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그 할머니 – 임장섭 전 합천교육장
그곳에 가면 늘 보이던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궁금해진다. 나를 알지 못하고 단 한 번 눈인사를 나눈 일도 없는, 성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게 그런 사람이 있다.
나는 2013년 2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마산을 오갔다. 정가(正歌 가곡 가사 시조)를 공부하기 위해서다. 풍류의 바다에 풍덩 빠져있었다. 매주 목요일에 합천에서 7시50분 출발하면 마산 버스터미널에 9시40분경에 도착한다. 터미널에서 마산삼성병원 쪽으로 10분쯤 가다 보면 마트가 나온다. 거기서 한 할머니를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 장소에서 폐휴지를 정리하고 빈 맥주병, 소주병, 각종 음료수 캔을 수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7년간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이전에도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일이 생업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친근감이 가는 작은 편의 키에 머리는 그냥 빗어넘겨 끈으로 매는 것이 일상이었다. 옷은 누추하지 않으면서 약간은 헐렁한 옷차림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가도 눈비가 내려도 하는 일은 한결같았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혼자였다. 가볍게 움직이며 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어떤 날은 좋은 일이 있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허밍을 즐기기도 했다. 담배를 물고 작업을 하는가 하면 주저앉아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기도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그녀는 맨땅에 덥석 않아 짐승처럼 울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버스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2020년 2월에 ‘코로나 19’때문에 공부하는 것을 중단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병이라고 서로를 경계하는 풍조에 정가(正歌)가 대수일 수는 없었다. 그러다 2024년 3월에 정가를 공부하러 마산에 가게 되었다. 차 안에서 그 할머니 생각을 했다. 변함없이 그 일을 하고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바쁜 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보이겠지, 그다음 주는 나오실까. 그러기를 몇 달이 지나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증은 더해 갔다. 혹여 ‘코로나 19’로 돌아가신 건 아닌가. 도로변이라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질병에 시달리다 신산(辛酸)한 삶이 힘겨워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나라 자살자가 작년에 1만3천770명이라고 했다. 매일 38명꼴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그중에 포함되지는 않았을까.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부끄럽게도 세계 최고다. 적게 낳고 많이 죽는 다사사회(多死社會)다. 살기는 좋아지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데 자살률은 왜 이리 높을까. 그야말로 코리아 패러독스다. 돌아가셨을 때 장례는 어떻게 치렀으며,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조의를 표했을까. 그들은 그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들 하며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사후 할머니에 대한 평판은 어땠으며, 장지는 양지바른 산이었을까. 마산 앞바다에 유골을 뿌렸을까 하는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다.
오늘도 마산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는 버스 안에서 그 할머니 생각으로 가득하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남편과 헤어져서 괴로움을 잊기 위함일까. 자식이 있어도 돌보지 않아 서운함이 많아서일까.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 짐승처럼 왜 울었을까. 알뜰하게 노력해서 모아둔 돈을 전화 금융사기 같은 사기꾼에게 당해 분하고 허탈해서일까. 대범물부득기평즉명(大凡物不得其平卽鳴)이라. 무릇 사물은 평안함을 얻지 못할 때 운다지. 절규하는 그 울음을 보고 그냥 지나친 내가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 사연을 들으며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마음에 ‘나도 이제야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여러 음표로 이루어진 협주곡이라던가. 그녀에게도 소싯적 풋풋한 청춘이, 방년에는 꽃향기 나는 로맨스가 있었으리라. 누구나 간직하고픈 화양연화(花樣年華)의 때가 있지 않은가. 고통에 압도된 자신의 문제를 대신 풀어줄 ‘해결사’를 끝없이 찾아 헤매지는 않았을까. 인생 만년에 청황부접(淸黃不接)의 삶이 힘들었겠다 싶다. 그녀는 갔어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른다. 이제 고달픈 삶의 더께를 벗고 구름처럼 자유로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