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44) 우리는 기업가의 정신마저 깎아내린다 – 권길홍 수필가
오월이다. 싱그러운 대지위로 펼쳐진 논길을 걷노라면 생각나는 노래,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있어 나를 멈춘다. 윤용하의 가곡 보리밭이다. 이 노래 말고도 오월의 새파란 보리를 보면 나에겐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한 위대한 기업가의 기발한 착상이!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같은 소시민적인 인간에게 고귀한 건 무엇인가? 돈도 좀 벌어야겠고 생활도 안정되게 편안하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데 정주영같은 위대한 기업가의 매일매일의 사고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을까?
어느날 박정희가 지금 한창 시공중인 선박을 보기 위해 울산의 정주영회장에게 연락을 했다. 방문한다고! 그런데 정주영회장의 앉은 자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낮으막한 언덕이 풀한포기 없는 맨땅으로 남아있었다. 그 벌건 맨땅을 박정희대통령에게 보이기 싫었던 정주영회장은 새파란 보리싹이 촘촘히 자라고 있던 보리밭의 파란 보리싹을 걷어와서는 위에 뻗어나온 보리의 긴 줄기는 잘라버리고 마치 잔디모판처럼 만들어 그 맨땅 전체에 입혀서 잔디가 무성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얘기를 내 젊은 시절에 읽었다.
예의 못난 내 외곬수에 단편적으로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버릇으로 기업하는 사람들의 아부근성으로만 생각했다. 그저 정부의 고위층 인사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기업인들의 속성으로만 생각했던 내 치졸하고 비뚜러진 젊을 때의 근성이 여기서도 잘 드러났다. 나를 포함한 그 당시의 비뚤어진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정주영회장의 완벽하고 치밀한 정신자세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밖에 할 줄 몰랐던 사람들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기업하는 사람의 입장은 우리와 달라야 하는 것 같다. 찾아오는 사람이 박정희이던 누구던 자신의 회사를 잘 가꾸어진 모습으로 보이려는 정주영회장의 정성을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몰랐다. 그저 언론의 몇줄 기사만 읽고는 그 위대한 기업가의 정성과 사고에 무관심했다. 보리를 잔디처럼 보이게 하여 잘 관리된 회사로 보이게 하여 하나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도록 했던!
현대는 그 당시에 작은 기업일 뿐이지만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려는 자신의 꿈을 위해 회사의 조그만 허점도 용납하지 않고 애착으로 가꾸고 관리했다는 증거가 이 작은 일에서도 볼 수 있다. 회장님은 회사의 경영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지만 정원을 가꾸는 그 착상마저도 기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사고를 박정희는 위대한 기업가적 발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고 또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정말 정주영회장 같은 분도 훌륭하지만 박정희라는 위대한 통치자를 만났기에 현대중공업과 같은 거대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감히 외람스럽게 짐작해본다.
우리는 박정희를 지우기 위해 기업가의 정신마저 모른 체하고 깍아내리는 건 아닐까.
그 당시에 현대라는 회사는 조선소를 지을 자금이 있었나, 기술이나 경영에 관한 지식이 있었나, 아무 것도 갖춰지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조선소를 지으라는 박정희의 강압적 명령 아닌 명령에 정주영회장과 같은 기업가도 못하겠다고 자신없어 할 때 마구잡이로 압력을 가하여 현대중공업을 창업하라고 밀어붙인 박정희라는 인물. 저돌적이고 위대한 박정희라는 통치자의 뜻을 잘 받들어서 조선소를 짓고 세계를 누볐던 결과가 오늘의 정주영을 만들고 대한민국최고의 최고기업가로 만들었다. 그런 박정희라는 인물과의 만남이 오늘의 현대중공업이고 대한민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