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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선물 – 문경자 수필가

사람이 살다 보면 싸울 일이 많다. 꼭 사람과 다투는 일 외에도 춥거나 덥거나 힘이 들 때그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봄에는 꽃구경, 여름에는 휴가를 가야 한다며, 가을에는 단풍구경, 겨울에는 스키를 타야 하고, 남이 하는 것 다 해야 직성이 풀린다며 싸우는 부부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남에게 뒤처지는 것처럼 괜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무덤덤하게 그냥 회사를 다니고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며 일상의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고, 또 별나게 남의 일에 참견을 하고, 내가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용감하게 관심을 드러내는 것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
우리 부모님도 작은 일을 가지고 서로 언쟁을 벌렸다. “오늘 갱자가 구구 셈을 외우지 못해서 벌을 섰다는데 공부를 좀 가르쳐 주어요.” 하며 엄마가 아버지께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 말을 듣고 있던 아버지는 “공부 못하는 거는 엄마를 닮았다.”고 하자 억울한 엄마는 그것이 내 탓이냐며 화를 내며 큰 소리로 대꾸를 하였다. 저러면 안 되는데, 엄마가 참아야 하는데, 그때 아버지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밖으로 나갔다. 막걸리 집에 가서 또 술을 맘껏 드시고 오시면 불안하였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두운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었다. 나는 절대 친구들과 싸우지 말자 내일부터는 구구 셈을 잘해서 부모님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도 맘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과 말다툼도 하였다. 어쩌다 옆집에 사는 은영이 아버지가 집안에 있는 살림을 다 부수고,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질러 모두 겁을 먹고 이웃집으로 피신을 하였다. 방문도 발로 차고 닥치는 대로 시원하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은영이 아빠는 부끄러워 집 밖에도 나오지 못했다. 은영이 엄마는 눈두덩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냇가나 우물가에 가는 일도 창피해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싸움을 할 때는 자기가 최고였다. 하루 건너 한 집에 부부싸움을 한다. 아예 자주 싸우며 무관심해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혼자서 싸움을 하는 사람은 없다. 아예 싸움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고 싱겁게 사는 집도 있다. 싸워야 정도 들고 서로의 마음을 알 수도 있다.
상대가 말이 없으며 절대로 다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시집을 와서 야무지게 살림을 잘했다. 아버님은 술을 좋아하셔서 막걸리만 떨어지지 않게 챙겨 드리면 만사가 해결되었다. 말씀이 없으시니 아무리 말을 걸어도 꾹 다물고 그냥 “조용히 해라”하며 끝이다. 울화통이 터진다며 어머니는 애꿎은 주전자를 빡빡 문지르며 뚜껑을 막 흔들며 맑은 물에 헹군다. 밉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주전자를 깨끗하게 씻는다는 사실이다. 살아 생전에 소원이 있다며 “너거 시아버지하고 한번 싸워보는 게 소원인데,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원통하고 분하다.”며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부부가 싸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살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시집살이는 더 힘들었다. 남편만 믿고 시집을 왔는데 하루에 한두 마디 했는지 기억에 없다. 어머니는 “자는 원래 말이 없고, 쓸데 있는 말만 하니 네가 이해를 해라.”하였다. 말이 없는 것은 시아버지를 닮았다며 어쩌겠나 하며 그렇게 살았다. 신혼때는 어머니 말만 믿고 그렇게 꾹꾹 참았다.
우리가 분가를 하여 남편 직장 때문에 서울 친정 집 옆에 집을 구했다. 이제 해방이 되어 깨가 쏟아지게 살자는 맘으로 행복하였다. 둘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말을 시켜 보고, 콧소리로 아양을 떨어보았다. 말이 없는 남편은 “그만 밥이나 먹읍시다.”라며 뉴스만 듣고 밥만 먹었다. 이렇게 갑갑해서 어떻게 사냐 안되겠다 싶어 일을 한번 저질렀다. 어느 해 남편이 내 생일을 잊어버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여보, 오늘 저녁 외식해요.” 했더니 “그냥 된장이나 바글바글 끓여서 맛있게 먹읍시다.”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시키는 대로 하였다. 퇴근을 하고 들어오는 얼굴은 평소와 똑같았다. 잠자리에 들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자요?” 하며 어깨를 흔들었다. 남편은“왜 그래”하고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아주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를 막 쏟아 냈다. 두 시간 정도 혼자 말을 하였다. 다른 부부는 남편이 말이 많아 싸우고, 또 부인이 말대꾸하지 않는다고 싸웠다는데, 나는 기가 차고 지쳐 혼자 날밤을 새웠다. 그 이튿날 전화가 왔다. 저녁에 맛있는 치킨을 사오겠다고 했다. 생일이 지나고 나서 생각이 났나 보다.
단장을 하고 아이들과 기다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나는 방문 뒤에 숨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엄마는?” 하고 물어보았다. 모른 척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방 안으로 들어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나는 정말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장미가 몇 송이야 하고 세어 보았다. 꽃들도 내 맘을 아는지 축하해요 하는 소리가 꽃다발 속에서 들렸다. 어찌나 겸연쩍은 마음이 들던지 얼굴이 화끈했다. “여보 고마워요.” 하고 된장국을 먹는데 남편의 얼굴이 더 행복해 보였다. 이제는 꽃다발 선물을 나에게 안겨 주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계절이 돌아와도 함께 다녀 본일도 별로 없었다. 가족들을 위해 회사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아이들도 다 자라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 일상의 변화가 없이 살아도 그저 남들처럼 살아가는 일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말이 없는 남편은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싸움을 하지 않아 그것이 도리어 더 큰 싸움이었는지 모르고 지났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