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해인사(海印寺)보다 앞서 거덕사(擧德寺址)가 있었다(2)-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22)

하재효
논설위원

홍제암 주지스님(朴宗性)과의 첫번째 만남에서 거덕사에 대한 단서(端緖)를 잡게 되고 세 번째의 만남에서 자료(資料)를 확보하여 그 실체를 게재(揭載)하게 되었다. [거덕사]는 대가야국이 신라의 침략으로 멸망할 무렵 마지막 왕인 [월광태자]가 난을 피한 곳으로, 지금까지 그 실체가 묘연(杳然)하였으나 고승(高僧)들 간에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가야산 해인사지(伽倻山 海印寺誌;李智冠 編著)에서그 실체를 발췌하여 아래와 같이 보도한다.
“거덕사(擧德寺)는 해인사에서 서쪽으로 홍제암을 지나 개금불로 가는 도중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의하면 해인사 서쪽 양계(兩溪)가 교호(交滸)하는 지점에 난야(蘭若)가 있으니 이가 곧 거덕사(擧德寺)이다.과거 대가야국 월광태자가 처음으로 불연(佛緣)을 맺은 곳이라고 한다.석리정전(釋利貞傳)에 가야산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천신(天神) 이비가(夷毗訶)에게 정감(情感)되어 대가야 왕인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金官國王)인 뇌질청예등(惱窒靑裔等)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즉 이진아고왕(伊珍阿鼓王)의 별칭(別稱)이요, 뇌질청예(惱窒靑裔)는 곧 수로왕(首露王)의 별칭(別稱)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가락국(駕洛國)의 옛 사기에 실린 6란(六卵)이 화(化)하여 시조(始祖)를 낳았다는 말과 함께 전설(傳說)로만 볼 수 밖에 없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월광태자는 정견모주의 10세손(世孫}에 해당된다. 여기에 있던 괴탑(壞㙮)은 1926년에 큰 절 명부전(冥府殿) 정중(庭中)에 이안(移安)하였다. 해인사를 창건(802)하던 때에는 이미 이 절은 폐사(廢寺)가 되었다고 한다.“
2016년 8월16일 오전 해인사 홍제암 주지스님(道峯 朴宗性)과 인터뷰를 하였다.
스님께서는 발심(發心) 출가(出家)가 아니고 형 두 분이 어릴때 타계(他界)하심에 따라 부모님의 권유에 의하여 14세에 출가하여 향년 77세이시다. 62년도부터 해인사에서 수행(修行)하시면서 농감, 7주지스님 밑에서 원주,해인사 총무스님 등을 역임하셨으며 현재 홍재암 주지스님으로 계신다. 스님께서는 한 평생을 해인사에서 수행하심에따라 해인사의 산 증인이요 역사이다. 해인사에 대한 애착심이 지극하시며 특히 1977년 5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배차(參拜次) 이곳 홍제암에 들려 구국성사(救國聖師)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이니,국고(國庫)로서 일신중수(一新重修)토록 하였으나 완성 전에 서거(逝去)하여 어려움이 많홍제암 박종성 주지스님았다고 한다.앞으로 희망 사항으로는 사명대사님의 동상(銅像)을 높이 세웠으면 하는 원(願)이시며 지역 주민들과의 끈끈한 유대감도 계신다. 이번에 필자와는 짧은 인연이지만 역사의 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있으서 보람을 누리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불편을 느끼면서 현장 답사를 안내코져 하시니 감사하기 그지없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