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트라우마 – 이호석 논설위원
삼월 중순 화창한 봄이다. 조금은 싸늘하고 상큼한 날씨다. 마을 앞 공원길을 따라 열심히 걷는다. 갑자기 공원 한편에서 대기 하고 있던 헬기가 뇌성 같은 굉음을 내더니 금방 물주머니를 달고 날아오른다. 또 인근 어느 곳에 산불이 난 모양이다.
산불이 나고 헬기가 물을 실어 나를 때면 나는 가끔 과거 면서기 시절 산불 끄기에 동원되어 고생한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농촌은 대부분 나무와 마른풀을 땔감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겨울철 농한기가 되면 농촌 사람들은 매일 같이 산에 가서 나무를 했다. 산은 그만큼 농민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을 주위에 산불이 나면 모두가 내 일 같이 산불 끄기에 앞장섰다.
산불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 진화인력 출동 범위가 달라진다. 낮은 야산에 소규모 불이 났을 때는 그 지역 면 직원들과 해당 마을 주민이 함께 불을 껐다. 이보다 조금 더 큰 산불이 나면 인근 면 직원과 주민들까지 동원되었고, 높은 산에 대형 산불이 나면 군청 공무원은 물론 인근 면 직원과 주민 모두가 출동하였다.
그때 불 끄는 장비는 겨우 삽과 쇠칼꾸리, 낫이 모두였다. 당시는 거의가 민둥산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장비로도 진화 작업이 가능했다. 삽과 쇠칼꾸리로는 불이 난 바로 옆을 따라 올라가면서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낙엽을 긁어내어 방화선을 만들었고 낫으로는 솔가지를 베어 그것으로 불을 끄기도 했다.
산불은 겨울에도 가끔 나지만 주로 삼사월에 많이 발생한다.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농부들이 논밭으로 나가 농사 준비를 하게 되고, 또 도시인들은 등산을 위해 산을 즐겨 찾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산불은 주로 산기슭에 있는 논 밭두렁을 태우다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산림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인 2023년도 산불 발생 건수는 596건이었고, 피해 면적이 4,992ha나 된다. 산불 피해 지역이 제대로 복구되려면 100년이 더 걸린다고 하니 그 피해는 너무나 크다고 하겠다.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실수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전 국민이 조금만 주의하면 이런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산불 진화에 수십 차례 참여하였지만, 특히 서너 곳의 산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 어느 초봄이었다. 60대 후반이던 나의 선친께서 마을 인근 골짜기 밭두렁을 태우다가 인접 야산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그것을 혼자 끄시다가 지쳐 쓰러져 마을에서 출동한 젊은이에게 업혀 내려와서 상당한 시일 고생을 하며 우리 가족들을 애타게 하셨다.
또 2,3년 후 어느 봄날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합천읍 소재지 가까운 인근 마을 뒷산에 불이나 동료 직원들과 함께 불평을 하며 출동하였다. 마을을 지나 뒷산으로 올라가니 벌써 마을 젊은이 다수가 올라와 있었고 불은 대부분 꺼진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현장에 도착해 살펴보니 마을 어른 한 분이 자기 부인 산소에 옮겨 붙은 불을 끄다가 옷에 불이 붙어 돌아가셨다며 옆에 시체를 그대로 두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해는 저물고 어쩔 방법이 없어 마을 청년에게 지게를 가져오게 하여 시체를 가마니로 둘러싼 후 교대로 지고 내려와 그 집 마당에 모셔두고 돌아왔다.
나의 선친이나 돌아가신 분은 산불을 낸 후 죄책감과 책임감이 강한 순진한 촌로들의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특히 부인 산소에 불을 끄다가 돌아가신 그 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또 할머니 산소에 영혼이 계셨다면 남편이 자기 산소에 붙은 불을 끄다가 참변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였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하고 아린다.
한 번은 80연대 후반 어느 봄날 오후였다. 합천군 봉산면과 거창군 경계에 있는 높은 산에 불이 났다. 군청 직원과 가까운 읍면 직원이 모두 동원되었다. 현지에 가보니 곳곳이 바위 절벽과 가시덤불로 산세가 아주 험악했다. 몇 명씩 불길 옆을 따라 불을 끄며 정상에 다 달았다. 순식간에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해지는데 불길은 영 잡히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악산을 내려갈 일도 걱정스럽고, 곳곳에서 산불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어 무섭고 불안하기도 했다. 이날 결국 불을 다 끄지 못하고 철수하게 되었다. 험한 절벽을 타고 겨우 기어서 내려와 보니 얼굴과 손등 곳곳이 긁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의 상황을 생각하면 등이 움츠려진다.
지금은 산에 숲이 우거져 있고, 산불 진화 방법도 크게 달라졌다. 특히 농촌에는 모두 고령자 밖에 없어 인근에서 산불이 나도 이를 끄기 위해 산에 올라갈 사람이 없다. 십수 년 전부터는 시군마다 산불 발생 시 이를 진화하기 위해 헬기 한 대씩을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5월까지 고액을 주고 임차하여 관내 대기를 시켜 놓았고 또 골짜기마다 산불 감시원을 배치하여 산불 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매년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큰 피해를 나게 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소규모 산불은 그 지역에서 임차한 헬기로 거의 진화를 하고 있고, 산불 규모가 커지면 인근 시군에서 임차한 헬기들의 협조를 받아 합동으로 불을 끄고 있다. 그러나 잔불 정리와 완전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산불 진화대원이나 공무원들이 올라가 고생을 해야 마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