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가사문학의 정취와 죽향이 서린 담양으로 향하다 (3-2)

이성동
논설위원

면앙정에서
누정(樓亭)은 선비들이 쉬면서 시정(詩情)을 겨루고, 노래하며 교유(交遊)하던 곳이다. 세시가무(歲時歌舞), 유흥상경(遊興賞景)의 흥취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곳이 또한 누정(樓亭)이며 여기서 창작된 것이 누정시(樓亭詩)와 가사문학이다. .
가사(歌辭)는 시조(時調)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시가(古詩歌)의 대표적 장르이다. 가사문학의 발생 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는 않으나 대체로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특히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와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이 그 발생 시기를 가늠하는 초기의 작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상춘곡>이후 가사는 조선시대 사대부층(士大夫層)에 의해 폭 넓게 향유되면서 사대부(士大夫) 시가문학(詩歌文學)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강호(江湖) 죽림(竹林)생활을 비롯하여 명승지역 유람, 유배의 체험, 유교적 이념의 설파 등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송순(宋純)과 정철(鄭澈)은 바로 이러한 시기에 <면앙정가>,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통해 사대부 가사의 절정을 구가(謳歌)한 작가들이다.
일행이 호남 제일의 가단(歌壇)을 형성한 가사문학 창작의 산실 ‘면앙정(俛仰亭’)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이날 오후 4시 20분, 면앙정은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 제월봉 아래 언덕에 있다. 입구에서 백여미터 정자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흔한 구조에, 마루에 방 한 칸을 마련하니 자연스레 정면과 좌우 3면에 마루가 남는다. 마루에 앉아 시회(詩會)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비가 오거나 날이 추우면 방안에 들어가 독서하며, 낙을 즐겼을 만하다. 정자 앞은 너른 마당에 제월봉으로 막혔고 정작 탁 트인 경관은 정자의 뒤편에 있다. 가까이는 산줄기들이 병풍처럼 잇대어 있고 발아래 사람의 집과 들판, 강이 펼쳐진다. 멀리는 추월산과 무등산까지 100여리에 이르는 풍광이 한눈에 조망되고 있다.
이 정자는 송순(宋純, 1493~1582)이 41세 되던 중종 28년(1533년)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지은 것이다. ‘면앙(俛仰)’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 본다는 뜻이니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유유자적(悠悠自適)한 그의 심성이 잘 드러난다. ‘면앙정 삼언시’에서 면앙정의 유래를 느낄 수 있다.

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르면 하늘이라
정자 속에는 크고 넓은 흥이 있네
풍월을 불러들이고 아름다운 산천은 끌어당겨
명아주 지팡이 짚고 가며 한 평생을 보내리라

그는 김안로 일파가 세력을 잡자 조정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시를 읊으며 지냈다. 3년을 여기서 은거한 끝에 김안로일파가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나아갔다, 그리고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을 끝으로 공직을 끝내고, 다시 이곳에 돌아와 91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곳에서 퇴계 이황(退溪 李滉)을 비롯하여 강호제현(江湖諸賢)들과 학문이나 국사를 논하기도 하였으며, 기대승(奇大升), 고경명(高敬命), 임제(林悌), 정철(鄭澈) 등의 기라성(綺羅星)같은 후학을 길러낸 유서 깊은 곳이다.
정자 앞마당 한쪽에는 송순이 정자를 지은 뒤 심었다는 참나무 두 그루가 아직까지 살아 청청하다. 정자 안은 우리나라 대표 가사 문인들의 가사가 전시되어있다. 고봉 기대승의 ‘면앙정기’, 백호 임제의 ‘면앙정부’, 석천 임억령의 ‘면앙정 30경’, 송순 자신의 ‘면앙정 삼언가’가 판각돼 걸려 있다. 퇴계 이황과 하서 김인후의 시(詩)도 걸려 있다.
‘면앙정가’는 정극인의 ‘상춘곡’과 함께 호남 가사 문학의 원류가 된다. 내용 형식 가풍(歌風) 등에서는 정철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날의 마지막 여정으로 일행이 들렸던 곳은 조선조 찬연했던 송강 정철의 송강정(松江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