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미 추락한 대한민국의 2025년 봄 – 곽노연 시인·서예가·국가유공자
2025년 대한민국의 봄을 맞았는데도 스프링(spring,일어나다)이 될 수 없었다. 개나리도 벚꽃 등 봄꽃까지도 예년만큼 반기지 않는다. 국민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거리와 광장은 분열과 갈등의 냉기로 뒤덮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란 탄식조차 싫증 날 정도로 우리 한국 사회는 피로하고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정치는 더는 국민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정당은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하고 있어 그 속물성과 이기주의를 감추려 하지 않는다. 국회는 공전(空轉)되고 있고 대통령실은 고립되었으며 야당의 독단과 여당의 안하무인 지경이라 국민이 사라진 정치판엔 정권과 탐욕만 넘쳐난다.
언론은 이미 그 역할을 상실했다. 신문과 방송은 진실을 좇기보다 편을 가르며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선동의 자유’로 변질하였고 여론은 진실보다 감정에 의해 휘둘린 지 오래다. 국민의 눈과 귀를 닫게 했고 또 스스로도 닫았기에 종국에는 마음은 분노와 불신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법은 어떠한가! 과거에는 믿을 수 있던 최후의 보루였던 사법부조차 이념의 전선에서 벗어난 지가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사안도 판사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뒤바뀌고 국민은 법치가 아닌 ‘정치판결’을 마주하게 됐다. 이젠 상식도 정의도 법률도 윤리와 도덕도 양심도 제 기능을 못 하는 나라가 되었다.
사회 곳곳에선 대립이 일상화됐다. 세대, 지역, 계층, 이념, 나이, 성별 등의 모든 틈마다 갈등이 스며들었다. 가족 간의 대화가 끊기고, 친구들끼리 정치적 입장 하나로 우정이 등지는 안타까울 지경이다. 동창회는 파탄이 나고 모임은 흩어질 순간이다. 생각과 사상이 다르면 결혼까지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경제 역시 답이 없다. 골목 상가는 물론 도심 중심 상가의 공실도 늘어가고 물가도 올라 중산층 이하의 생활고는 최악이며 청년들은 구직난에 좌절한다. 일자리 질은 나빠지고 기업들은 휴업을 넘어 이미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노조는 정치화되었고 생산성은 뒷전이고 자기 욕심만 차리는 실정이다. 특히 매머드노조의 행태는 가관이다. 정부는 빚을 내어 버티고 있으나 서민들은 고금리에 허덕이는 현실을 금융기관은 외면하고 있다. IMF와 국제 경제기구들은 한국의 부채 구조와 성장 한계를 경고하고 있지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일하고 싶다”라는 말조차 시대착오가 된 세상이다. 청년은 노인을 꼰대라 부르고 노인은 청년이 나약하다고 비난한다. 일의 가치와 성실의 미덕은 조롱받고 있고 유튜브와 SNS에 휘둘리는 여론 속에서 ‘자극’과 ‘선동’이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된다.
무엇이 우리 국민과 나라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누구도 아니 단 한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다. 정치인은 책임 회피에 능하고 관료는 복지부동이며 국민은 서로를 탓한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책임 없는 나라, 방향 잃은 열차처럼 폭주하고 있다. 거리에는 빨강과 파랑이 도배되어 국민에게 위화감과 불안감만 주고 있다. 국민은 진짜와 가짜, 선과 위선의 중간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피곤한 단어였던 적이 있었던가! 너무도 슬프다.
그런데도 우리는 물어야 한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누가 이 난장판을 멈추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또 다른 정권이 아니라, 화합과 상식 그리고 회복이다. 지금의 한국은 가난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다.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에 붕괴한 것이다. 진짜 살기 좋은 나라란 크고 번듯한 집이 많은 곳이 아니다. 이웃과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고 가족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고 웃을 수 있고 사상과 생각이 달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다. 그런 나라가 진정 부럽다.
을사 2025년 4월 말, 5월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경고음을 넘은 지 오래다. 이제는 정치를 넘어선 국민의 각성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분노가 아니라 상식과 책임, 그리고 화해와 화합이다. 2025년 6월 3일의 숫자를 모두 합치니 18이다. 줄행랑하지 말고 진정한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하자. 거짓과 범죄 의혹, 내로남불, 도덕불감 등에 점수를 매겨서 행사하자. 시민 여러분의 안녕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