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금 당신은 인생의 몇 막(幕)에서 살고 있습니까? – 이호석 수필가
우리는 흔히 인생살이를 한 편의 연극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의 큰 변곡점을 기준해서 몇 막(幕)으로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얼마 전까지 인생을 크게 3막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문학적으로 인생의 막(幕)을 나눌 때는 1막(1~30세), 2막(30~60세), 3막(60~90), 4막(90세 이상)으로 구분하지만, 나는 태어나서부터 직장을 퇴직하는 날, 즉 생산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를 1막(성장과 노동 기간)으로 보고, 이런 일에서 물러나 일에 대한 압박감을 떨쳐버린 시기에서부터 2막(휴면과 건강관리 기간)으로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건강관리가 어려운 병치레를 하거나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에서 보내는 기간을 3막(웰다잉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였다.
보통 2막 시작 전후가 되면 대체로 자녀들 출가도 마치게 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홀가분하다. 1막에서 하지 못한 취미생활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고 또 즐거운 여가선용을 하면서 돌보지 못했던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 있어 그야말로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과 출세에 열정을 쏟는 청·장년기가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인 전성기라고 보면, 2막의 인생은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는 수많은 인생이 있고 수많은 삶이 있다.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다른 인생들을 함부로 몇 막으로 나눌 수는 없다. 내가 3막으로 나눈 것은 나와 주위의 보통 사람들 기준으로 생각해 본 것이다.
세상의 무대는 너무나 넓고 인생의 삶도 다양하다. 오대양 육대주의 넓은 무대에서 마음껏 열연하는 연기자가 있는가 하면, 한 국가를 무대로 하는 연기자도 있고, 나와 같이 좁은 고을 무대에서 평생 섣부른 연기를 하다가 끝나기도 한다.
직업에 따라 그 역할도 각양각색이다. 얼핏 생각으로 크게 부(富)를 축적한 사람이나 크게 출세한 사람들에게 비유하면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엑스트라 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모두 자기가 주인공으로 태어났고 최선의 연기를 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평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생의 연기도 가지가지이다. 보통 다수의 사람은 착하고 사회 곳곳에 기여하면서 올바른 연기를 하며 살지만, 개중에는 평생 좀도둑 같은 연기를 하는 부도덕한 사람도 있고, 정치를 한답시고 국민을 상대로 마음에도 없는 거짓 연기로 요란을 떠는 정치꾼들도 있다.
나는 바쁘게 온갖 열정을 쏟았던 1막의 인생을 무사히 마치고, 언제부터인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2막의 인생을 맞이하였다. 흔히 요즘을 100세 시대라고 하여 나는 가끔 지금처럼 즐거운 2막의 인생이 언제까지일까를 생각하면서 그 패턴이 깨지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며 살아왔다. 그때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건강할 때 나의 착각이었을 뿐이다. 2023년 말 내가 위(胃) 30% 정도 절제 수술한 후, 갑자기 인생을 몇 막으로 나누어야 할지 다시 생각해 본다. 분명히 수술 후의 인생은 즐겁게 지내던 2막의 연속이 아니기 때문이다. 갑자기 변경된 3막에서 다른 연기를 어설프게 하고 있는 것처럼 생활이 어색하고 혼란스럽다.
누구라도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2막에서 살다가 평생 건강에 영향을 주는 큰 수술을 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경우, 또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삶의 여건이 급격히 달라지는 사람은 3막의 인생이 새로이 추가 되고 새로운 각오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애초 3막으로 예상했던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의 기간은 자동 4막이 될 수밖에 없다.
급격히 새로운 3막의 인생을 맞이한 사람은 2막의 인생과 같은 즐겁고 행복한 삶은 도저히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와 같은 마음의 여유와 기력과 열정을 불러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맞이한 3막은 어찌 보면 항상 조금은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2막에서 남달리 장기간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를 생각해 본다. 한마디로 부(富)를 축적한 사람도 아니고 성공하고 출세를 한 사람도 아닌 것 같다. 부부가 함께 인생 말년인 80대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바로 마지막 막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는 나의 인생 연극도 막을 내릴 것이다. 내가 무대에서 사라진 후 평소 나의 연기를 봐온 많은 관객이 나를 어떻게 평할지 궁금하다. 보통 영화나 연극을 보고 나면 관객들은 출연한 연기자들의 연기를 좋게 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지 않게 평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의 일생 연기를 본 사람 중에 너무 혹평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어른들은 살고 있는 지금을 자신의 인생 몇 막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또 인생의 몇 막에서 가장 삶의 가치를 높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인생의 황금기인 2막에서 오래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를 염원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