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보도블록에 핀 민들레 꽃 – 문경자 수필가
도심의 거리는 마스크 꽃들이 몇 해를 주름잡았다. 하얀꽃 검정꽃 분홍꽃보라꽃 등이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신이었다. 신처럼 모시며 꼭 붙어 다녔다. 어디를 가던지 대우를 받으며 살았다. 너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칠순 노모, 팔순의 외할머니, 구순의 아버지, 백세의 친척 할머니도 든든한 마스크 덕분에 살아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후에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고 살았다.
하지만 가계 운영이 어려워 동네 은행 옆에 있는 추어탕집이 문을 닫았고, 잉크충전기 가게 옆 횟집도 문을 닫았다. 꽃도 아닌 꽃들이 휘젓고 다녀 장사가 되지 않았다. 아기들도 부모와 유모차를 타고 외출을 하는 날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보기에도 안스러웠다.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들까! 한참 뛰어 놀 아이들은 맘대로 친구들과 어울리지못했다. 얄미운 것들이 언제 자취를 감출까 독한 것들 다 물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똑 같을 것이다. 겨울이 지나고 올 봄에는 마음껏 꽃구경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서로 위로하였다. 봄이 오는가 싶어 길을 걸으며 시멘트 바닥에 말라붙은 민들레 이파리를 살짝 건드려 보았다. 손끝에 오는 느낌이 좋은 걸 보니 희망의 꽃이 보였다.
며칠 햇살이 따듯하다. 우리동네 s요양원이 있는 곳을 지나다 보니 보도블록 사이 앙증스럽게 핀 노란 민들레 꽃 네 송이가 피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더 가까이 보려고 허리를 굽혔다. 눈이 마주쳤다. 웃으며 눈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핀 꽃을 보니 마음이 행복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도 기운이 솟았다. 작은 것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다니 마음과 눈이 호강을 하는 봄날이었다. 찬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살아난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하얀 파마머리 할머니가 지나가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작은 키에 얼굴은 갸름하고 몸도 호리호리했다.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s요양원은 몇 해전만 해도 병원이었다. 한참 요양원이 여기저기 유행처럼 번졌다. 입원환자가 없어 문을 닫는다는 광고가 붙어 있더니 요양원으로 변했다.
시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봄이면 동네 교회에서 쑥을 캐다 파는 재미로 들에 나갔다. 부지런하고 손이 빠른 시어머니는 남이 하는 것은 다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루는 수도가에 앉아 아주머니들과 부지런히 쑥을 씻고 있었다. 큰 소쿠리에 담긴 쑥을 둘이서 들고 가다가 앞사람이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만 미끄러졌다. 이웃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왔다. 전화가 왔다. 급히 시골로 내려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우리집 근처에 있는 s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한달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진단결과 엉덩이 뼈가 금이 손가락 한마디 정도 갔는데 연세가 있어 회복되기는 힘이 든다는 말을 하였다. 입원 중 집에 잠시 들려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빨리 오라고 했다. 병원문을 열고 시어머니께 달려갔다. 온 몸이 노른자 계란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변해 있었다.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중앙대 병원에서 수술을 7시간 받았지만 3개월 후 돌아가셨다. 살던 집에 가보니 약이 된다는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가 마당 가득 심어져 있었다.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하얀 꽃이 피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시어머니의 영혼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봄이 오면 어디서나 피어나는 끈질긴 근성이 있다. 바늘 한 개 들어갈 틈도 없는 보도블록 사이에 옹기종기 피어 있는 것을 보면 감탐사가 절로 나왔다. 코로나가 유행을 해도 걸리지 않은 꽃들이 대단하였다. 그에 비하면 사람들이 더 두려움에 떨었다. 민들레 꽃은 노랗게 물든 얼굴로 다가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랑을 받는 재미에 사나보다.
살아 줘서 고마워. 봄꽃이 피니 이제 마스크가 대장정의 길을 멈춘다고 하지만 각자 알아서 대처를 해야 한다. 손바닥 만한 마스크의 위력이 대단했다. 하얀, 검정, 분홍, 보라 꽃들은 이제 안녕. 노모, 외할머니, 아버지, 할머니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봄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마음껏 꽃구경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아직은 완전하게 마스크를 벗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입술에 핀 행복의 꽃이 봄날에 삶을 즐겁게 해주었다. 보도블럭에 핀 봄꽃들 방가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