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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단상 – 윤창규 수필가

금년은 계묘년으로 출생 아이들은 토끼띠가 된다. 토끼는 성질이 온순하고 평화롭고 온화한 느낌을 주어 외모에서 길조의 동물이라는 선입감을 준다. 특히 금년은 행운을 주는 검은 토끼해라 하여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갖게 한다. 아기의 출생을 선호하고 사업이나 상업경영의 대박을 기대하기도 한다.
나는 20세기 전반기에 출생하였다. 2차 대전 후 미·쏘 양대 진영의 냉전 체제에서도 과학과 의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덕분에 21세기에서 인생 후반의 고희를 넘기고 팔순을 바라보게 되었다.
생전에 계묘년을 두 번 겪으면서 그 소회를 피력해 본다. 첫 번째 겪은 계묘년은 1963년도로 15살 사춘기 소년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 있을 때였다. 당시는 자유당 정부의 장기집권 체제가 4.19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었으나 정국이 혼란하여 사회질서는 문란하였고 국민생활은 매우 핍박하였다.
1961년, 5·16군사 혁명을 맞이하여 계엄령과 정부의 공약 실행으로 사회가 차츰 안정되어 가는 중이었지만, 6·25 한국전쟁으로 전국토가 폐허가 되어 국민의 생계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한 여건에서도 베이비붐으로 급속한 인구증가가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인구절벽을 우려하는 지금에서 보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 마을마다 청소년들이 북적거렸고, 먹는 입 하나 더는 것이 큰 과제였다. 그해 계묘년(1963년)은 이른 봄부터 몇 달간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의 보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보릿고개의 유일한 양식인 보리밥도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6월 초순 경 겨우 남은 보리라도 거두고 모내기와 보리 후 작물을 파종하려고할 때였다. 지역의 재건국민운동 본부라는 기관에서 영화를 상영한다고 야간에 이웃 마을 앞 공터에 오라는 연락을 듣고 친구와 같이 갔다.
그날 관람한 영화는 대표적인 농촌 계몽영화 상록수였다. 주인공 두 남녀가 농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피폐한 농촌을 재건하는 것이 줄거리였다. 그날 밤 활동사진 필름이 절반쯤 돌아갔을 무렵 그렇게 애태우며 기다리던 작은 빗방울이 똑똑 귓전을 때렸다. 초저녁에 밀려오는 먹구름의 세력을 보아 가랑비 정도로 그칠 것 같지 않았고. 결국 관람하던 영화는 아쉬움만 남기고 중단되었다.
그때 시작한 짓궂은 비는 여름 장마로 이어져 수십 일간 때로는 소나기를 쏟아 부우며 대지는 온통 질펀한 갯벌로 변하였다. 계속된 가뭄으로 보리와 밀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거기다가 오랜 장맛비로 겨우 건져낸 보리와 밀 이삭을 작은 나무 가지로 만든 홀개로 훑어 구들방 아랫목에 말려서 도정하여 밥을 지어 겨우 주린 배를 채웠다.
보리 이삭은 빗물에 젖어 곰팡이가 생기면서 보리 알갱이가 온전하지 않았다. 그 보리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배탈이 날 지경이지만 식량이라고는 유일한 곡식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 해를 ‘계묘년 보리흉년 ’이라고 하면서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곡인 벼를 심으려면 못 자리를 해야 하는데, 봄 가뭄이 워낙 장기간 계속되다 보니 못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장마 비가 와도 심을 모가 없었다. 정부에서 타 지역 모를 구해 트럭으로 싣고 와 나눠 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60년 전의 계묘년은 혹독한 천재지변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은 암담한 고난의 해였는데, 금년 계묘년은 사회는 모든 면에서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하였지만, 국내외에 정세가 복잡하기만 하다.
북한 정권의 무모한 도발 협박과 국내의 해묵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 러·우크라이나 전쟁의 계속, 코로나19와 같은 괴질환 등으로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서민생활을 불안케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산천이 여섯 번 바뀐 세월에 나는 팔순을 바라보는 노년의 삶을 누리고 있다. 백세시대의 호사라고 생각된다.
60여 년 전 나라의 정치·경제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다 못해 구국의 결단으로 나서서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켜 경제개발 초석을 다진 통치자께서 하신 말씀 중에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마이카시대가 올 거라고 하였을 때에 보통 사람으로서 그 말을 믿고 기대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빠르게 실현되었다.
우리나라는 전통 농업국가로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제개발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지게에서 리어카, 경운기 그리고 자동차로 이어져 드론으로 도약하였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쌀과 보리가 주식이던 때는 지난 세기말까지의 이야기다. 보리쌀은 경상도 보리문둥이란 비속어가 있을 정도로 필수의 주곡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리밭을 구경하기도 어려워졌다.
1963년의 계묘년과 2023년의 계묘년 그간의 변화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지만, 칠십 여년 한결같이 변하지 않은 것은 오로지 휴전선 북쪽 삼대 세습 공산정권의 남침야욕 뿐이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도 국내에서 이념적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60여 년 전 계묘년 천재지변은 혹독한 악몽이다. 그것을 망각의 늪으로 흘려보내고, 코로나19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우울한 사건들이 빨리 해소되고, 한반도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날이 금년 계묘년 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자라나는 우리 후손들은 국토의 어느 지역이든 희망과 꿈이 넘치는 금수강산으로 가꾸어 한강의 기적에 이어 ‘낙동강의 기적’과 대동강의 기적으로 성장의 물결이 확장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