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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외사촌 변존서가 합천 적중 마흘방(두방리)을 방문한 이유를 아십니까?

[합천 탐진안씨 안극가(安克家) 가문의 의병활동]

/박갑로 영남 이순신연구소장

필자는 임진왜란사와 이순신을 연구하고 있다. 사실 이순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난중일기』 등장인물을 연구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 『명량해전 참전자 연구-문중과 혼맥』이라는 자료를 만들고 있다. 올해 책을 낼 계획이다. 1주일 전에 우연히 이순신의 외사촌인 변존서의 자료를 보는데, 처외조부 탐진안씨 안충(安沖)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이 어떤 사람일까?하고 궁금하여 가계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순흥안씨 대종회 홈피에서 인터넷 족보를 찾아보았고, 탐진안씨 가문의 족보도 구해서 확인해봤다. 변존서의 장인은 능성구씨 구용(具鎔, 안충의 사위)인데 아들(처남)은 없다. 옛날에는 아들이 없으면 사위가 아들을 대신하였다. 그런데 안충의 가계를 넓혀보니까 지금까지 몰랐던 대단한 자료들을 확인하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백의종군 무렵에 마흘방(馬訖坊)이 3번 기록되었는데, 현재 지명은 합천 적중 두방이다. 두방에는 안충의 조카가 살아있었는데, 바로 의병장 뇌곡(磊谷) 안극가(安克家)이다. 함께 창의한 아들 안각(安珏)·안철(安喆) 형제까지 3부자가 『난중일기』에 등장한다. 3부자는 의병도대장 송암 김면 막하의 좌의병장 망우당 곽재우와 우의병장 래암 정인홍 막하에서 함께 참전하였다. 정유년에는 백의종군 무렵 초계에 와있을 때 이순신을 후원한다.
족보를 보다가 정말 귀중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첫째, 변존서의 처이모부가 배인범인데, 누구인가하면 바로 이순신의 오른팔 배흥립의 아버지이다. 즉 변존서의 처와 배흥립은 이종 남매간이다. 흥양현감 배흥립은 『난중일기』와 『장계』에 120여 회나 등장하는데, 60여 회의 모든 해전에 참전하는 이순신의 오른팔이다. 탐진안씨 족보에는 누구의 아들인지? 또는 누구의 아버지인지 모르게 실렸다. 성주배씨 족보에는 탐진안씨 부인의 기록이 누락되었다.
둘째, 안극가는 퇴계 문인인 대사간 사천이씨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문인이다. 구암의 손자 백인재 이곤변이 『난중일기』에 여러번 등장한다. 백인재의 손서에 오리의 손자 이수기가 있고, 그리고 오리의 손서이며 남인의 영수 미수 허목의 동생 허의가 또한 백인재의 손서이다. 안극가의 외조부가 의령남씨 남지(南至)이고, 이호변·이곤변 형제와는 이종4촌이다. 그런데 체찰사였던 오리가 안극가의 행장을 쓴 것을 『탐진세고』에서 확인하였다.
셋째, 뇌곡의 맏손자가 안재후인데 처부가 누군지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난중일기』에 해남가장과 진도군수로 기록된 성천지(成天祉)인 것을 확인한 것이다. 성천지의 처부는 남명과 퇴계·하서의 문인인 덕계(德溪) 오건(吳健)이다. 필자가 수년 전에 창녕성씨 족보를 일별했으나, 성천지의 사위 안재후의 본관과 가계애 관한 기록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확인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혼맥이다.
넷째, 안각의 둘째 아들 안입후의 처부는 의병장인 탁계(濯溪) 전치원(全致遠)인데, 안재후의 장남이며 안각의 장손자는 또한 탁계의 손서가 된다.
다섯째, 뇌곡의 사위 정희남은 거창 의병장 동래정씨 추경(樞卿) 정응두(鄭應斗)의 아들이다. 정희남의 조카 정선민은 뇌곡의 손서이고 안각의 사위가 된다. 안극가와 아들 안각 형제가 의병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가문과의 혼맥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여섯째, 안극가의 고모부가 팔계정씨 정백거이고, 그 사위가 전의이씨 판서 신암(新菴) 이준민(李俊民)인데 남명의 생질이다. 신암의 둘째 아들은 이극훈이고 그 사위가 사천이씨 이적인데, 이호변의 맏손자이고 이곤변의 종손자이다. 이호변의 장남 이종일의 처부는 합천 출신 일신당(日新堂) 이천경(李天慶)이다. 이극훈은 전의이씨 족보에 수백년간 누락되었는데, 최근에 입보한 것으로 보인다.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합천 사람은 20명이고, 경남사람 전체는 100명이나 된다. 인물을 연구해서 학술회의도 하고 지방 시군지에 싣고, 경남도지에도 싣자. 4년 전에 만든 경남도지에는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경남 출신을 단 한 사람도 싣지 못했다.

<난중일기 1597.6.24.> (상략) 생원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난중일기 1597.6.29.> 변주부가 마흘방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난중일기 1597.7.4.> (상략) 아침밥을 먹을 때 안극가(安克可)가 와서 봤다
<난중일기 1597.7.5.> (상략) 변존서가 마흘방으로 갔다.
<난중일기 1597.7.6.> (상략)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안각(安珏)·안철(安喆) 형제도 변흥백(卞興伯)을 따라왔다.
<난중일기 1597.7.7.> (상략) 아침에 안각 형제가 와서 봤다. (하략)

7월 5일 변주부는 처가인 마흘방을 두 번째 방문하여 하룻밤을 자고 왔다. 마을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지 않았을까? 떠들썩한 처가 동네 잔치가 눈에 선하다. 합천과 적중면 두방리에 마을 축제를 만들면 참 좋겠다. 군관 변주부로 분장한 사람이 돼지 한 마리를 몰고 외가(축제장)에 들어가는 퍼포먼스도 만들어 보시라. 의병축제 때 활용해도 된다. 그리고 적중 마흘방 입구에 마을안내판을 세워주시라.
내년이 광복 80년이다. 경남도와 통영시·남해군은 ‘한산과 노량대첩 참전자 자료집’을 만들고 각 해전기념관을 만들면 좋겠다. 필자는 안각 형제를 수군재건에 동참하고, 명량과 노량해전 참전자로 기록하려 한다. 경남도와 통영시·남해군은 ‘한산과 노량대첩 참전자 자료집’을 만들고 각 해전기념관을 만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