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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역사다 (43) 저출산은 누구 탓인가 – 권길홍 수필가

우리에게 애국심이라는 이념은 사라졌는가? 요즘의 우리는 애국이라는 그 순수한 이상을 유치하다고 깔아뭉개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정말 지고지순한 애국이라는 이념은 너무 순수해서 유치하다고 불려져도 좋을 만한 이념이다. 그래서 유치하지만 이 애국이라는 이념처럼 귀하고 좋은 이상이 있는가?
저출산문제를 정부는 거의 경제적인 문제로만 초점을 맞추어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나 지자체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듯이 지출했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실망이 크다. 과연 이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젊은이들의 경제적 무능이거나 자식을 기르고 대학을 보내는 일에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겼을까? 그럼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학력자들의 저출산은 어떤 이유일까? 또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하는 일들이 그저 돈만 들이면 되는 일일까?
우리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에게서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거나 그저 돈벌어라, 좋은 직장을 목표로 공부해라는 이런 말만 듣고 자랐다.
또 자식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정에서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모습보다 부모들끼리 화내고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든지 부부의 맞벌이로 가정교육이라는 걸 가르칠 여유도 없이 바쁘게 허겁지겁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자식들은 자신의 아이를 기르고 싶어 할까?
반대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함께 어울리고 다정하게 지냈던 부모의 모습을 기억하는 청년들은 자신의 아이를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오히려 공부만 해야 하는 삭막한 상황에서 성장했던 세대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기른다는 건 바로 자기 부모세대와 꼭 같이 힘들고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걸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 땅의 청년들이 아이를 가지는 것도 포기하지만 결혼까지도 포기하는 세대로 우리 어른들이 만들었던 걸 아닐까?
학자들의 애 기르는데 몇억이 드느니 하는 싸구려 이론에 아무 대꾸조차 못하는 부모들이다. 아니 애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 속에 느끼는 그 희열은 얼마나 큰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 희한한 분위기! 애를 낳아서 안고 어르며 재롱으로 길렀던 처음 2,3년의 기간이 평생 자식에게 바친 수고를 전부 보상해준다는 그 말은 다 잊은 세대들! 사랑스러운 내 자식으로부터 방긋거리는 그 미소가 얼마나 기쁜 일인지, 천하보다 더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어리석은 세대!
‘절량농가를 근절하자’ ‘기아를 퇴치하자’ ‘식량을 증산하자’는 슬로건이 전국 시청 도청 건물에 대형 현수막으로 걸려 있었다.
‘증산’ ‘수출’ ‘건설’이 당시의 국정지표였다. 동네 대항 축구시합을 할 때에도 ‘증산팀’ ‘수출팀’ ‘건설팀’으로 나누어서 머리띠에 써넣었다.” (우리의 6,70년대를 백영훈박사님께서 표현하신 글에서 인용.)
이런 식으로 경제개발이니 수출주도산업화라는 하나의 정책이 달성되려면 그 공무원이나 관계자들이 매사에 철저하게 집행이 되도록 머리를 짜내야 하는데,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드러난 이후 우리나라는 무사안일하고 편안한 행정만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박정희는 산아제한이라는 정책을 너무 잘 집행했다. 유엔에서 인정할 정도로! 그 당시의 우리나라 사정상 국민들은 항상 배고픈 상태라 정부로서는 먹는 입을 줄이는 게 급선무였고 경제정책에서도 우선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잘 살게 될 줄을 알았나? 인간이란 호주머니가 두둑해지고 편하게 되면 일하기 싫고 게으르게 되듯 자식도 낳지 않고 눈앞의 재미만 추구하는 동물이 되는 줄 몰랐던 것 같다. 허긴 로마도 부강해지니 여자들이 애 낳기를 싫어하여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자식이 없는 과부에게는 상속권을 주지 않도록 법을 개정하여 애를 더 많이 낳도록 했지만! 이와 반대로 박정희 시절은 너무 못 먹고 못살 때라 먹는 입을 줄이는 산아제한정책을 고수했고, 그래서 초지일관 저출산 정책을 밀어부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 이후의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밥을 먹고 살게 될 때라 출산정책은 달라져야 하는데 이후의 대통령들은 아무도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냥 안일한 정책에 거의 돈으로만 때우려는 형식적인 조치만 취했던 무능한 정책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후의 집권자들은 출산정책에서 왜 아무런 변화도 보여주지 못하고 효과도 없는 정책만 보여주었을까?
우리나라는 2002년 이후부터 합계출산율이 1.3에도 못미쳐 초저출산국가로 분류된다. 참고로 2017년의 합계출산율은 1.06인데 당시에도 OECD국가중 최하위다. 더 나아가 2020년에는 0.84로 세계 최하위 그룹이다. 21년은 더 낮은 0.81명이고 2022년에는 0.78이라든가! 남녀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한 명도 안 되는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다. 2년 연속 세계 198개국에서 최하위다. 2001년도에는 무려 50만 명대를 기록했던 연간 출생아 수는 약 20년만에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영국의 어느 학자는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국가적 존립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서는 합계출산율이 1.3을 밑도는 이런 저출산이 계속되면 지금부터 200년이 지난 2300년경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예언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복지예산으로 10년간 무려 209조를 쏟아부어 출산률을 올리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합계출산율이 작년에 0.81명이고 OECD국가중 최하위!
전국적으로 228개 시군구 지역에서 105개 지역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소멸위험지역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30년 이내에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통치자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박정희는 그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정말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살아갔던 국민을 위해 산아제한을 실시하게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불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정책에서 심지어는 애국심으로 국가적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 낳기를 절제해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아이를 적게 낳은 사람들에게 아파트 분양에서 특혜 비슷한 조건도 부여하고 예비군훈련을 받으면서도 정관수술을 받도록 하여 출산율을 낮추려 했던 그 당시 정부의 집요함을 우리는 보았다. 이와 반대로 그 후의 정권에서 저출산으로 변화하는 징조를 조금이라도 읽을 줄 알았으면 그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과는 달리 애를 많이 낳은 청년들에게 아파트분양에서 특혜도 주고, 직장에서나, 대학입학시험에서도, 군입대에서 어떻게 하든 특혜를 주어 저출산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하는데 아무런 정책의 변동 없이 세월만 보낸 것 같다.
국민소득이 100불일 때와 몇천불에서 2,3만불로 올라갈 때의 정책은 어떻게 변했나? 변한 게 아니라 거의 무관심하게 아무런 대처도 안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돈만 주면 아이를 낳을 거라고 쉽게 생각하여 국민소득이 무려 200배나 증가해도 그저 돈으로 혜택을 준다는 식의 무사안일한 정책들! 정책의 신축성이나 상황에서 전혀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통치자들! 전혀 변화할 능력도 없었고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여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책임감이나 악착같음도 보여주지 못하는 정책입안자들!
다양한 출산장려정책도 시도하고 여러 정책을 제시해야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왜 지금은 애국심에도 호소하고 주택분양과 구직에서 특혜를 주지 않나? 요즘 세상에 애국심이라는 고리타분한 이념이 먹혀든다는 순진한 생각이고 촌스럽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 잘났다고 자부하는 국민들에게 “애국심에 호소라도 해봤어”라고 역설적으로 생각하며 애국심으로 밀어부쳐야 하는 건 아닌가? 직장도 애를 많이 낳은 청년 순으로 합격시키든지 하고!
이 저출산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사태의 위중성을 깨닫지도 못하는 나라인가? 다음 세대에 소비가 없는 상태에서 국내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인지 또 연금 납부를 해줄 청년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연금제도가 존립이 될 건지 그저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무사안일한 사고에다 자신의 권력을 쥐는 시기만 계산하는데 정신이 팔려 나라의 먼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는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