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 문경자 수필가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보리밥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 초입 화단에는 몇 개의 보리가 파랗게 피었다. 보리밥 집이라고 밖에 나와 주인대신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인사를 했다. 가게안에 들어서니 보리밭 그림이 한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그림인지 사진인지 하여튼 살아서 일렁이는 보리밭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식당안은 일하는 아줌마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지금은 옛날처럼 식당도 힘들게 음식을 나르지 않고 서빙은 밀고 카트기가 있어 수월하다. 인건비도 줄이고 보기에도 안전하다. 주문을 하라며 식단이 적힌 메뉴판을 내밀었다. 손님들이 하도 많이 만져서 그런지 누렇게 변했다. 보리밥을 주문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배도 부르지 않고 영양가도 없는 보리밥이 이렇게 왕 대접을 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4인분 주문을 하고 심심하니 보리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산골에서 자란 출신들이라 그때 추억을 그리며 먹는 재미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배 고플 때 보리밥 풀 떼기 한 개도 귀하고 아까운 것이었다. 수다는 배를 고프게 하는 묘약이다.
주문한 것을 각자 앞에 놓고 입맛을 다시며 숟가락으로 보리밥을 뒤져본다. 구수한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힘도없이 허물어 지는 모래성 같다. 차라리 쌀밥을 먹었으며 더 좋았을까 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이 보리밥을 내다본다. 보리밥과 각종 야채들 당근, 채 썬 상추, 볶은 버섯, 고사리, 콩나물, 무나물과 김 가루 올리고, 보리 고추장, 참기름 두루두루 뿌려서 쓱쓱 비볐다. 한 입 가득 넣고 먹는 맛은 좋았다. 비빔 보리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몇 끼 굶주린 사람처럼 먹는 친구들은 먹는 데만 열중을 했다. 나는 비벼 먹지 않았다. 그냥 보리밥 자체를 먹어야 씹히는 알갱이들의 맛을 알 수가 있다. 그 다음에 보리밥과 야채를 맛보며 입안에서 비빈다! 이유는 비벼 먹으면 금방 배가 부르고 살이 찔 것 같아 나름대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앉아 느긋하게 먹은 티가 자야, 순이, 숙이 얼굴에 피었다. 특별식을 먹었다는 자부심에 흐뭇하다. 배는 부르지 않았다.
세상에서 돈이 많아 좋은 것도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제일 행복하다. 보리밥 하면 아주 못살 때의 이미지가 떠올라 옛날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부모들은 농부로 살았기 때문에 손수 지은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이려고 이른 봄이면 들에 나가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서릿발이 내린 보리밭을 들락거리며 밟아주고 다져주고 풍년이 들기를 바랬다. 4월이면 청보리가 익어간다. 그때 보리서리를 해서 간식으로 먹기도 하였다. 봄바람이 불면 보리밭은 온통 춤을 추며 일렁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마른 땅에 심은 보리밭은 푸름 자체가 가난한 시골마을을 살찌우게 했다. 보리줄기를 잘라 만든 피리. 삐리리 소리를 들으며 악기대신 불며 놀았다.
푸른 들판이 차차 겨자색으로 물들고 푸른 수염도 노쇠처럼 변한다. 보리가 익어 가는 동안 한끼의 끼니도 이어 가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다. 누렇게 익은 보리밭 사이에는 깜부기도 익어갔다. ‘깜부기’라는 제목의 시를 써본다.
병든 줄 모르고 먹었다/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배고픔 달래주는 간식거리/보리밭을 헤집고 다녔다/혼내는 주인은 없었다//깜부기는 오디의 사촌/반지르르 익은 것/깜부기 입에 넣고/침으로 뭉개어/허허한 굶주림 면했다//그때는 밥이라 해도/꽁보리밥 반 그릇/엄니는 자식 먹이려/수저도 못 들고 맹물만 벌컥벌컥/집안에 깜부기는 속이/시커멓게 타 들어 가는 어머니 가슴
깜부기의 사촌 뽕나무가 보리밭 사이에 서있었다. 뽕나무 잎은 누에를 키워서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파랗던 오디도 차차 익어갔다. 새까맣게 익은 오디를 따기 위해서 보리밭을 지날 때는 보리의 수염이 날카로워서 꼭꼭 옷속으로 들어와 살을 찔렀다. 맛있는 오디를 먹기 위해서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뽕나무아래 서면 우리들 키만 하고 어떤 나무는 더 컸다. 위를 올려 다 보면 햇빛을 받아 오디가 더 까맣고 윤기가 잘잘 흘러 반짝였다. 맛있게 보이는 것을 따서 먹고 싶은 마음 뻔하지만 욕심을 버리고 나에게 딱 맞는 나무아래서 오디를 땄다. 밭주인은 따로 있어 혹시라도 갑자기 나타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손가락으로 한 개씩 따서 입안에 넣고 먹었다. 단맛이 나고 햇빛을 받아 더 달콤하였다. 하나씩 먹다 보니 감질이 나서 한 움큼을 따서 입안에 가득 넣고 먹었다. 그 맛은 이루 말로 표현이 어렵다. 입가에도 찐한 오디물이 묻어 있었다. 혼자 실컷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이만하면 됐다.
보리 베기가 시작되면 얼마나 바쁜지 하루해가 지는 줄 모르게 일만 하였다. 부모님들은 참 부지런하고 부지런하였다. 어른들의 세끼밥을 챙기고 개구쟁이 우리들의 밥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남보다 일찍 보리타작을 한다. 휙휙 도리께 질을 하며 보리 낟알은 마당에 가득하였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콧노래도 절로 나왔다. 보리타작을 하며 노동의 기쁨도 함께 나누었다. 옆집 철이네 아버지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엄마는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보리밥 한 술이라도 나누어 먹는 사이라 서로서로 일을 도와가는 정다운 이웃이다. 보리 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여유를 부리며 여름 밤의 고요함이 잠들어 가는 것이다.
저녁해가 질 무렵, 보리쌀 한줌을 삶아서 밥을 지으며 한숨이 더 많이 들어갔다. 쌀밥을 하는 것보다는 보리밥을 하는 것이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어머니는 동네 방앗간에서 찧은 보리쌀을 옹기에 담아 우물가에서 싹싹 문질러 씻었다. 약간 미끄러운 기가 있어 깨끗하게 헹구어 낸다. 무쇠 솥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붓고 손등으로 물의 양을 맞추고 솥뚜껑을 닫는다. 할아버지가 앞산에서 해 온 솔가지를 꺾어 넣고 불을 골고루 지펴준다. 불을 떼는 요령도 있어야 하고 나무도 아끼며 불을 뗀다. 어머니의 밥짓는 일을 보는 것도 좋았다. 어머니 얼굴은 불꽃이 필 때의 모습은 편안하고 미소가 입가에 피었다. 밥을 한다는 자체가 즐거우며 가족들을 위해서 한끼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행복으로 여겼다. 뜸을 들이는 시간에 장독간에 있는 된장을 퍼서 몇 숟갈 넣고 무를 썰어 넣고 누렇게 변한 대가리도 없는 멸치 몇 마리 넣고 아궁이 속에 넣는다. 얇은 노란 냄비는 금방 바글바글 끓으며 구수한 된장 맛을 낸다. 반찬은 벌레가 뜯어먹은 푸른 배추 겉 절이, 무채, 보리 고추장 등이다. 마당 구석진 곳에 심어 놓은 상추도 잎이 누렇게 변하여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 골라내서 깨끗하게 씻어 어른들 밥상에 올린다. 상추쌈은 언제 먹어도 맛있으며 배도 부르다. 두레상에 둘러앉아 서로 얼굴을 맞대고 먹는 맛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다.
보리밥도 보리밭도 지금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역에서 하는 축제들이 많다. 검색을 하며 상세하게 나와 있어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다. 단체로 봄의 축제를 따라 가 본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비가 와서 구경을 할 수 있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차에서 내리니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비옷과 우산을 쓰고 고창 청보리밭 구경을 갔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 보이는 것은 초록의 물감을 뿌려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였다. 여기만 초록비가 내렸나 보다. 우리는 보리밭 사이에서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뿌옇게 내리는 빗줄기도 멋 적어 살살 내렸다. 보리가 핀 들판을 이렇게 걷고 걸으며, 다정한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어 본 적이 있었을까! 먹고 살기에 바쁜 시절 그저 배곯지 않고 살면 그 뿐이었다. 모두들 가슴속에는 저마다의 추억들을 청보리밭에 뉘이고 왔을 것이다. 보는 재미와 보리 이파리를 만져 보는 것, 물방울이 맺힌 것을 보는 것, 체험을 하는 것, 우리가 처음으로 보는 큰 들판의 그림 같은 곳을 보다니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마음은 청춘의 무지개를 보았다. 보리밥은 이제 전기 밥솥에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보리밥 효능, 꽁보리밥 짓기, 보리밥 하는 법, 보리밥의 물 양, 보리밥 만드는 법 등 전기 밥솥이 알려주는 대로 하면 맛있는 보리밥을 먹을 수 있다. 좋은 세상이라 안되는 거 빼고 다 할 줄 아는 만능의 시대다.
보리밥은 먹어도, 먹고 있어도, 배는 부르지 않고, 소화가 잘 되어 간다며 뿌~~우 하고 아무도 모르게 보리피리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