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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2호 합천 백조도래지, 서막 – 심근정 농학박사, 경남도립거창대학 산학협력중점교수

어렸을 때, 수업을 파하고 정양을 간 적이 있다. 아마 초가을 어느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양은 모교인 대양초등학교에서 합천읍으로 가는 중간지점에 있었기 때문에, 신작로를 걸어가는 어린 학생에게 꽤나 먼 거리에 힘든 여정이었다. 거기서 나는 갖가지 추억을 만들었다. 정양마을에서 아천마을로 이어지는 좁은 길은 늪지 한 가운데 놓여 있었기에 비가 오면 잠긴다는 사실을 알았고, 늪지에는 예상치 못한 크고 많은 물고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전혀 위험할 것 같지도 않았던 늪지를 유유히 떠다니는 나무 조각배가 그렇게 흔들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 또한 조각배 위에서 제법 큼직한 물고기가 그물을 잡으려고 하여 물에 빠지는 순간에는, 어린 마음에 식겁하여 함부로 타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도 주었다. 또한, 정양늪이 천연기념물 제2호 백조도래지라는 간판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새겨 넣는 기회가 되었다.
그 시절 천연기념물 제2호가 합천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면 관내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겨울철이 되면, 정양늪은 각종 철새들로 넘쳐났다. 해질 무렵이나 달이 뜨는 초저녁에 수십마리 기러기 떼들은 편대를 이루면서 이쪽 산에서 동네를 가로 질러 저산을 넘어가곤 했다. 청둥오리나 쇠오리는 무리를 이루어 물장구를 치거나 얼음을 지치는 모습을 보였고, 백조는 항상 떼를 지어 물가에서 멀리 안쪽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곤 하였다. 그중에서 재두루미는 큰 무리를 이루지 않은 채 들판에 곡식 낟알을 찾았는데, 정양늪지를 찾는 철새들 가운데에서 가장 크고 우아했다. 그래서 백조보다도 재두루미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은 45여 년도 훨씬 넘은 나의 어릴 적 추억이지만, 항상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대학을 다니며 우포늪을 알게 되면서 고향의 정양늪지와 여러모로 비교하게 되었다. 우포는 정양늪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정양늪지 옆을 흐르는 황강과 우포늪지 인근을 흐르는 낙동강을 단순 비교하는 것만큼 생태적, 경제적 여건 등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대구에서 유학한 고교시절, 서부정류장 옆 관문시장 들머리에는 우포늪에서 나온 가물치며 붕어, 메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항상 이어지는 시장풍경으로, 모든 것이 정양늪과는 견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기실, 일제 강점기 천연기념물이 발표되기 전 우포늪에 대해 3회 연속으로 사진과 더불어 연재기사가 보도되었음을 볼 때 합천보다는 우포늪이 천연기념물 백조도래지가 되는 것이 더 신빙성 있어 보였을 것이다.
또한 지리교과를 좋아하기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가 도동 측백수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왜 합천의 백조도래지가 천연기념물 제2호인지에 대해서는 줄곧 의문을 가졌다.
지금부터 몇 차례의 기고를 통해 나는 지금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 속에는 애착을 가졌던 만큼 다양한 경험과 몇몇 부류들의 습성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잊지 않으려 한다.
보따리를 풀기 전에 나는 정양늪과 관련한 몇 가지 사실을 확실히 밝혀 두고자 함이 있다. 첫째는 근대적 역사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얘기한다.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관보나 행정서류를 말하며, 이와 관련한 당시 언론의 보도자료라는 점이다. 둘째, 천연기념물 제2호의 백조도래지가 합천으로 된 사연에서는 앞선 자료들의 근거 있는 추론이라는 것이다. 즉, 조선총독부의 극대한 관심사였기에 합천으로 날아든 백조와 일본왕(일본 천황을 말함)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시간이 지나면서 천연기념물 제2호인 백조도래지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지정이 해제되었고, 여기에는 해방 이후의 다양한 사회변화가 작동하였다는 사실이다. 넷째, 해제된 이후에 백조도래지가 다른 모습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정 당시 3개소였던 것이 1개소는 완전히 사라졌고, 또 1개소는 확실하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1개소는 다시 과거의 도래지가 치유되어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폭넓은 선택과 과제를 남기게 한다.
여하간 지금은 천연기념물 제2호가 해제된 결번이지만, 우리 지역에 있었고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