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다 – 문경자 수필가
“어머니 오늘 저녁은 외식하는 걸로 알고 계세요.”하고 큰아들은 웃으며 좋아하였다. 갑자기 외식을 한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큰아들이 동생 생일은 지났지만 오늘 한 턱 쏜다고 했다. 동생이 도착하자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단골 보쌈집에 갔다. 주인 남자 사장은 오랜만에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저녁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해서 식탁에 나온 음식을 보니 입맛이 당겼다. 상추와 깻잎을 놓고 그 위에 보쌈을 얹어 돌돌 말아 싸서 한 입 먹으니 궁합이 잘 맞았다. 두 아들은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작은 며느리는 나처럼 그저 웃고 있었다. 형제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흐뭇하고 서로 웃으며 주고받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동생은 형과 술잔을 마주하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형이 계산을 하니 더 좋아하는 눈치다. 누가 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동생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 고마운가 보다. 이른 저녁을 먹었으니 2차는 치킨을 사겠다며 형에게 제안을 하였다. “형 치킨 집에 가서 맥주 한잔 하고 집에 들어 가자”는 말을 했다. 보쌈 집 바로 앞집이라 들어가려고 하니 그곳은 어둡고 사람들이 많아 다른 곳을 찾아 가는 중이었다. 근처에 있는 양 꼬치 집을 향해 걸었다. 허술한 아저씨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큰아들이“어머니 조심하세요” 하며 얼른 내 손을 잡아주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옷가게를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큰아들이 갑자기 “어머니 옷을 사 드릴 테니 들어가요” 하며 등을 떠밀었다. 옷이 많아 괜찮다고 하는데 작은 아들은 “어머니 형이 옷을 사준다는데 지금이 기회예요” 하며 한 술 더 떴다. 얼떨결에 떠밀려 들어갔다. “아들은 마음대로 골라 보세요.” 하고 모두 내 옷을 고른다고 이것저것 골라왔다. 문을 닫고 가려던 옷 가게 여자 점원은 신이 났다. 그때 마침 아주머니 4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들에게는 안중에도 없고 “내일 오세요.”하고는 다정하게 다가와서 아들이 골라준 옷을 입어 보라고 했다.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니 정신이 없었다. 체크 원피스, 짧은 자켓, 물방울 블라우스, 노랑색 꽃무늬 치마, 긴 검정원피스 등을 차례차례 입고 나와 모델처럼 폼을 잡고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아들이 옷을 골라 주고, 작은 며느리는 어울리는지 봐 주고, 여러모로 횡재를 한 날. 그 순간 오늘 낮에 잠깐 졸고 있는데, 남편이 꿈속에서 나와 웃어 주던 모습을 생각하며 옷을 입었다. 맘에 드는 것을 골랐다. 점원은 계속 “아이구 정말 부러워요. 아들 며느리가 이렇게 옷을 사주는 모습이 ”하며 추켜 세웠다. 갑자기 이렇게 옷을 사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옷을 살 때는 후회하지 않고 잘 골라야 한다. 거울 앞에 서서 색상, 모양, 계절, 꼭 사야 할 것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며 구두를 신고 왔을 텐데,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보니 옷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갑자기 남편이 출입구에 서서 보고 있는 듯했다. 남편은 어쩌다 옷을 사러 가면 옷 가게 입구나 기둥이 있는 쪽, 아니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백화점에 함께 가도 똑 같은 상황이었다. 남편은 옷을 입어보고 사지 않으면 점원에게 미안하다며 꼭 사라고 권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쪽이라 항상 나는 불만이 많았다. 지금도 만일 같이 왔다면 똑 같은 말을 하고 계산도 빠르게 하고“빨리 가요” 하고는 앞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갔을 것이다.
그때 작은 아들이“어머니 이 옷은 어때요. 옷이 맘에 들어요? 다시 한번 잘 입어 보세요. 그러면 마음에 드는 옷을 살 수 있어요.”하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니 마음이 들뜨고 웃음이 나왔다. 점원은 골라 놓은 옷을 한번 더 입어 보라고 해서 찬찬히 입고 나와 포즈를 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르겠다. 생일도 아니고, 어버이날도 지났다. 둘째 아들 생일도 지났고 이런 날도 있어 사는 재미가 있구나!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 앞에서 너무 웃어도 그렇고, 너무 굳은 표정도 그랬다. 모르겠다. 내 맘대로 하자 환하게 웃자 마음이 편해졌다. 한동안 법석을 떨고 나니 정신이 없다. 결국은 세명의 일치로 세 개를 구입하였다. 여자 점원은 몇 프로 할인이 된다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큰 아들이 자켓 두 개, 작은 아들은 원피스 하나를 계산했다. 작은아들은 점원에게 “이렇게 비싼 옷을 많이 샀는데 서비스라도 주어야지요.”했다. 말한마디에 미니 머플러 두 개와 우산을 덤으로 받았다. 큰 아들은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형은 아빠를 닮아서 그런 말 못하지” 하며 웃겼다. 옷이 든 가방을 챙겨 들고 가게를 나오니 주위가 환하게 밝았다. 이걸 들고 양꼬치 집에 들어가면 냄새가 베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 한편으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식당에 들어서자 냄새가 나지 않게 잘 보관을 한다며 며느리가 신경을 써 주었다.
작은 아들은 “형이 어떻게 어머니 옷을 다 사주는 거야 예외인데”하며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아울렛에 갔을 때 털모자가 달린 검정색 잠바를 골라 입고, 너무 좋아하셨다”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형 외국여행도 가고, 국내도 가고, 가족끼리 한번 가보는 거는 어때? 형 태국 가고 싶다고 했지, 한번 날 잡아보자.” 동생 말을 듣고 큰 아들이 “트롯가수들 공연 티켓도 끊어 줄 테니 어머니와 이모하고 다녀오세요”는 하는 말에 우리는 형 최고야 하고 좋아하며 웃었다. 동생이 궁금해서 형에게 또 물어보았다. “형 어머니 옷도 사드리고, 저녁도 사고, 공연도 보여준다고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데는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에 “사실은 지난주에 내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그 친구 하는 말이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밥이나 옷이나 여행이나 한가지도 제대로 해드리지 못했다며 땅을 치고 울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어머니께 건강 할 때 잘 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또 한 친구는 2년째 누워만 있는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한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형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눈치였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빙 돌고 있는 양꼬치를 꺼내 먹었다. 구수한 꼬치를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있었다. 먹는 중에도 내 눈길은 자꾸 옷이 든 가방 쪽으로 향했다.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얼굴들이 장미꽃 속에서 활짝 웃었다. “어머니 지금이 기회예요”하는 목소리가 귓전에 와서 속살거리는데 잠이 사르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