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폭2세 피해자 김형률 18주기 추모제

원자폭탄 피해자 2세이며, 피폭으로 인한 2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화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반핵인권운동가 故김형률 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故김형률은 2002년 처음으로 국내에도 <원폭2세 환우>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결성하며, 원폭2세 환우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매년 추모제를 통해 김형률의 아픔과 뜻을 추모하고 있으며, 올해는 원폭후유증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14명의 원폭피해자2세들도 함께 추모했다.
5월28일 오후2시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에서 “제18주기 한국원폭피해자2세 고 김형률과 한국원폭피해자2세 추모제”가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주최, 한국원폭피해자2세환우회,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합천지회 주관으로 열렸다.(비가 내려 합천원폭자료관 광장에서 변경됨)
이날 추모제 진행은 박갑술 원폭피해자후손회 합천지회부지회장이 맡았으며,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장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회장 이태재), 합천평화의집(원장 이남재),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일반핵평화연대, 김문숙 군의원, 장석도 원폭복지회관장, 유족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다음은 여러 추모사 중 주요 내용이다.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장은 추모사에서 “인권운동가이자 반핵평화 활동에 생을 바친 고 김형률 선생의 뜻을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가 계속 이어나갈 것”을 다짐했다. 또한 지난 5월7일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한국원폭피해자 위령비에 참배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있는 원폭피해자들만 만나고, 한국에 있는 원폭피해자들을 배제하고 만나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환우 회장은 원폭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14명의 원폭피해자 2세들 한분 한분의 이름과 간단한 생애, 그들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모했다.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은 “고 김형률 씨는 태어나자마자 갖은 병치레를 겪었고, 일반인의 30%밖에 안되는 폐기능을 갖고 어렵게 2세 환우회를 만들고, 핵없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35세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피해를 입은 5만명과 후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피폭자 실태조사와 원폭피해자 2, 3세 지원이 빠져 있는 원폭피해자특별법을 개정하기 위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장석도 원폭복지회관 관장은 “한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었던 고 김형률은 어릴 때부터 희귀병으로 고통받았으나, 희망을 잃지 않고, 2세 환우를 위해 인생 전부를 태우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 원폭2세 인권을 회복하여 인간다운 삶과 세계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끝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지 18년이 흘렀다. 그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 최근 한일정상이 한국원폭인위령비에 공동참배를 했다. 더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속 걸어나갈 것을 모든 분들과 약속한다”
이남재 평화의집 원장은 “님께서 반핵인권운동가로서 삶으로 거듭나시고 가신지 18주기이다. 지금 원폭피해자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 3세도 피해자라고 하는 이 조항을 넣었지만, 아직도 역부족이다. 보건복지부, 기재부 등 정부에서 미온적이며 수동적이다. 합천에 비핵평화공원이 추진되려면 설계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설계비 반영이 안 됐다. 정부가 그동안 원폭피해자에게 방치했기에 당연히 해야함에도 아직 설계비조차 반영이 안 됐다”며 정부의 태도에 대해 질타했다.
다음은 김종희 평통사 회원이 나와 “김옥수 작가의 책을 통해 김형률 삶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아프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지 모르고 산 미안함과 형률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며, 형률씨 아버지 어머니 아프시다니 빨리 낫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어 한일반핵평화연대 전기호 씨는 추모사 대신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유족들 중에서 고 김형률씨의 형수가 나왔다. 그녀는 “도련님이라 칭하는 유일무후한 사람이다. 지금 살아있었으면 쉰 살이 넘었을 것이다. 오십이 넘었을 도련님은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추모식 시를 낭독하던 꼬마 조카들이 이제는 결혼했고, 대학을 졸업했고, 삼촌의 삶을 보고 역사교사가 되기위해 노력하는 장조카들도 있다. 모두 삼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올 때마다 죄책감을 가지고 온다. 추모제를 준비해주시고 일년 동안 준비해주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 자리에 오면 미안하고, 떠나며 잊어버리는. 오늘 추모식을 보면서, 죄의식을 내려놔도 되겠다고 처음 생각해봤다.
추모제가 유족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제 가족의 이름만이 아니라 역사속의 한 인물이 되었고, 개인이 못한 미안하다는 마음은 내려놓기로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반핵 평화를 다함께 노력하고 살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이 모두 나와 헌화를 하고, 부산평통사 회원인 여종숙 목사의 절절한 추모곡을 끝으로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