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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1) 동곡당 일타스님 행장

동곡당 일타(東谷堂 日陀) 스님은 1929년 9월 2일(음력 8월 1일)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동대리 182번지에서 연안 김봉수(金鳳秀) 공을 아버지로 광산 김상남(金上男) 씨를 어머니로 4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 공주 본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4세 되던 해인 1942년 친외가의 일족 41명이 모두 출가함에 따라 보통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양산 통도사로 고경(古鏡)스님을 찾아가 출가 득도했다.
1949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단스님을 계사로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였으며, 1950년(22세)부터 다시 운수납자의 길로 들어서서 진양 음석사와 범어사, 성주사 선원 등에서 금오, 동산, 성철스님 등과 함께 정진했다.
1953년 자운율사의 권유로 천화율원에서 율장전서를 열람하고 계법을 정립했으며 1954년 강원도 오대산 서대에서 전 조계종정 혜암스님과 함께 생식과 장좌불와의 용맹정진으로 하안거를 마친뒤 적멸보궁에서 하루 3천배씩 7일 기도를 하고, 오른손 열두마디를 태우는 초인적인 연지연향을 발원했다.
발원을 마친뒤 세속과 관련된 사람노릇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중노릇만 잘하리라 결심해 오른손 네 손가락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였다. 한밤중에 시작된 연비는 날이 환해질 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계법정립 계승한
한국정통율맥의 큰별
이듬해인 1955년에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 태백산도 솔암으로 들어가 동구불출(洞口不出),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지키며 홀로 6년 결사를 시작했다.
태백산 6년 정진을 통해 정법과 대원과 대행을 구족하신 스님은 1960년 산에서 내려온 이후에는 걸림없는 교화의 길을 열어 보였다. 1964년 은해사 주지를 거쳐 은해사 조실을 역임한 스님은 1976년 해인 총림의 율사로 퇴임해 후학 양성과 계율을 재정립하는데 많은 힘을 쏟았다. 또한 1980년부터는 미국 LA의 고려사 포교를 시작으로 2년동안 북미, 남미, 중미의 여러 지역을 순회하면서 한국 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렸다.
1993년에는 전국 구족계 단일계단 전계대화상으로 추대돼 모든 승려들에게 계를 수계하는 중임을 맡았으며 1994년 5월에는 원로회의 위원으로 추대됐다.
해인사 지족암에 선방을 만들고 교구본사인 은해사의 조실로 계시면서 후학을 지도하기도 했다. 1999년 11월 22일 하와이로 건너간 스님은 11월 29일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상좌 혜인 등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열반에 들었다. 세수 71세 법랍 58세.
다이아몬드 해안에서 다음과 같은 무애의 열반송을 남겼다.
“하늘에 밝은 해가 진심을 드러내니 만리에 맑은 바람 거문고를 타는구나.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려니 산은 놀고 바다 넓어 방해롭지 않구나”
다비식은 1999년 12월 5일 오전 11시 은해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졌다. /이석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