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黃昏育兒) – 노덕경 수필가
K가 요양병원에 갔다고 한다. 친구와 한동안 왕래가 없어 연락했더니 요양병원에 있다고 그의 아내가 말한다. 양방, 한방병원을 왕래하며 3년이나 치료하며 돌보았는데, 아내도 아들딸도 손주도 몰라보는 지경이 되어 요양병원에 보냈다고 한다.
K를 만난 건 직장에서였다. 직원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고향도 인접했고 연배라 가깝게 지냈다. 시골에서 별난 먹거리가 온 날은 식구들과 함께했고, 주말에도 가족 나들이를 자주 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 유치원도 함께 보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학군이 좋다는 곳으로 옮겨서도 이웃에 살았다.
K는 2남 1녀를 두었다. 첫째 아들은 어릴 때부터 총명했었다. 국립대학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에 매달렸다. 둘째 아들은 공무원이 좋다며 졸업과 동시에 합격하고 임용되어,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했다. 며느리가 직장 때문에 출산을 미루자, 애들 봐준다고 독려하여 연년생의 손주를 봤다.
처음에는 자식들 키워 놓고 심심했는데 첫 손주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자랑했었다. 막내딸도 직장에서 동료 교사와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딸도 맞벌이로 애들 봐 달라고 보채어, 어쩔 수 없이 맡았다. 이웃에 살면서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대러 가곤 했었다.
맏이는 행정고시를 도전하다 아깝게 떨어져, 재수 삼수하다 지쳐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방콕”신세가 되었다. 집안의 종손이요, 맏아들이다. 나이는 들어가고 살아갈 방도를 찾은 것이, 은행 대출을 받아 아파트 단지에 24시 편의점을 개설해 주었다. 그런대로 사업을 하니 중매가 들어와 늦게나마 결혼을 시켰더니 아들 둘을 낳았다. 편의점은 많은 시간과 인력이 요구되는 업종이다. 며느리가 출근하여 함께 관리해야 한다며 손주들 봐 달라고 했다.
K의 아내는 자신의 아들딸 세 남매를 키웠는데, 자식들과 맏며느리의 형편상, 모른다고 할 수 없어, 집에서 손주 6명이나 돌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K는 부부 모임에 혼자 나와 ‘어린이집 원장님은 불참’이라고 했었다.
원장님은 집에서 하루 종일 기저귀를 갈아주고 유치원, 초등학교 등·하교를 챙기고, 분유와 이유식, 간식, 끼니까지 챙겨야 했다. 그뿐인가. 안전사고를 대비하여 늘 곁에서 감시를 해야 했다. 천방지축인 애들을 생각하여 가구의 모서리, 바닥 매트, 콘센트에 보호 장치하고, 정리 정돈을 했지만 집안은 매일 난장판이었다.
가끔 애들을 체중계에 올려보면 조금 늘었으면 그동안 고생한 성과가 있어 좋았지만, 기대보다 늘어나지 않았으면 마음이 언짢았다. 그렇게 애들 때문에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 징역살이라고 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애 볼래, 땡볕에 밭맬래’ 물으면 열에 여덟은 밭 맨다고 했었다. 중노동보다 애들 보는 것이 그만큼 힘이 든다고 했었다. 자식들 형편과 손주 사랑하는 마음에서 육아를 맡았지만, 나이는 먹어가고 몸에 무리가 와 만사가 귀찮다고 했다.
K는 퇴근하여 집에 들어가면, 당신을 잘 못 만나 외출도 여행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며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다고 했다.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 그는 집 주변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시간을 보내어 바가지 소리를 피했다고 한다.
여섯 손주를 돌보는데 어찌 사고가 없었을까. 하루는 아내가 손주를 데리고 시장 갔다가 잠깐 물건 보는 사이에 6살 손주가 차도에 내려갔다. 손주는 달리는 오토바이에 부딪쳐 다리 골절 사고를 당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 큰 수술을 받았지만 죄인이 되어 며칠을 며느리 얼굴도 못 쳐다봤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졸업하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갔다. 부부가 여유를 즐기려고 하니, 이제는 남편인 K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예전의 일은 물론이고 금방 했던 것도 잊어버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하니 흔히 말하는 기억 장애, 환각 증상인 “알코올성” 치매 진단이 내려졌다.
K와 함께 모임을 했는데 몇 달을 나오지 않더니 K의 아내가 전화 왔었다. 남편은 치매 진단으로 모임에 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K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K는 동료였던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얼굴만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다. 하는 수 없어 그의 아내에게 K가 빨리 쾌차하길 바란다며 인사하고 나왔었다.
그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요양병원에 갔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좋은 동료요, 친구였는데···. 이제는 만날 수가 없으니 서글픈 마음 한량없다. 황혼까지 아내는 아내대로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했고, 또한 손주들 키우느라 그 고생을 했으니 허무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서산에 해는 기우는데 우리의 삶이 허무한 것 같아 쓸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