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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집 나오면 즐거워 (1) – 문경자 수필가

지난 주에 6월9일~11일 2박 3일 부산을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 만나는 ‘샘터모임’고향친구들을 만났다. 고향에서 살 때 앞집, 뒷집, 옆집,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친형제처럼 모여 살았다.
시집을 가서 각자 헤어져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부천에 사는 순이와 오전 8시21분 KTX를 타기로 했다. 신정 네거리 역에서 영등포역으로 갔다. 순이는 두시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키도 크고 서글서글한 성격이 좋은 친구다. 사투리를 그대로 쓰고 있어 더 정감이 간다. 전광판에 나오는 시간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열차 탈 시간이 되었다. 7호차 5A 5B 좌석에 앉았다. 앞 승객과 가까이 앉아 가다 보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차를 타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도 하며 고향이 ‘어디요’하고 물으면서 가는 여행은 인간미가 넘쳤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자체가 남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순이는 “갱자야 우째 지냈노” 하며 내 얼굴 표정을 살폈다. 나도 순이에게“니도 잘 지냈냐?” 물어보았다. 소곤소곤 사투리가 무르익어 갔다. 둘만 알아듣는 말이지만 더 정겨움이 묻어났다. 한참을 달리 다 보니 벚꽃과 아카시아 꽃이 다 져버린 뒤, 밤꽃들이 한창 피었다. 순이는 “저 밤꽃 냄새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거아이가 니도 그렇제”하면서 냄새 맡는 시늉을 하였다. “응 나도 밤꽃 향기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밤꽃향기는 다른 꽃향기보다 특이하다. 어른들은 밤꽃이 피면 홀로된 여인들이 집 밖을 나간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연인들은 햄버거와 우유를 사서 나누어 먹으며 서로 입가에 묻은 케찹을 닦아주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어쩌다가 시골 가는 길에 남편이 사주던 감자튀김과 군밤이 생각났다. 옛날 판매원 아저씨가 열차 칸을 오가며 팔던 ‘구운 오징어, 땅콩, 달걀, 달콤한 사탕이 있어요’하던 모습이 그려졌다. 순이는 “갱자야 배고푸제 뭐 사줄 것도 없고”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괜찮아 너도 배고플 텐데 마트에서 맛있는 거라도 사서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하고, “코로나 때문에 차안에서 먹지 못하는 줄 알았제” 서로를 위로하며 웃었다. 신록의 계절에 다정한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여행은 사람들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모든 것을 다 잊고 떠나는 순간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가 없다. 먹고 살기에 바빠 평생을 일만 하다가 병이 나고 걷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밀려온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남편의 모습이 문득 창밖에 보이는 착각을 하였다. 가족과 회사일을 하다가 이렇다 할 만한 여행을 하지 못했다. 유일한여행은 고향에 있는 산소에 벌초하는 것, 묘사를 지내는 일 등 주로 시골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상의 묘를 찾아 인사를 하고 풀을 베는 일도 힘은 들었지만 흩어져 사는 형제들을 만나는 일도 기쁨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정자 나무아래서 동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고향의 참다움을 배우는 것도 좋은 기회라 여겼다. 상념에 잠겨 있는 동안 순이는 심심한지 먼 곳을 보다가 밤꽃 나무만 보이면 “밤꽃냄새가 난다”고 차창 밖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뭉게뭉게 피어 있는 푸른 유월의 밤꽃은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부산역에 도착. 역광장으로 내려가니 김해에 살고 있는 송이가 만남의 광장으로 먼저 마중을 나왔다. 파마머리, 갸름한 얼굴, 핑크색 티, 진주목걸이, 검정색 자켓을 입은 송이가 멋져 보였다. 셋이서 얼굴이 닿을 만큼 꼭 껴안았다. 송이는 인정이 많다. “먼데서 온다고 배고푸겠다 저기 할매가 파는 엿이라도 묵고 포항에서 오는 진이를 기다리자” 하며 엿을 사주었다. 엿 판도 아니고 플라스틱 도시락통에 넣어 팔았다. 마트에 들어가면 간식이 많지만, 어릴 때 먹고 자란 엿이 최고였다. 엿가래를 파는 것도 아니고 다 분질러서 엿 모양은 나지 않았다. 입안에 달라붙지 않고 달콤한 엿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진이가 도착을 하여 만났다. 둥근 얼굴에 붉은 테 안경을 쓰고, 하얀 바탕에 줄무늬 티셔츠, 시원한 겉옷을 입고, 버들잎같이 생긴 머리핀, 시계, 팔찌, 꽃송이 같은 반지가 예뻤다. 한껏 멋을 내고 왔다. 엿은 다 먹고 난 후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셋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송이 입술이 반지르르한 엿물이 햇빛에 반짝였다. 진이는 립스틱을 바른 것으로 알겠지! 렌트 카를 운영하는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접근을 하였다. 그들은 여자들끼리 여행을 왔다는 것을 금방 알아보고 말을 슬슬 부치며 능글맞게 굴었다. 내가 총무를 맡아서 똑 부러지게 한마디 하였다. 서울말로 “아저씨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렌트는 필요 없어요.” 했더니 말을 걸려고 하다가 다른 곳으로 멀어져 갔다. 내가 아무리 서울 말을 써도 사투리가 나와서 웃었다. 자리를 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이가 전철을 타고 자갈치 시장으로 가자고 했다. 지금부터 집은 잊어버리고 재미있게 놀자 집 나오면 즐거워하며 전철을 탔다.
자갈치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횟집들이 즐비한 삶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활기가 넘쳤다. 간판을 보며 걷고 있는데 식당 주인들은 서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하고, 긴 머리를 묶은 여자는 아예 따라다니며 직접 구워 파는 생선은 자기 집 밖에 없다고 했다. 배도 출출하니 달콤하게 말을 하는 여자분의 친절한 사투리가 우리를 끌어 들였다. 횟집에서 생선을 손수 구워 준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멍게를 먼저 시켜 먹으니 입안에 사르르 단맛이 돌았다. 주인은 미역국, 파전, 도라지 무침, 콩나물, 젓갈, 배추김치 등을 내놓았다. 커다란 접시에 여러 가지 구운 생선도 나왔다. 갈치구이, 고등어구이, 금태 또는 낀따루, 가자미 등이었다. 바닷가에 사는 송이와 포항 진이는 많이 먹는다며 멀리서 온 친구에게 많이 먹어라 하였다. 뼈를 발라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치는 뼈가 많아 먹기가 어려웠다. 처음 살한점을 떼어 입에 넣었는데 잇몸을 찔렀다. 조심하며 여러 가지 생선 맛을 보았다. 식당 안은 조용하고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숨쉴 때 마다 생선 구이 냄새가 났다. 하도 흔한 구이라 먹어도 싱싱한 것인지 직접 구웠는지 믿음이 가지 않지만 친절해서 그나마 괜찮았다. 배는 채웠고, 시장 구경을 하였다. 갈치를 말리는 주인은 갈치를 막대기에 넥타이 모양으로 걸어 두고, 양 끝에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워 두었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갑자기 육지로 올라와 넥타이를 메고 품위 유지를 해야 하는 갈치남의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 몸값이 뛴다. 그래도 신사적으로 예의를 차린다고 넥타이를 맨 모습이 신기하고 주인의 아이디어도 좋았다.
전철을 타고 이동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송이는 멋을 낸다고 빨간 구두를 신었다. 아무래도 발가락이 아플 것 같아, 만물상회에 들어가 벗겨지지 않은 신상의 덧신을 3,000원 주고 사서 신었다. 부산역에서 택시를 탔다. 점포1동에 살고 있는 고향친구는 몸이 아파 몇 년 전부터 잘 걷지를 못했다. 연락을 취했더니 집에 있다고 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구 밖에서 만나면 아무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 집안은 도우미가 와서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니 혼자 살아도 걱정이 없다며, 남편과 사별을 했다.
자식들은 출가를 해서 가정을 꾸리며 잘 살고 있다며, 친구들이 왔는데 몸이 아파 대접도 제대로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