하자 정몽주의 문인이었던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이 고려의 재건을 위한 근거지로 성을 쌓고 최후 항전을 하였으나 순절하여 후인들이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해 상원산(上元山)에서 미숭산(美崇山)으로 바꾸어 불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유적이 산재해 있으나 차츰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1. 망향대(望鄕臺) : 여조회복(麗朝回復)을 천지신명께 축원하였던 곳이다.
  2. 주마대(走馬臺) : 장군과 병사가 기마 전투연습을 하였던 곳이다.
  3. 달각암(達覺巖) : 안동장군이 쏜 화살이 월광사 석탑에 도달하면 “딸깍” 하고 소리를 내는 바위이다.
  4. 연병장(練兵場) : 군사들이 모여서 훈련하였던 운동장이다.
  5. 장궁구(藏弓丘) : 안동장군이 사용하던 활과 화살을 묻었던 곳이다.
  6. 순사암(殉死巖) : 여조 회복이 실패하자 안동장군이 떨어져 죽은 곳이다.
  7. 사당지(祠堂地) : 안동장군의 형상을 찰흙으로 세우고 봉향하던 곳이다.
  8. 궁사대(弓射臺) : 사선을 만들어 활쏘기를 연습하였던 곳이다.
    10.아액금대(我厄唫臺) : 장병해산시 명령권이 없음을 선포하였던 곳이다.

[미숭장군과 애마에 얽힌 이야기]
미숭장군은 북방을 지킬 때부터 아끼고 사랑하면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말이 있었다. 오늘도 미숭산성의 주마대에서 애마를 타고 훈련하던 도중 말과 약속을 하였다. 말과 화살의 시합이었다. 너는 장차 고려를 재건할 장군의 애마이니 내가 쏘는 화살보다 느려서야 되겠느냐! 내가 쏘는 화살이 월광사의 탑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도착해야 된다. 장군은 시위를 당겨놓고 고삐를 당겼다. 월광사에 도착한 장군은 말이 더 이상 소용없음을 알고 발목을 내리칠려는 순간 화살이 쌩하며 탑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필자는 아무리 전설속의 이야기지만 화살은 직선으로 나르니 월광사 삼층석탑에서 미숭산이 보이는지 몇 번이고 살펴보았다. 미숭산성에 올라서도 월광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미숭장군이 내고장 합천에서 생을 마감한 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하재효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