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유교문화의 현황
기획의도 | 합천은 남명학파의 본거지로, 처사로 이름높은 남명 선생이 태어나고, 살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이런 합천은 유림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한 지역으로 지역민들은 유학적 사고가 뿌리깊고, 선비정신을 존숭하는 곳이다. 그 증거로 합천에는 4곳의 향교가 있다. (대구시만 해도 향교가 1곳 뿐이다) 또한 각 향교에서 활발하게 나름의 활동과 업적을 쌓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경상우도라 불린 남명학파의 몰락과 함께 지역 유림들이 많이 위축된 형편이다. 이에 비해 경상좌도로 보는 경북에는 유교문화박물관이 있고, 선비문화축제가 열리는 등 상당히 활발한 편이다. 최근 남명 정신이 새롭게 각광받으면서, 남명학파가 조명되고 있다. 남명 조식, 내암 정인홍 등으로 이어져내려오는 정신을 오늘날 새롭게 되살리며, 4곳의 향교를 중심으로 선비문화를 융슝하게 할 수 있는 체험, 축제, 이벤트 등을 연구해 제시하고자 한다.
- 안동유교문화 박물관 등 경북지역 유교문화 현황과 흐름
흔히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 지역이 유교문화, 양반문화, 선비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갓 쓴 선비와 서원의 담장을 떠올리면, 그곳이 경북 권역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그만큼 유적이나 문화를 잘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교 문화, 양반, 선비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경북 권역으로 향하고 있다.
경북 권역의 유교문화 체험을 위한 순서를 굳이 정하자면,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일대를 먼저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일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세워진 곳이다.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 한국선비촌,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을 먼저 둘러보고 다른 서원 등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1)소수서원
소수서원은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1543년 8월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백운동’이라 이름한 것은 중국 송(宋)나라 때 주희(朱熹, 1130∼1200) 선생이 세운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본보기로 삼고 “하얀 구름이 항상 서원을 세운 골짜기에 가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는 백운동서원이 들어서기 전에는 숙수사(宿水寺)는 절터였다고 한다.
이 백운동서원이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48년 10월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노력 덕분이었다.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賜額:조선시대에 왕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扁額)을 내리던 일)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명종은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아 ‘소수’로 결정하고 1550년 2월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하여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사액을 내려 국가가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서원이 갖는 중요한 기능인 선현의 봉사(奉祀)와 교화 사업을 조정이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라 한다. 기능으로 따지면, 유교 성현들을 제사지내고, 학문을 닦는 선비를 기르는 기능을 가진 곳이며, 지역 사림들의 정치.사회적 집합소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선 성리학의 문화유산인 서원은 선비들이 학문을 연마하고 선현에게 제향을 올리는 곳으로 향촌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주 역할로 후에 지방유림세력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나아가 중앙 정치세력의 견제 기반으로써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조선중기 교육적 기능이 쇠퇴의 기미를 보이던 관학에 대응하여 새로운 교육활동의 중심지로 부상했던 서원은 과거시험과 법령의 규제에 얽매인 관학과는 달리 학문의 자율성이 존중되어 출세주의나 공리주의(功利主義)가 아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렀던 민족교육의 산실이자 유교적 인재 배출의 요람으로 1543년(중종38년)에 3명의 입원유생을 시작으로 1888년까지 모두 4,300여 명이 배출되었다.
소수서원 내부의 주요건물은, 강학당, 문성공묘, 일신재, 직방재, 지락재, 학구재, 전사청,장서각, 경렴정, 고직사 등이 있다. 1962년 사적 제55호로 지정 됐으며, 이외에도 보물로, 숙수사지 당간지주(제59호), 문성공묘(제1402호), 강학당(제1403호) 등이 있다.
2)소수박물관
소수박물관은 유교와 관련된 전통문화 유산을 체계화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유교의 이상을 간직한 소수서원을 통하여 민족 정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민족문화의 전당이다.
이곳은 조선 유학의 메카답게 서원과 관련한 귀중한 문화유산과 유학의 전말을 눈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 소수박물관은 2004년 9월 22일 개관을 시작으로 영주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함으로써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생동감 있는 역사 체험을 위한 공간이다.
시설은 2동인데, 본관(지하 1층, 지상 2층) : 전시실(1,667.9㎡), 수장고(310㎡), 사무실(531.01㎡) 등 과 별관(지하 1층, 지상 2층) ; 전시실(216㎡), 수장고(86.4㎡), 세미나실(189.75㎡/ 128석), 흥경루(109.35㎡) 등 이다.
소수박물관은 유물 소장가들로부터 유물 기증을 받고 있는데, 기증받은 유물을 영구히 보존하며, 박물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기증유물을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3)선비촌
영주 선비촌은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경북 영주 순흥 소수서원과 바로 접하여 위치한다.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되다.
주로 우리 민족의 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재조명하고, 윤리 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병폐 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으로 재현하고자 했으며, 선비정신의 계승과 이를 통한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역사관 확립을 위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각종 기획프로그램 (오감체험형 전시와 참여형 이벤트, 전통문화 체험 등)을 통해 옛 선비들의 당시 생활상을 체험하게 하고 있다.
이곳은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청구리 357번지) 일원으로 면적이 57,719.27m²이며, 주차대수가 134대 (대형 32, 소형 98, 장애인 4)이다. 이곳엔 선비촌, 저잣거리, 관리사 등 건물 39동이 있어 숙박체험이 가능한 곳도 있다. 선비촌은 숙박체험장 및 전통가옥 견학 관광코스로, 저자거리는 음식점, 떡집, 찻집, 한지공방, 특산물 판매, 기념품 매장, 천연염색공방 등이 있으며, 광장에서는 민속공연장으로 활용된다. (www.sunbichon.net, 054-638-6444)
4)한국선비문화수련원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은 옛 선비 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캄구와 생활모습의 재현 등 전통적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전인교육의 요람이다. 이곳은 한옥17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절교육관, 문화체험 시설 5동, 행랑채 등 성인 150명이 동시에 숙박이 가능한 숙박체험 시설 6동, 전통찻집과 매점 등 서비스 시설 4동이 들어서 있다.
유교문화의 중심지인 영주를 유교문화의 전당으로 조성하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을 선비문화의 세계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전통문화 교육은 물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이뤄지고 있다.
위치는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806 (청구리 389번지) 일원이며, 60,395m²면적이다. 건물은 문화체험시설 5동 526.14m²(예절교육관, 예절교육관행랑체, 세미나실, 관리실, 도예공방체험방), 숙박체험시설 6동 337.68m²(체험장 3동, 행랑채 3동), 서비스시설 4동 313.44m²(전통찻집, 매점/기념품판매소, 누삼문 등)이 있다. 연중 프로그램이 있는데, 인성예절교육, 전통문화체험교육, 연수/위탁교육, 특별체험교육, 수학여행 등이 가능하다. (www.sunbi.info, 054-631-9888)
- 유교문화를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 국빈 방문해 안동 하회마을에서 73세 생일상을 받은 일이 있다. 그만큼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곳으로 국빈 방문시 소개하는 곳으로 이름이 났다.
갓을 쓰고 너른 옷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서원을 걷는 선비의 모습은 시대극 드라마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대한민국을 세우기 전 조선 시대에 있었던 지식인, 불의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대나무처럼 꼿꼿하고 강한 기개를 지닌 선비의 이미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배울 점을 보여준다. 이런 유교문화를 흠모하고 체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선비문화를 되살릴 수 있도록 하는 여러가지 연구와 방법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다음에는 현대인을 위한 선비정신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살펴보자.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