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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수를 합니다 – 문경자 수필가

2024년 12월 31일 아침은 왠지 나도 모르게 빨리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해를 보내는 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좋아하는 사람,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싫어하는 사람 각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엊그제 같이 새해인사를 하고 첫 날을 맞이했다. 벌써 한 해를 보내는 구나 하고 생각을 하니 사계절이 빨리 지나가고 그 사이에 우리의 삶도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첫날 계획을 세우고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보고 싶다는 말로 위로를 삼았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다시는 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한 서러움이 목을 메이게 하였다. 연말이라 서울의 거리는 분주하고 그저 바쁜 사람들이다. 한해를 보내야 하는 하루가 마음을 더 빨리 조이는지 모르겠다. 나도 마음이 조급하고 마지막 날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급해졌다. 집안 일을 하고 정리를 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일을 끝내고 나서 빨간색이 선명한 사과를 깎아 예쁜 접시에 담아 먹으니 단 맛이 사르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사과 맛 같은 달콤한 한 해를 보내는 것도 행복하다. 일년동안 가족들과 잘 지내며 주변의 친척들, 친구들, 문인들 글을 쓰고 읽고 하는 등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달달한 나날들을 보냈다는 기분이 좋았다. 타종 소리를 듣고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즐거웠다. 잠자리에 들어도 눈은 말똥말똥하고 지나간 일들이 줄줄이 스쳐간다. 하나, 둘, 셋 숫자를 헤아리다 잠이 들었다.
2025년 1월1일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더 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눈을 뜬 채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일어나도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새해 첫날은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차려 달라고 하던 사람도 없고, 그 자리를 재롱 떨며 웃게 해주던 까붕이도 별이 되어 하늘나라로 가고 없다.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곁에 있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여행도 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사는 일이 만만치 않고 내 살기에 바쁜데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슬슬 몸을 풀고 허리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다리를 올려 자전거 타기도 해보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자리에서 일어나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거실로 나가는 발걸음도 신이 났다. 새해 첫날이다. 사람들과 만나면 먼저 웃어주고, 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자식들에게 잘한다 고맙다 최고다 하는 말들을 전해 보고싶다. 첫 날은 해도 밝고 마음도 밝고 모든 것이 밝음이다. 창문을 열고 해를 보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고운 햇살이 내 얼굴을 살며시 만져 주었다. 따듯한 부모님의 손길같이 느껴졌다. 살아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자기를 위해서 웃어도 주고, 사랑해주고, 세상에 내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살아있어 새해맞이도 하고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서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 행운이 늘 함께 하길 바라며, 소망이 이루어지길 일년 내내 빌면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본다. 상대방도 그 손을 잡으며 웃는 얼굴로 바뀐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도 생각해본다. 내가 있어 남이 있고 남이 있어 나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부모님들은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도 자식들 걱정을 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자식들은 그저 예 하고 고개를 떨군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햇살이 좋은 새해 아침 참 좋은 날이다. 오만가지 생각을 나게 하는 것은 어떤 의미보다도 나를 일깨워주는 보약이다.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될 때 만이라도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니 행복한 새해가 아닌가! 첫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곰곰이 마음속까지 내려가서, 더듬어 보려고 해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래 맞아! 거창한 것보다 한가지라도 정해보자. 이렇게 생각을 하니 여기요, 저기요, 하고 언어들이 술술 풀려나왔다. 글을 쓰는 일을 열심히 하고, 건강하게 살며,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응가 잘 하면 그것이 살아가는 행복한 일이라 마음을 먹었다. 별거는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으로 다짐을 하였다. 을사년 푸른 뱀띠의 해는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즐거운 한 해를 맞이 하시길 소망합니다. 하고 맘속으로 빌었다.
아침밥을 먹고 세수를 한다. 얼굴에 묻어 있는 묵은 때를 싹싹 비누 거품으로 지우고 나니, 새해 첫 날의 세수는 뽀드득 예쁜 소리가 들렸다. 거울에 비추니 광이 나고 반질반질하게 보였다. 눈 코 입도 반짝였다. 마음도 참 예쁘다. 웃음은 더 예쁘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눈썹에 묻어 있는 물방울을 살짝 만져본다. 얼굴을 톡톡 손으로 두들겨 물기를 스며 들게 만들었다. 촉촉한 얼굴에 봄에 피어날 꽃 같은 날들을 기다려본다. 새해 새마음으로 세수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