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內戰) – 문계성 수필가
서울 광화문에서는 토요일 마다 촛불과 태극기가 극렬하게 싸운다. 타락할 때로 타락한 정치 현실과 이념의 대립이 만든 내전(內戰)의 축소판이다.
전 정권은, 정권 인수 시 623조 이던 국채발행잔액을 집권 5년 만에 1,031조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단 5년 만에 70년 간 국정운영 중 발생한 빛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28조원의 빚을 늘렸다. 올해부터 상환해야할 국채 이자만 25조나 되므로 상환을 위한 국채 발행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5년을 더 집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전 정권은 국가의 근간인 헌법 바꾸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값싸고 질 좋은 원전 대신 값비싼 가스를 수입하여 한전에 수십조의 손해를 끼치기도 했다. 멀쩡한 4대강 댐을 녹조를 핑계로 철거를 시도하는가 하면, 별 이유 없이 대검을 마약수사에서 배제하여 마약사범이 5배나 늘어나고, 학교에까지 마약이 침투했다. 그리고, 북한이 당장 핵을 포기할 것처럼 떠들며 돈도 주고 건물도 지어 주고, 대북전단도 뿌리지 못하게 하며 살갑게 대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어준 건물을 폭파시키고, 전 정권이 그렇게 우리끼리 사랑해야 하는 동족이라고 부르던 인민들이 굶어 죽거나 말거나하고 그 비싼 미사일을 사흘이 멀다하고 쏘아대며 남쪽을 협박하고 있다. 이제는 북한산 마약까지 침투했다는 소문이 돈다. 이 전 정권의 수장은 전 정권의 공적을 기록한 영화를 만들어 공연한단다. 공적을 스스로 치하하는 짓은 독재자들이 곧잘 했다.
이러한 정치의 중앙 무대에 선 소위 국회의원들은, 세금으로 주머니가 터지도록 세비 받고, 180개가 넘는 특혜를 누린다. 그들은 그 혜택을 길이 누리기 위하여 온갖 짓거리를 한다. 지금의 정치판은 과반을 넘는 의석을 가진 야당 천하다. 검수완박과 같은 타락한 법을 만들기 위해 자당 의원을 탈당시켜 법안을 통과시킨 후 복당시키기는 방법으로 국회질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가 하면, 매우 충성적인 그 소속 의원들은 그들에게 금뺏지를 달아준 보스의 안녕을 위하여 품위와 논리를 버리고 개거품을 문다. 그것이 자기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 그들이 하는 일은, 틈만 나면 세금으로 해외 여행하기, 이권에 개입하여 돈봉투 받기, 방송기회만 잡으면 기어이 “나는 오로지 가난한 서민을 위해 싸우는 서민”이라는 거짓말 늘어놓기 등이다. 그들 보스의 명령을 고개를 빼고 기다리다 명령이 떨어지면 마치 구국의 전쟁에 나선 날랜 전사처럼 설친다. 보스에 대한 충성이 그들의 내일을 보장할 것이다.
그들에게 돈과 명예와 권력을 쥐어준 것은 국민이지만,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곳은 그들이 숭배하는 이념이나 보스이다. 그들 눈에는, 국민들이란 신문이나 방송이 던져주는 뉴스 미끼를 물고, 웃고 울고 분노하고 슬퍼하는 바보같은 어중이 떠중이들이다. 전 정권이 대선에서 패하여 정권을 뺐기게 되자 번개불에 콩 튀기듯 해치운 것이 검수완박인데, 이는 국민들을 완전히 바보로 취급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국가 권력은 항상 유능한 칼잡이인 검찰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전 정권은 정권을 넘겨주면서 그들이 즐겁게 사용하던 능숙한 칼잡이의 칼을 뺐았아 서투런 칼잡이에게 넘겨준 것인데, 능숙한 칼잡이가 권력에서 멀어지는 자기들을 수사하지 못하도록 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안다. 이런 속 보이는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른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광화문에서 촛볼은 더욱 활활 타오른다.
법은 국가와 개인의 안전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나, 그 때문에 개인들이 자유와 이익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는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이기도 하다. 이를 한 정권이나 위정자가 자기 보호나 권력의 연장이나 보호에 이용한다면, 법이 얼마나 타락하게 될까?
촛불은, 돈 봉투를 뿌려가며 요란하게 민권과 청렴 부르짖는 전 정권과 지금 야당을 지지하는 대표세력이다. 이들은 요즘 회자하는 국회무용론이나, 의원 숫자를 줄이자는 어떤 의원의 외침 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운 어떤 사람들일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건설현장에서 시멘트 포대를 나르며, 혹은 공장에서 배운 용접 기술로 저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가족과 나라를 가난에서 일으킨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피와 땀이다. 그들은, 대학물 먹으며 의식화 써클에 들어가거나, 책 몇 권 읽고 세상사 다 아는 것처럼 떠벌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그 잘난 이념으로 조국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들은 아들과 딸들이 그들이 겪은 혹독한 가난한 세월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오직 그것만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오늘의 이 기적이 곧 종말을 고할 것처럼 위태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핵을 만들어 협박을 하는 북한 때문도 아니고, 혹은 아직도 공물을 받은 상전국으로 착각하는 중국 때문에도 아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들이, 혹은, 가난한 현실을 땀으로 극복하려 한 사람들과, 누군가가 만든 이데아의, 경험해보지 못한 가공(架空)의 세상을 흠모하는 사람들과의 다툼과 같은, 그 대칭되는 관념의 분열로 인한 내전(內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저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좌우의 집회를 보면서, 저 해방공간에서의 전쟁같았던 좌우대립의 싸움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하여 경제력이 세계 10위가 되도록 발전한 나라에서, 새삼 좌우 대립의 분열이 왜 일어날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이 대한민국은 고통스런 경쟁을 통해 풍요를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한 사람들이 눈물과 땀으로 만든 나라다. 북한 정권은 이 나라를 매판 식민지 사회라고 부른다. 해방공간에서 그 치열한 좌우대립 속에서 북쪽 체제를 추종한 사람들은 북으로 갔다. 그들은 그것을 선택했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 민주주의를 선택한 국민들이 땀 흘리며 만든 이 나라에서 다른 체제를 선동하는 것은, 남의 제사상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처럼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
원칙은 패대기치고, 염치는 개에게 던져주고, 타락할 때로 타락한 정치의 중심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이 땅에서 저 땅의 철학을 관철하기 위하여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모순을 보면서, 분노와 자괴감에 빠지는 것이 나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