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국 전쟁”을 보고 – 이호석 수필가
지난 2월19일 합천시네마에서 요즘 전국에서 한참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건국 전쟁’을 친구들과 함께 관람하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대감과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까지의 영화는 주로 흥행을 위주로 하여 돈벌이에 목적을 두거나 아니면 편향된 이념적 영화를 만들어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그런 영화가 대다수였다.
이 영화에 기대감과 흥분을 가지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으나 건국 초기의 집권당인 자유당이 4·19의거에 의해 몰락한 후 좌우 이념이 다른 정권이 이어지면서 건국 당시의 역사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였다. 또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학생들의 역사 교과서가 왜곡, 편집되기도 하면서 학생들은 물론 전 국민이 건국 무렵의 역사에 혼란을 가져왔다. 그런 과정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사실은 더욱 멀어졌고 왜곡된 역사가 활개를 쳤다. 이번 ‘건국 전쟁’은 건국 당시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진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건국 초기의 역사와 이승만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이승만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고, 해방 이후는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그 악조건에서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 덕분에 남한이라도 이렇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온갖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당시 그분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중요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요약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중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성공적으로 이룩한 가장 대표적인 노력과 정책을 요약해 본다.
첫째, 해방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혼란으로 남측이 무방비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당시 소련의 계략 아래 탱크 등 신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하여 파죽지세로 전국이 점령되다시피 하였고, 전쟁은 유엔군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인해전술 등을 거치면서 3년을 끌었다. 이에 미국은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떠나려고 미·소가 38선을 기준으로 휴전 협정을 하려 할 때, 이승만은 이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 종주국으로 대국인 소련과 중국이 바로 인접해 있고, 무장한 북한이 있는 이상 유엔군이 철수하면 남한이 한순간에 적화되는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승만은 전략적으로 2만여 명이 넘는 반공포로를 석방하여 전 세계에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로 부상시켜 이목을 집중케 한 다음, 미국 대통령과 미국의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 휴전 협정을 하려면 남한이 자립으로 살아갈 수 있고, 자체 안보 능력이 있을 때까지 유엔군을 주둔시켜 줄 것과 ‘한미우호동맹’을 맺은 후 휴전협정을 체결하라고 강력히 요구하여 이를 성취한 것이다. 만일 그때 이승만이 이런 주장을 관철하지 못했으면 우리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1950년에 농지 개혁을 성공적으로 시행한 것이다. 농지개혁은 중국이나 소련, 북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하였지만, 그들의 개혁은 달콤한 이론을 앞세워 농지를 모두 국유화하여 오히려 국민을 얽매는 개혁을 하였지만, 이승만은 모든 농지를 실제 경작 농민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토지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자기의 토지를 지키기 위해 국가에 대한 애국심도 향상되고 또 농작물 수확률도 높아져 경제가 발전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하였다.
셋째는 국민 교육에 주력한 것이다. 이승만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면서 국민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공부하지 못하였고, 특히 여자들에게는 아예 교육을 시키지도 않아 문맹률이 80%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각종 선거제도가 시행되어야 하고, 국민의 지식수준을 끌어 올려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통찰력으로 국민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위해 1949년도부터 초등학교를 무상으로 하는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하여 전국의 어린이들이 모두 공부할 수 있게 하였다. 당시 그 열악한 국가 재정에서도 전체 예산의 20%를 교육에 투자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1960년 3·15부정선거로 대학생들이 앞장서 일으킨 4·19 의거를 보면서 이승만은 만족해하였다고 한다. 학생들의 바른 사고가 교육의 덕분이라며 그들의 생각이 옳고 자기의 장기 집권이 잘못된 것이라며 일주일 만에 하야를 결심하였다고 한다. 만약 해방 이후부터 이승만의 교육정책이 북한과 같이 자유를 억압하고 일인 숭배를 위한 교육을 하였다면 우리도 북한과 똑같은 일인 독재가 이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를 본 후 이분들을 독재자로 부르는 것은 정말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모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하였거나 그 체제를 지켜나가며 국가 발전과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금은 무리한 정책도 있었겠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전혀 독재의 억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이분들의 공과를 무시하고 독재자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우리의 체제를 무너트리기 위해 편향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독재자란 체제와 권좌를 지키기 위해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앞 시위 국민을 차량으로 수십 명을 깔아뭉갠 사람, 러시아 푸틴처럼 정적을 마음대로 제거하는 사람, 북한처럼 삼대 세습을 하고 자기 고모부도 뜻에 맞지 않으면 총으로 가루를 만드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독재자란 말을 써야 옳은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한 가지 전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김구 선생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김구는 독립운동에도 앞장섰고, 해방 후에는 평양을 드나들며 북한 김일성과 자주 만나 통일을 적극적으로 논의한 훌륭한 민족의 대표 인물로 알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김구는 전혀 다른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았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 통일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이가 전쟁 준비를 완벽히 한 것을 보았고, 아무런 준비가 없는 남한은 북한이 쳐내려오면 금방 패망할 것이란 판단을 하였다. 그러나 남한으로 내려와 이러한 사실을 이승만 정권에 설명하고 함께 걱정하기보다는 이승만 정권에 더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북한이 쳐내려오면 바로 망할 수밖에 없는 남한의 실정을 잘 알기 때문에 그때를 생각하며 이중적 처신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김구를 우리 건국 역사의 최고 인물로 내 세운 것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훌륭한 흔적을 지우기 위해 왜곡된 역사를 홍보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승만과 김구의 행적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건국 정신과 건국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바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아무튼 영화 ‘건국 전쟁’은 국민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관람하도록 권하고 싶고, 이 영화를 제작한 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