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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깡 – 문경자 수필가

컴퓨터를 켰다. 글제목을 미나리 깡으로 정했다. 자판기를 두드리니 미나리 밭으로 변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파란 싹이 자랐다. 내 글도 이렇게 자라서 푸르게 채웠으면 좋겠다. 글자들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몸체는 기둥이 되어 중심을 잡아주었다. 내가 쓰고 있는 글도 청청하고 푸름이 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얼어붙은 미나리 깡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작은 몸집이 가냘프게 보였다. 유리창에 얼굴을 바짝 붙였을 때 코와 입이 눌려 있는 모습과도 흡사하였다. 두껍게 얼음이 얼면 얼음지치기도 하였다. 미끄러워 자빠져도 깔깔 웃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미나리도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날씨가 차츰 풀리면 잠을 깨고 푸른 목을 내민다. 아이들도 그렇게 파란 하늘을 보고 새순같이 자란다. 겨울 옷을 벗고 묵은 때도 벗겨내니 산골아이들도 윤기가 났지만, 미나리 새순만큼은 예쁘지 않았다. 봄이 오면 크고 작은 새싹이 수북하게 올라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송이네 미나리 깡은 도시의 명당자리에 있는 미나리 식당보다 인기가 많았다. 송이 아버지는 미나리에 대한 정성이 대단하였다.
진흙탕 속이나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한 삶을 사는 미나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나무와 곡식들이 가뭄에 메말라도 미나리는 끝까지 살아남는 근성이 있다. 봄 미나리는 향기가 좋았다. 경사가 있는 날이면 미나리는 다른 나물에 비해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윤기가 흐르고 이파리는 참기름을 바른 듯하고, 줄기는 통통하여 탐스러웠다. 송이아버지는 인심도 후하여 저렴한 가격에다 들고 갈 수가 없을 만큼 미나리를 베어주었다. 장날이면 지게에 지고 가서 몸값을 톡톡히 받아 효자 노릇도 하였다. 송이는 아버지가 사다 준 왕사탕을 가지고 나와 자랑을 하였다. 아이들은 병아리가 엄마를 따라가듯 꽁무니를 촐랑거리며 따라다녔다. 눈치 빠른 송이는 차돌로 비닐봉지에 든 사탕을 부쉈다. 햇빛에 반짝이는 사탕은 보석 같았다. 아이들은 사탕을 실컷 먹은 후에도 송이에게 친한 척하며 종일 붙어 다녔다.
미나리를 베어낸 자리에 또 미나리가 자라 바람에 한들한들 춤을 추었다. 지나가는 아낙들의 가슴도 살랑거린다. 농번기가 오기전에 아낙들이 일년에 딱 한번 자연과 더불어 봄바람을 피운다. 마을 행사가 있는 날이면 동네 이장은 정자나무에 달린 스피커를 통하여 알려준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을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농사철을 앞두고 아낙들이 뭉쳐 단합을 하여 즐기는 날이다. 아무리 엄격한 어른들도 이날만큼은 시집살이에서 해방을 시켜주었다. 남편들은 집에 남아 부모님들의 시중을 들어야했다. 한마디 불평을 하다가 어른들께 잔소리만 듣게 되어 내심 화를 꾹꾹 눌렀다. 장롱속에 잠자고 있는 한복을 꺼내 곱게 차려 입은 아낙들은 장구를 메고 미나리 깡을 지나 육모정 정각에 모여들었다. 해마다 열리는 봄놀이였다. 정순이 엄마는 장구를 잘 쳤다. 장구소리에 맞추어 아리랑을 부르며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모습은 정각 뜰에 늘어져 한들거리는 버들가지처럼 예뻤다.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쪽진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입가에 미소 가득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나비 같았다. 행복해하는 엄마 얼굴은 복사꽃을 닮았다.
아낙들은 장만해온 음식을 멍석 위에 즐비하게 늘어놓았다. 집에서 만든 막걸리와 미나리무침과 무채 등 갖가지 나물로 훌륭한 밥상이 탄생했다. 아이들도 엄마 곁에 앉아 미나리비빔밥을 기다렸다. 커다란 대접에 담긴 밥은 보기만해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미나리나물은 무채보다 백배나 맛있었다.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보니 소나무 뒤로 뉘엿뉘엿 해가 넘어간다. 아이들은 엄마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으로 미나리 깡을 지나 집에 왔다. 엄마는 환한 얼굴로 고운 한복을 벗어 안방에 걸어 두었다. 저고리와 치마가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엄마 이마에 있던 깊은 주름살도 가늘게 보였다.
그때만큼 미나리나물을 맛있게 먹어본 기억이 없다. 내가 살았던 동네에 들어서면 미나리 깡은 없고 시멘트로 만든 집이 서있었다. 미나리 나물을 무쳐서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을 때면 생각이 난다. 글을 쓰다 보니 컴퓨터에 나의 미나리 깡이 하나 생겼다. 글이 새순처럼 부드러워 덜 자란 것 같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 때문에 글을 채우고 보니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끝맺음을 하고 컴퓨터를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