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이 그리운 까닭은?

재경합천 문인회 회원 정병수
지난 가을에 “역사를 바꾸기도 하는 무서운 세금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2022.9)하였기에 기념으로 절친에게 선물로 주었더니, 며칠 전에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이 “책 내용도 쉬우면서도 재미나고 편집도 깔끔해 좋다.”라며 민망할 정도로 추켜세우는 통에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기에 나는 “공자는 도오선자(道吾善者)는 시오적(是吾敵)이요,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吾師)라고 했으니 다른 이야기나 하자.”며 화제를 바꾸려 했다.
그러자 친구는 방금 네가 말한 한문 구절은 “솔직히 처음 들어본 것이고, 당연히 뜻도 모른다.”라며 끈질기게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내가 그 말을 할 때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다.
”내가 뭐라고 했는데?“
”방금 네가 ‘도오…….’.하며 뭐라고 했는데 생각 안 나?“
”아! 너같이 유식한 친구가 그 말을 모른다면 말이 돼? 괜히 나 테스트하는 게지?“
”아니냐, 진짜 난 처음 듣는 문장이라니까!“
”아! 그래? 그렇다면 말해주지. “그 한문 구절의 뜻은 내 앞에서 내가 잘한 것과 착한 것만 말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요, 반대로 나의 허물과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다.”라는 공자(孔子)의 말씀이지.
“우리 세대는 한글 전용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문 세대는 더더욱 아닌데 어떻게 네가 알았을까 궁금하네.”
“아? 그 사연은 이런 거야, 우리가 고전(古典, classic)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지만, 직업 전선에 있는 동안은 고전을 접하기가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쉽지 않지. 그런데 백수가 되고 난 어느 날 문득 선친께서 새벽마다 낭낭하게 성독(聲讀)하던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이야. 아마 반세기도 더 지난 일이다. 그 때 자주 읽던 책이 명심보감이었던 것 같아. 성독이란 리듬을 이용하여 한문을 읽고 암기하는 방법으로 천자문에 음을 붙여 외우는 것도 그것이야.
그래서 은퇴한 지인들에게 비대면으로 고전(古典)중에서 명심보감(明心寶鑑)부터 공부해볼 용의가 없느냐고 조심스레 타진했는데, 의외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기는 것이야. 그렇게 해서 2020년 12월부터 탄생한 것이 ‘고전 동연회( 古典 同硯會)’이고, 참여자는 사회 각 분야에서 책임자(CEO)를 역임한 10여 명으로 시작했단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 아침 7시에 돌아가며 할당받은 내용을 발표하고, 참여자들은 발표 내용을 듣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거야.”
명심보감은 중국의 고대로부터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 유불선(儒佛仙) 각 분야의 명구(名句)를 발췌하여 편집한 내용으로 동양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현대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보물과 같은 거울’로 비유가 되는 고전이다.
친구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다.
“그간 우리 동연회(同硯會)는 명심보감에 이어 논어(論語)도 공부하고 이젠 채근담(菜根譚)을 학습하고 있다. 장자는 일일불념선 제악 개자기( 莊子曰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 라고 했다.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다 스스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장자는 전국시대의 철학자로 노자와 함께 노장사상을 이룩하신 분이다.”
명심보감과 논어 같은 고전은 ‘바른 인격의 형성’을 만들어 주는 훌륭한 책이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수백 년 전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비하하면 오산이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최근의 책도 읽어야 한다. 하지만 고전은 공자(孔子)나 장자(莊子)의 말씀처럼 인간의 근본을 다루고 있기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비록 화면상으로나마 토요일에 만나 인간의 근본에 관한 주제를 놓고 서로의 생각을 토의하는 것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그 자체이며, 배우되 생각도 하라(學而思)고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고전(古典)을 통해 온고지신(溫故知新) 하려는 우리 동연회는 오늘도 토요일이 빨리 오기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