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참 웃겨요 – 문경자 수필가
겨울 햇빛은 추위가 덜 느껴지고 따듯한 기분이다. 해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 무채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고 무를 찾아보니 없었다. 바람도 쏘일 겸 마트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따듯하게 챙겨 입었다. 거울을 보고 웃어 본다. 웃음도 자꾸 웃어야 근육이 살아나 자연스러운 웃음이 나온다.
밖을 나오니 햇빛과 싸늘한 공기가 좋았다. 감나무 가지에 까치가 앉아 울고, 초등학교 담벼락 개나리 덤불아래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놀고 있다. 사시사철 푸른 나무는 계절의 변화가 없다. 사람도 늘 푸르고 변하지 않으면 좋겠다. 마트 가는 길이 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는 길은 좋았다. 마트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먹거리를 사고 있었다. 과일들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겨울 과일은 뭐니뭐니 해도 달콤한 귤이 최고다. 예전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바나나는 값이 좀 내리기는 했지만 귤 맛이 더 좋아 눈길이 그 쪽으로 갔다. 여러가지 야채들이 싱싱하게 포장되어 생각보다 비싸게 팔고 있었다. 무를 고르기 위해 끼고 있던 빨간색 장갑을 벗어 코트주머니에 넣었다.
무가 반질반질 윤기가 났다. 땅속에서 자랐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크며 단단하다. 그냥 한입 베어 먹고 싶었다.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이것 저것 들어보고, 만져보고, 굴러보고 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놈을 골라 놓고 보면, 저놈이 좀더 크게 보였다. 무는 크고 실하게 생겨야 맛이 있다. 몸매가 예쁜 무를 키우기 위해 누군가는 땀을 흘렸을 것이다. 1개 1,500원이면 엄청 싼 가격이다. 머리통 만한 무 하나를 골랐다. 또 다른 무에 욕심이 나서 눈길이 갔다. 담에 또 사러 오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다 보니 큰 무가 눈에 들어왔다. 외면을 하였다. 무를 들고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지난번에 무를 들고 가다 너무 힘이 들었다. 오늘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씩씩하게 걸었다. 출발은 좋은데 갈수록 힘에 부쳤다. 왜 이럴까! 무 하나 들고 오는 것도 힘에 부친다. 먹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이 드냐! 물 한 동이 들어 가는 장독도 번쩍 들어 옮겨 놓고, 장롱도 번쩍 들어 옮겨 놓으면 “어떻게 농을 엄마 혼자 옮겼어요?”작은 아들이 놀라워하던 때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깅자가 자라면 장군감이라 하였다. 그런 힘을 자랑하던 내가 무 하나를 들고 가며 낑낑 되다니 ‘참 웃겨’ 하고 하늘을 올려 다 보고 웃었다. 무를 들고 오는 길에 오토바이, 자전거가 방해를 했다. 힘내자, 웃자, 하하 그런 사이에 겨우 집에 와서 무를 식탁 위에 내려 놓고 또 무를 구르며 또 한번 웃었다. 무는 예쁘고 먹음직스러워 잘 골랐다는 생각을 하며 만족했다. 흐르는 수돗물에 깨끗하게 씻어 놓았다.
배가 고파 단팥빵을 하나 먹고 오렌지 주스를 한 병 따서 마셨다. 기운이 솟아 나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또 마트에 가고 싶었다. 혹시나 하고 국수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한번 삶아 먹을 양이 있었다. ‘마트에 가서 국수를 사오는 거야’ 하고, 옷을 갈아 입지 않고 동네에 있는 푸른 마트에 갔다. 아까 보다는 가까운 곳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늘 똑 같은 이웃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붕어빵 2개를 천원에 팔고 있는 긴 머리 아가씨가 정겹게 보였다. 따끈한 붕어빵을 사서 먹는 소녀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자주 오는 곳인데 국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매장의 물건들도 조금씩 자리를 바꾸어 진열을 한다. 옆에 보니 여직원이 샴푸를 옮겨 보기 좋게 진열을 하고 있었다. 옛날 국수 소면을 샀는데 무거웠다. 가격도 1만원에 가까웠다. 또 힘을 써야 한다. 무 들고 오던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힘내자 하고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진짜 더 무거워지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약간 아픈 느낌이 들었다. ‘참 웃겨요.’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사서 고생을 하다니 말이다. 참고 오다 보니 집에 도착하였다. 부러질까 똑 바로 세워 두었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국수를 삶아 먹을 때는 양념으로 고추장과 야채를 넣고 비빔이나, 물국수에 넣고 말아먹는다. 고추장도 달랑달랑하네. 또 마트에 가서 고추장을 사자. 오늘은 꿈을 잘못 꾸었나! 귀신에 홀린 것처럼 마트에 자꾸 가고 싶은 날이다. 마음은 즐겁다. ‘참 웃겨요.’시골장은 멀어서 5일에 한 번 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마트가 있어 너무 좋았다. 같은 마트에 들렸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찬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에 마트는 동네서도 장사가 잘 되는 편이지만 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마트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단골 마트가 있어 굳이 가고 쉽지 않았다. 고추장의 종류도 많다. 태양 찰 고추장이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 고추장, 된장, 간장도 담가 먹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귀찮아 졌다. 남편이 도와줄 때는 둘이 힘이 되어 재미가 있었다. ‘이제는 편안하게 살아요’하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마트에서 팔고 있는 고추장도 입맛에 맞아 담글 필요가 없어졌다. 무채를 만들어 콩나물과 송송 썬 상추에다 참기름 몇 방울 넣고, 비벼 먹을 생각을 하니 군침이 사르르 돌았다. 마침 세일을 해서 큰 것과 작은 것을 한 묶음에 팔고 있었다. 쌈장도 한 개를 샀다. 계산을 하고 시장 가방에 넣었다. 무와 국수를 들고 가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거워 길을 걷다가 몇 번을 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들이 왜 이렇게 무거울까! 혼자 생각했다. 앞에 가는 아주머니는 아저씨와 번갈아 가면서 시장 가방을 끌고 앞서갔다. 저 가방에 넣고 끌고 가면 편할 텐데 하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딱 한번 사용한 가방은 바퀴가 틈사이에 걸려 나뒹굴어 안에 있던 물건들이 도로변에 흩어져 그것을 주워 담아 온 후 절대로 쓰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고추장, 쌈장을 꺼내는데 힘이 들었다. 팔이 아프다. 몇 년 전교통사고로 오른팔을 크게 다쳐 보상까지 받아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다. 그 후 비가 오는 날 외출을 하다가 발이 미끄러져 오른팔을 또 다쳤다. 치료를 해도 빨리 회복이 되지 않아 가끔 물리치료를 받아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텔레비전에서 근육강화제 약을 선전했다. 약을 먹는다고 근육이 생기는 게 아니라 힘을 쓰고 운동을 해야 한다. 하루 일을 가만히 생각하니 즐거웠다. 하루 세번 마트에 다녀오고, 먹거리도 준비하고, 쉼없이 움직였다.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일상이 행복을 안겨주었다. 큰 일도 아니지만 내 스스로 보람을 찾는 것도 재미가 있다. 큰 아들은 “어머니 배달을 시키면 편할 텐데 힘들게 들고 다니세요.”하며 웃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참 웃겨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