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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꿈(4) – 변명규

나비의 비밀
어느 과학 잡지의 기사.
수천마리의 주황색 제왕나비가 하늘을 날고 있는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 “위대한 여행, 제왕나비는 몸무게가 1그램도 안 되지만 오직 ‘날아가겠다.’는 의지만으로 3,500킬로에 달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다. 캐나다에서 미국을 거쳐 먼 길을 날아온 제왕나비는 멕시코의 숲에서 만난 친구들과 휴식한다.”
열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며 불평하던 이가 이 기사를 읽고 부끄러웠다며 이후로 그의 인생 멘토로 나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비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고, 나비가 천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날아다니는 것은 애벌레 시절, 식물을 먹으며 축적한 독성 물질 덕분이라는 것. 또 나비가 지구상 그 어떤 생명체보다 극적으로 변태하는 생물이라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실제로 화려하고 자유로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위기와 고난을 견뎌 내야 한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지신을 지킬 에너지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고달프게 기어 다녀야 하고, 죽음과도 같은 번데기 시절을 견뎌야 한다. 나비가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선 혼자 힘으로 고치를 찢고 나와 거꾸로 매달려 젖은 날개를 말리야 하니 나비의 우아한 날개 짓은 치열한 투쟁의 결과이자 절망을 이긴 희망의 증거인 셈이다.

나치수용소의 유태인
잔뜩 기대를 걸고 열심히 준비를 해 왔는데, 그 일이 무산되어 지금까지 준비한 일이 무용지물이 되었을 때 정말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배신감마저 드는 것이다. 그럴 때는 힘이 빠져나가고 의욕을 상실하며 완전히 주저앉게 되는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는 것이다.
가정 형편으로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가 이번 명절에는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학수고대 했는데 이번 설날에도 일이 바빠서 못 온다고 하면 기대에 대한 상실감에 사로잡혀 몸과 마음이 병들어 힘겨워하게 된다.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정상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다하우 유태인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번 크리스마스까지는 독일이 연합군에게 항복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그 소문이 나돌면서 하루 30명 안팎으로 발생하던 병사자가 5명 미만으로 급감하고, 한 명도 죽지 않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전쟁이 끝나지 않자 병사자가 하루에 80명으로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수용소 안에는 언니 마르고트와 동생 안네 프랑크 자매가 부모를 잃고 수용되어 있었는데. 어린 동생은 언니를 의지하여 발랄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언니 마르고트가 티부스에 걸려 앓다가 치료도 받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자 동생도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이 희망이나 기대가 우리들의 생명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로 작용한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한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다. 막대한 돈을 가지고도 큰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꿈과 희망, 야망과 같은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인 것이다.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연예계가 뜨기 시작하여 지금은 그 인기가 사회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연예인들의 인기 또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그 화려한 무대의 인기를 동경한 나머지 연예계로 입문하려고 줄을 서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지만 연예계의 뒷골목에는 높은 인기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따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입문을 위한 길목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이미 최상의 위치에 자리를 굳힌 연예인들도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모, 높은 인기, 엄청난 재산 등 부러울 것 하나 없는 연예인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연예계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 사례를 수시로 접할 수 있지 않는가? 이러한 사례는 어느 한 나라의 경우가 아니다. 그리고 한 두 사람에 국한된 사례도 아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의 유교 사상에서는 자신의 신체 일부가 상하게 되면 부모로부터 받은 귀한 몸을 잘 보존하지 못한 그 자체가 불효라고 하는 것이다. 하물며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자살만큼 큰 죄는 없다고 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 두 다리를 잃은 신체장애인이 남들의 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그들은 오히려 베풀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어째서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희망과 꿈이 있다는 것이다.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신체적인 장애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