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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처럼 (1) – 강만수전 기획재정부장관

동백섬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백사장에 밀려오는 파도 소리는 50년이 흘러도 그대로였고 갈매기가 끼룩거리는 소리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내 얼굴에는 주름이 흐르고 반백이 된 머리카락은 바닷바람에 날렸다.
나는 그녀를 ‘시갈’이라 불렀다. 바다를 나는 갈매기 모습이 그녀를 닮은 것 같았고, 그녀의 이름도 바다 해海와 아들 자子로 된 해자海子였기 때문에 갈매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갈로 부르게 된 것이다. 어쩌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그녀의 말이 갈매기 소리와 비슷하기도 했다.
이른 봄 해변에는 바람과 파도와 갈매기 그리고 나뿐이었다.
C 호텔로 가는 백사장에 내 그림자가 길게 뻗어 파도에 출렁거렸다.
‘저는 해자의 언니입니다. 옛날 일들이 기억나신다면 이 번호로 전화 부탁드려요. 해자에 대해서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도착한 이 한 통의 문자는 나의 일상을 흔들어 놓았다. 그날 나는 오래전 야간열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되살아나 밤잠을 설쳤다. 내가 그녀와 야간열차에서 두 번이나 우연히 만난 건 아무리 생각해도 같은 자리에서 벼락을 두 번 맞는 것만큼 희박한 확률의 일이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그녀를 만난다는 것도 그 정도의 확률이리라.
다음 날 내가 전화했을 때, 그녀의 언니는 해자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연과 함께 그녀가 옛날 일들은 거의 다 잊어버렸는데 TV 뉴스에서 내 얼굴을 보고는 야간열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여러 번 하더라고 했다. 추풍령을 지날 때 울리던 기적 소리와 그때 주고받았던 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하더라는 것이다. 내가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뉴스도 보지 않고, 야간열차 이야기도 끊고, 허공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의사가 기억을 살리고 유지하는 것이 수명 연장을 위한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하며 나를 한번 만나 보라고 권하더라고 했다. 동생에게 나를 만나겠느냐고 물었더니 미소를 지었다고 했다.
언니의 말로는 50년 전 동생이 나와 헤어진 다음 주에 부산 대청동 메리놀수녀원에 들어갔고, 수녀가 되어서는 캐나다 밴쿠버에 가서 장애아를 돌보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3년 전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귀국해서는 메리놀수녀원에 머물면서 메리놀병원에서 치료받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동생을 위해 한 번 만나줄 수 있겠냐고 간청했다. 나는 그 간청에 이끌려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예, 예’하다가 결국 만나겠다는 약속을 하고 말았다.
오늘 오후 5시, 해운대 C 호텔 커피 라운지! 약속한 시각,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라운지에 들어가 발아래 파도가 치는 창가에 입구를 보고 앉았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그녀를 만나면 어떻게 부를까? 수녀님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해자 씨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그리고 시갈은 주로 편지에서나 불렀던 이름이고.
10분 정도 기다리자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노령의 여인이 감색 코트를 입은 여인을 부축하며 들어왔다. 얼굴에 남은 옛 모습에 그들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나는 입구로 가서 그들을 맞아 자리로 안내했다. 베이지색 코트를 입은 언니는 흰 머리를 뒤로 걷어 올렸고, 시갈은 머리에 진홍색 털모자를 썼는데 얼굴에는 주름이 잔잔히 흘렀다. 목이 중간 정도 올라간 붉은 색 스웨터를 입은 것이 감색 코트 깃 안으로 보였다. 수녀복을 입지 않았지만, 수도자의 기품이 느껴졌고, 얼굴에는 병색이 흘렀다.
“정말로 오래간만입니다.”
“예, 부산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의 인사에 언니가 대답했고, 그녀의 눈길과는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의 눈길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다시 물었다.
“얼마 만이지요?” “······”
나의 거듭된 물음에도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나는 오래간만이라는 것과 얼마 만이냐는 말 외에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도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웨이터가 오자 그녀의 언니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켰고 나도 같이 시켰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나는 그녀의 언니와 근황에 관해 몇 마디 얘기했을 뿐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언니가 들려준 바로는 3년 전에 캐나다에서 돌아온 후 오늘이 가장 밝은 표정의 외출이었다고 했다. 외출 때도 항상 수녀복을 입었는데 오늘은 귀국해서 처음 평복으로 외출하게 되었고, 진홍색 털모자와 붉은색 스웨터를 그녀가 직접 골라 입었다고 했다. 언니와 이야기하는 내용을 안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2층의 일식당으로 올라갔다. 대학생 때부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이었다. 달맞이곶 아래까지 길게 뻗은 백사장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모둠초밥에 전복과 멍게를 시켰다. 특별히 화이트 와인 석 잔도 주문했다. 나는 그녀의 언니와만 이런저런 얘기를 이어갔다. 먼저 전복과 멍게가 와인과 함께 나왔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와인 잔을 부딪칠까 생각하며 머뭇거리다가 말없이 언니와 잔을 마주치고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그녀의 잔에도 살짝 부딪쳤다.
돌돔 초밥을 가운데 두고 여러 종류의 초밥과 함께 주방장 특선이라고 하며 성게 알 초밥도 나왔다. 시갈은 전복과 멍게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고 초밥은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그녀는 와인을 아주 조금 한 모금을 마셨다. 언니는 그녀가 오늘 많이 먹는다고 말했고 그녀는 표정이 없었다. 나는 메리놀수녀원 이야기와 밴쿠버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언니가 전화로 말한 것 이상을 알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보다 밝아진 것 같았지만 말이 없었다. 나는 옛날 기적 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달리던 동해남부선 철길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녀와 송정 해변에 갔던 일을 얘기했으나 그녀는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내가 정부에서 일할 때 밴쿠버에 출장 간 일이 있었다고 말하며 밴쿠버가 아름다운 도시였고, 스탠리 파크에 있는 토템 폴이 우리나라 장승과 닮았다고 이야기할 때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가로등이 줄을 이어 해변을 밝혔다. 언니는 우리에게 동백섬을 함께 걸으며 데이트하라면서 밤 10시에 호텔로 그녀를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우리도 일식집을 나와 C 호텔 후문으로 연결된 둘레길로 향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발아래 조명등이 비추는 인어상이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길게 뻗은 해운대 밤바다에는 파도 소리만 잔잔히 들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그녀가 원했던 대로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아픈 헤어짐을 가슴에 묻었을 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파도가 철썩거리는 밤바다의 인어상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