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시대 – 문계성 수필가
골품(骨品)이 없는 사회는 선거를 통해 선량(選良)을 뽑아 권력의 행사를 위임한다. 문제는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눈이 어두워져 선량(善良)을 선출하는데 번번히 실패하여 정치가 저질화 되는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총리를 지낸 노 모씨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전 대통령인 김 모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평생 자기 돈으로 세금 한 푼 낸 바 없는 사람”이라는 칼럼을 발표한 사실이 있었다. 사실 여부는 모르나, 총리급 사람이 신문에 공개한 글이니 허투루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우리 국민은 자기 돈으로 세금 한 푼 낸 사실이 없다는 이분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분은 그 유명한 햇볕정책이란 것을 표방하며, “북한은 핵을 만들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공언했다. 당시 핵개발에 열을 올리던 북한에 대하여, 핵을 만들 의사조차 없다고 한 것은 대체 무엇에 근거를 두고 한 말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이 말에 지금까지 많은 의문이 남는 것은, 오늘날 북한은 수백 개로 짐작되는 핵폭탄을 보유하게 되었고, 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만들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금에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은, 북한의 핵은 북한의 체제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 같은 사람조차도 그랬다. 그런데 “북한은 핵개발을 할 의사조차 없다“는 말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지게 되어 노벨평화상까지 받게 되었을까? 당시의 최고 권력자의 말이어서 그랬을까?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분은 이 논리와 명분으로 김정일과 포옹하는데 성공했고, 그래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이분의 발언과 행동이 사실상 핵무장을 끝낸 오늘의 북한을 만드는데 준 영향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이분의 위 말을 생각할 때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나 뿐이었을까? 박봉에 세금을 꼬박꼬박 탈탈 털린 사람들은,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배알이 꼴리거나 허탈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대부분 진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달콤한 말로 돌아간다는 것을, 나는 이러한 북한 핵 쇼에서 보았다.
직전 대통령이 요즘 화제다. 이분은 박 대통령 시대를 ‘이게 나라냐!’라고 했다. 전 정권을 탄핵한 경험 때문이었는지, 이분은 퇴임 후에 받은 핍박에 대비하는데 아주 열심이었다. 검찰이 자기를 수사하지 못하도록 소위 검수완박 법안을 만들어 기어이 통과시켰다. 자기가 받을 대통령 연금 월 1,400만원에 대하여는 소득세를 한 푼도 떼지 못하도록 했고, 20여 명에 불과하던 퇴임 대통령 경호원을 60여명으로 늘리도록 했다. 청와대에서 키우던 풍산개를 사저로 가져가면서,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날 개사육비를 월 250만원으로 정하여 이 돈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도록 대통령기록물 관리 실장과 계약도 했단다. 비록 자기의 임기에 600조이던 국가 부채를 1,000조 이상으로 늘여 놓았지만,퇴임 후 신변 챙기기에는 참으로 빈틈이 없는 분이었다. 이분은 새 정부가 이 개사육비 지급에 난색을 표하자 키우던 개를 가져가라며 내 던져 버렸는데,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혀를 찼다. 사람다움 중 하나가 염치(廉恥)를 아는 것인데, 염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챙기기에 이처럼 알뜰하기 짝이 없는 분을 5년간이나 대통령으로 모시며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실업급여 한 푼 챙기기못한 나의 변변치 못함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기자 출신의 의원이 국회에 법무부 장관을 불러 놓고, ‘장관과 대통령이란 사람들이, 나라가 이렇게 위중한 때에 – 이는 현 야당이 현 시국을 두고 쓰는 문자다 – 야반삼경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 잘 버는 변호사들을 떼로 술집에 불러내어 술판을 벌렸다는데, 사실이지? 여기 녹취도 있는데 이런 형편없는 사람들이지?’라는 식의 공박을 했다. 술을 못 마시는 이 장관이, 그 주장이 허위임에 장관직을 걸테니 당신은 무엇을 걸테냐고 묻자 대답을 못했다.
국민들은, 나라에서 9명이나 되는 비서관을 붙여준 국회의원이 하는 발언이니, 사실 여부에 대한 조사를 마친 신중한 발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동거녀가 동거남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밤을 새우게 되었는데, 이를 변명을 하느라 동거남에게, 밤새 장관과 대통령이 벌이는 술판에서 첼로 연주해준다고 밤을 샛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 의원이라는 분은 이 삼각관계가 만든 거짓말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국회에서 떠벌인 것이었다. 전 국민이 이 코미디를 감상했다.
이분 말을 상상해 보면, 대통령과 장관이 야밤에 잠도 자지 않고 관저를 빠져나와 술집에서 뽕짝을 부르며 술판을 벌이는 술주정꾼처럼 보인다. 이 발언이 노린 것은, 대통령과 장관의 이미지를 이렇게 파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구속 만기로 풀려난 폭로자를, 검찰이 회유한 댓가로 풀어 주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아침에 잠이 덜 깬 참새가 지저기 듯, 혹은 시정의 잡배의 넉두리처럼 떠벌리면, 정치는 어떻게 될까? 3류 막장 드라마가 될 것이다. 정치가 정치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신(神)이 죽었다고 선포된 시대다. 그러나 신의 섭리를 믿는 교단은 여전히 많은 신도를 거느리며 수금(收金)을 한다. 카톨릭 교단은, 예수라는 유대의 젊은이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죽은 사건을, 사람들의 죄 사함을 위한 제사의 희생물, 즉 희생양(犧牲羊)이었다고 주장하여 만들어진 교단이다. 그래서. 이 교단의 추구하는 것은 무한한 사랑과 희생이다. 이 교단의 사제(司祭)인 신부(神父)가,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비행 중 추락하라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며 저주(咀呪)했다. 만화나 컬트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이 전대미문의 흑마술(黑魔術)이 신부에 의하여 저질러졌는데도 이 신부님의 직책은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맞다! 현대는 신이 죽은 시대다. 사랑과 희생의 신이 살아있다면 이 신부님의 직책 무사하겠는가? 무신론자가 신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신부(神父)가 신을 죽이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는 것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죽이고, 성직자가 신을 죽이는 이 우울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