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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처럼 (2) – 강만수전 기획재정부장관

내가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것은 1967년 4월 부산역에서 밤 10시에 서울로 가는 보통 급행열차 은하호에서였다. 봄비가 조금 내리던 밤이었다. 보통 급행열차는 좌석 지정 없이 두 사람씩 마주 보고 앉게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세 명씩 여섯 명이 비좁게 앉았다. 그날 밤 내 좌석 안쪽에 먼저 자리 잡은 중년 아저씨는 우리와 함께 앉을 몸이 작은 총각이나 처녀를 고르느라 사람들이 자리 있느냐고 물으면 있다고 하다가 출발 시간이 가까워도 앉힐 사람을 찾지 못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몸집이 조금 있는 아줌마가 앉을 수 있느냐고 물어 와 하는 수 없이 그러라고 했는데 실제로 앉은 사람이 그 아줌마의 동생 해자 씨였다.
언니가 잡아준 내 옆자리에 그녀가 앉은 후 열차는 서서히 움직이며 부산역을 출발했다. 언니는 창가에서 동생 쪽으로 손을 흔들었고, 플랫폼에서 환송객들이 흔드는 손길을 지난 은하호는 북으로 달렸다. 열차는 여러 번 길게 빠~앙~ 기적을 울리며 봄비 내리는 낙동강 굽이 철길을 철커덕거리며 달렸다. 경전선을 타고 온 서부 경남 승객들이 삼랑진역에서 승차하자 열차 안은 어수선해졌다. 자정 지나 도착한 대구역에서는 많은 사람이 또 탔다. 좌석을 못 잡은 사람들은 양쪽 출입문 쪽에 섰는데 운 좋은 사람은 문간 바닥에 앉거나 좌석 팔걸이에 걸터앉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술을 마시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열차가 왜관의 낙동강 철교를 지날 즈음에는 비가 그쳤고 차창 밖에는 산기슭의 웅크린 모습이 불빛에 살같이 지나갔다. 내 좌석 창 측 중년 아저씨는 코를 골았고 앞자리 청년들도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머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젖히고 잠들었다. 열차가 추풍령을 오를 때 창밖은 캄캄한데 불빛이 보이는 굽이마다 기적을 울렸다.
나와 옆에 앉은 그녀만 잠들지 않고 있었다. 열차가 터널을 지나고 굽이를 돌면서 기적을 울리며 심하게 쏠렸다. 나는 왼쪽으로 기울며 그녀의 어깨를 밀치게 되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괜찮다는 뜻으로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침묵을 그녀가 깼다.
“지난 겨울방학 때,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갔지요?”
“그랬는데요?”
“S 법대에 다니시죠?”
지난 겨울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서울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던 일을 생각했다. 대학생들은 특급 열차보다 주로 요금이 싼 보통 급행열차를 탔다. 밤 10시에 서울역을 출발하여 밤새도록 밤하늘 은하수 아래를 9시간 달려 다음 날 새벽 7시에 부산역에 도착하는 은하호였다. 대전 대구를 경유하는 은하호는 읍 단위 이상 역에는 대부분 섰기 때문에 방학 때면 귀향하는 대학생들로 가득 찬다. 좌석을 잡으려면 개찰이 시작되자마자 경주하듯이 달려가거나 아니면 입장권을 사서 미리 들어가 기다리다가 객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면 재빠르게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때 우리는 네 명이었는데 자리는 두 개를 겨우 잡아 번갈아 가며 앉아서 갔다. 우리는 오징어와 소주를 사서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며 갔다. 그때 건너편 좌석에 여대생들이 여럿 타고 있었는데 복도 쪽에 앉은 여대생이 내게 팔걸이에 걸터앉게 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녀가 진홍색 코트를 입었다는 생각까지 났다.
“맞아요. 어떻게 그걸 알지요?.”
“가슴에 달고 있는 배지를 보았지요. 한일회담과 3선 개헌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더군요.”
“그랬지요. 데모의 중심이 S 법대였으니까요.”
“데모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일회담은 체결되었잖아요?”
“그랬지요. 한일회담으로 얻은 청구권 자금이 3선 개헌으로 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해요.”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잘은 몰라요. 공화당의 개헌 연구에 참여했던 교수를 통해 흘러나온 얘기라고 해요. 3선 개헌을 못 막으면 대만 장개석의 총통제로 가게 된다고도 했어요.”
“부산에는 무엇 때문에······?”
“결혼식에 왔다 가는 길입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집의.”
내가 고등학교 때 가정교사를 하던 집의 주인은 나를 자식같이 대해 주었는데 그 집 장녀 결혼식에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는 아르바이트한다는 필요 없는 말까지 했는데 야간열차에서 일어난 두 번의 우연이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서울에서도 아르바이트하세요?”
그때 가난한 대학생들은 가정교사를 하며 검정색으로 물들인 군복 한 벌로 사철을 버티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입은 검정색 군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 고3을 가르치고 있어요.”
귀밑머리가 조금 흘러내린 그녀의 옆모습을 보니 하얀 살결에 눈썹이 가지런했다. 나는 고등학교 독일어 교과서에 실린 괴테의 시 「미뇽」의 삽화로 나오는 머리카락 날리며 창공을 바라보는 여인의 그림이 생각났다. 그 시와 그림이 좋아 그 페이지를 오려서 육법전서에 책갈피로 넣고 다녔는데 오늘 바로 그 미뇽이 다가온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거부할 수 없는 감정에 끌려서 노트를 꺼내 「미뇽」을 적었다.

「Mignon」 미뇽
Nur wer die Sehnsucht kennt,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Weiß, was ich leide! (나의 괴로움을 알아주노라)
Allein und abgetrennt (홀로 떨어져)
Von aller Freude (모든 기쁨으로부터)
Seh ich ans Firmament (나는 창공을 바라보노라) Nach jener Seite. (저 멀리)
Ach! der mich liebt und kennt. (아! 나를 사랑하고 알아주는 이는) Ist in der Weite (저 멀리 있구나)
Es schwindelt mir, es brennt (어지럽고 타노라) Mein Eingeweide. (나의 애간장이) Nur wer die Schnsucht kennt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Weiß, was ich leide! (나의 괴로움을 알아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