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뉴스홈

합천문화유산 감성답사기 “영암사지” – 정의권 작가

정의권작가
합천군 대양면 출생,
강원일보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장편소설 부문 선정

꽃을 보는 법 -서정주

혼자서 고향을 떠나
어느 후줄근한 땅의 막바지 바닷가나 헤매다니다가, 배불러서는 무엇하느냐?
먹는 것도 어쭙잖은 날이 오거든
맨발 벗고, 설움도 차마 아닌 이 풀밭길을
인제는 혼잘 것도 따로 없이 걸어오너라.
그리하여 어디메쯤 놓여 있는 천 년 묵은 산의 바윗가에 처음으로 눈웃음을 웃고 오는 네 오랜만의 누이 –
나무를 보리니……

대체 꽃을 보는 법이라니?
일찌감치 벚꽃이 져버린 폐사지를 향해 가면서 연신 혼잣말이다. 어느 해 겨울, 황매산도 영암사지도 온통 눈꽃으로 뒤덮인 날에, 인연이라 생각했던 여인과 어둠이 내리도록 영암사지를 걷고 또 걸었었다. 절터에 하늘 가득 꽃잎이 흩날리고, 마른 잔디에 녹음이 짙어 풀밭으로 변해갈 때 다시금 찾아오자며 귓속말로 나를 어지럽혔던가.
그때 나는 꽃비에 휘감긴 폐사지의 풍광, 그리고 제석천과 수보리를 떠올렸다. 이제 막 서로를 알아갈 무렵이었지만 달빛 품은 눈밭처럼 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옛날 옛적 수보리가 토굴에서 오랜 선정 끝에 깨우침을 얻으려는 찰나 이를 본 제석천이 하늘 가득 꽃비를 내리며 축복했다. 그러자 이를 부끄럽게 여긴 수보리가 토굴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나. 잠시 잠깐이라도 깨달음이란 아집이 얼굴에 드러났다면 진정한 득도가 아니라면서. 물론 지금도 나는 그 꽃비를 상상하자니, 갓 피어오르던 두근거림을 여전히 감추지 못할 것임에야.

영암사지에 다다르자 절터 가득 녹음을 머금은 풀밭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승방 터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등산객의 뒷모습이 보인다. 모산재에서 내려오는 그들이 산 아래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일종의 샛길. 대개 그들은 높이 쌓인 석축을 올려다보며 산골짜기에 이렇게 큰 절터가 있네, 라며 탄성을 자아내지만 긴 산행의 피로감에 못 이기는지 서둘러 갈 길을 재촉한다. 나 역시 아쉬운 탄성이 절로 난다. 영암사지라는 천년의 상상. 그 영겁의 여정이 저기 석축 위 석탑 터에서부터 비로소 시작이다.
석탑 터를 아우르던 회랑은 이제 주춧돌만 남아 버렸고, 그 넓은 공간을 삼층석탑만이 처연히 지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너무도 고즈넉한 산사. 옛사람들은 금당 앞을 비추는 쌍사자석등, 그 불빛을 눈에 머금은 채 무슨 소원을 빌며 탑을 돌고 또 돌았을까. 나 역시 그 여인과 말도 없이 석탑 주위를 내내 맴돌았었다. 눈 쌓인 산사에 달빛도 가득해서 마치 석등 화사석 사이로 광명이 뿜어나오는 듯한 착각에 휩싸일 정도였다.
아쉽게도 그날 탑돌이에서 기억나는 것은 탑 기단 아래에 기단이 하나 더 묻혀 있다는 말이 유일하다. 오래전 가회면 주민들이 탑을 보수하면서 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언제 누가 기단을 다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저마다 억겁의 사연을 가슴 속 깊이 묻은 채 그 위에 새 탑을 분연히 쌓아 올리며 살아가는지도.

석탑이 품어주는 너른 공간 사이를 돌고 돌며 회한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그제야 꽉 움켜쥔 기억을 내려놓고자 금당지로 발길을 옮긴다. 금당지로 올라가는 석축에는 국내 유일무이한 무지개돌계단이 천년 세월이 무색하게끔 옛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놓여 있다. 더구나 마침맞게도 좌우 계단 모두 6칸씩 단을 조각해 놓았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세상사 온갖 괴로움을 모두 소멸시켜 중생을 편안케 하리라는 사자후. 신기하게도 무지개돌계단 여섯 칸을 밟아 올라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부처를 모신 세계, 금당지로 올라서는 것이다.
그전에 잠시 나는 돌계단의 이면을 돌아본다. 공들여 다듬은 외면과 달리 안쪽은 투박한 망치질이 결결이 살아 있다. 어찌 이를 단지 석공의 게으름으로 치부할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마무리가 돌계단의 아름다움을 더욱 배가시킨다. 정교한 외면과 날 것을 최대한 남긴 내면. 구태여 정 끝으로 매끈하게 다듬지 않아도 이처럼 오묘한 조화를 드러낸다.
이제 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돌계단을 오른다. 발을 반쯤만 디딜 수 있게끔 폭이 아주 좁다. 예불을 드리러 가는 경건한 마음처럼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그때마다 마치 천년의 이끼가 발끝을 파고드는 기분이다. 석가모니의 일곱 걸음처럼 걸음마다마다 연꽃이 피어오르는 것일까. 발바닥을 타고 오르는 화강암의 거친 질감이 어느새 부드러운 연잎으로 변하며 발등을 감싸오면, 세월도 어쩌지 못할 엄숙함에 빨려든 채 비로소 금당지에 마지막 걸음을 내려놓는다.


영암사지를 대표하는 보물 중 하나가 바로 금당지 앞에 우뚝 서 있는 쌍사자석등이다. 현재 국내에 총 6기만 남아있다는 쌍사자석등. 그 중에서도 영암사지 쌍사자석등은 화려함은 물론 독창성까지 두루 갖춘 걸작에 속한다. 특히 가슴을 맞댄 두 마리 사자가 튼실한 다리와 굵은 허리로 상대석을 받치고 선 모습은 놀라운 균형미와 안정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하지만 사자 두 마리 모두 큰 상처를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석등을 훔쳐 가면서 다리를 절단하고 말았는데, 백년에 가까운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물지 못한 자국은 여전히 뚜렷하다.

쌍사자석등 앞에서

밤 깊은 영암사지를
홀로 걸어가 본 적이 있는가.
그곳은 등산객들의 무심한 발걸음이
산길처럼 사라지고,
불빛은 그저 견고한 돌산 아래를
가끔 비춰주는 초승달일 뿐이다.

그 어둠을 서투른 발씨로 걸어 들어가면 어느새 영겁을 휘감은
돌기둥과 마주한다. 결 따라 광명을 아로새긴 그것은,
사자 두 마리가 이미 천년 전부터
서로 두 다리를 앙버티고 서서
수많은 별빛 달빛을 때론 번뇌인양
바라보았을 터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라.
두 머리의 사자 중 하나는
아직도 참선에 빠져 있다.
화사석을 받치고서 제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던 촛불은 이미,
중생의 마음에서 억겁의 시간을
태워올렸는데,
이 어둠에서 누군가는
텅 빈 절터를 발밤발밤 되짚어온다.
그제야 나는 휑한 낮의 졸음에서 깨어
공허 아래로 반쯤 발을 내딛는다.

영암사지, 특히 금당지에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진귀한 석조물이 무척이나 많다. 그 중 가장 호기심을 끄는 이는 금당 좌우 소맷돌에 새겨놓은 가릉빈가이다. 불경에 등장하는 상상의 새로 극락에 깃들여 살며,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하고 있다. 자태와 소리 모두 아름답고 묘하여 묘음조(妙音鳥)로도 불린다. 악곡연주, 춤과 노래로써 부처님을 공양하거나 설법 장소를 성스럽게 변모시킨다고 한다.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가릉빈가의 얼굴은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애석하게도 천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기어 표정을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궁금함을 자아낸다. 영암사지의 그 어떤 석조물보다 정감 넘치는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엄숙한 얼굴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내 애잔한 의문에 옛 여인이 말했었다. 꽃을 보는 법을 아느냐고. 가릉빈가의 얼굴 위로 활짝 핀 이끼를 가느다란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거듭 물어 왔던 것이다.

가릉빈가의 얼굴과 목소리를 한껏 떠올리며 한참 만에야 금당으로 올라선다. 물론 여기에도 주춧돌과 불상을 놓았던 기초석만이 긴 세월을 감추고 있다. 물론 언제 어떻게 금당건물과 불상이 사라졌는지는 영암사의 역사만큼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마치 양족선(兩足仙)이 된 듯 기초석 앞에 서서 쌍사자석등을 바라본다. 석등 화사석 공간 사이로 석탑의 옥개석이 보인다. 이미 진즉에 해는 기울어 골짜기 가득 깔렸을 어둠이 달빛 덕분에 점점 회색처럼 엷어진다. 차가운 산바람이 머릿속까지 스친다.

이 밤에 나는 무슨 연민에 빠져 이곳에 홀로 서 있는가. 두 발을 가진 존재 중에서 가장 높은 이. 양족선, 아니 부처란 허울을 벗어던지고 이번에는 천년 묵은 불상 기초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본다. 오늘도 빈 골짜기에는 적막만이 흐를 따름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얼마나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줄곧 뿌연 어두움과 마주한다. 내 내면에는 여전히 거친 망치질로도 떼어내지 못한 인연이 날 것 그대로 공명하고 있는 것인가. 다시금 정을 내리치자 쩡쩡 갈라지는 기억이 온몸에 날카롭게 파고든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비명과 같은 쇳소리 대신 두 귀에는 빈 골짜기를 울리는 반가운 발걸음 소리가 동동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저 산 아래서 누군가 이리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어느 귀인이 텅 빈 폐사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지 않을까. 뒤늦게 나는 도로 눈을 뜨고 만다. 놀랍게도 좌우 소맷돌에서 가릉빈가가 묵은 이끼꽃을 툭툭 털어내며 날개를 퍼덕인다. 이내 목을 길게 빼고서 꽃가루가 흩날리는 얼굴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렇다,

무엇이든 꽃이 될 수 있다. 불경과 같은 상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몰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석등 화사석에서 천년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도, 금당지에서 양족선이 되어 일순간 번뇌를 일일화처럼 떨구는 것도. 내내 귓가에 울리던 간절한 소리는 저만치 사라지고 없다. 냉기만 남은 불상 기초석에서 가부좌를 풀고 결연히 일어선다. 눈앞에는 집으로 이어질 풀밭길이 뚜렷이 돋아오른다. 석등이 비추지 못한 가릉빈가의 날갯짓이, 눈웃음 가득한 얼굴이 나를 어디로 이끌려는지. 그예 나는 이 모든 인연을 차마 뒤로하고 빈 골짜기 가득 발소리를 떨구며 산 아래로 점점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