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기행| 율곡선생·신사임당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곳 파주유적지를 답사한 삼가향교 임원진 – 옥철호 삼가향교 유도회총무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 栗谷 李珥 : 1536~1584년)선생과 율곡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 (申師任堂 : 1504~1551년) 유적지 답사를 위해 지난 5,8일
삼가향교(전교 박홍제)임원진은 장장 6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북한땅과 가까운 파주시를 방문했다.
삼가향교 대성전에 위폐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선현중 한명인 율곡선생의 유적지를 꼭 답사하겠다는 신념하나로 삼가향교 임원들은 대부분 고령의 나이임에도 왕복 12시간 강행군 했던 하루였다.
율곡선생은 어머니 신사임당의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는데
율곡을 낳던날밤 검은용이 바다에서 침실로 날라와 아이를 안겨 주는것을 보았다하여 어릴 때 이름을 현용(見龍)이라 하였다고 한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3세에 글을 읽었고 1548년 (명종3)13세의 어린나이로 진사초시에 합격했다.
1564년 7월에는 생원시에 장원한 이후 아홉 번의 과거에 장원급제해(구도장원공)이라 일컬어 졌다.
1564년 호조좌랑이 된 것을 시초로 대사간, 관찰사, 대제학, 호조,병조,형조,이조판서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율곡선생의 학문은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조선유학계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황(李滉)과 함께 쌍벽을 이루며 기호학파를 형성주도하여 조선시대 성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율곡의 이러한 학문경향은 대동법실시, 십만양병설주장등 사회정책에 대한 획기적 선견은 조선후기 실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선생의 어머니이신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사임당의 그림은 마치 생동 하는 듯이 섬세했다.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와 시 문장에도 뛰어나 조선시대 예술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파주 율곡선생의 유적지에는 선생과 신사임당의 묘지가 있고 선생의 위패를 모신 자운서원의 건립이력을 기록한 묘정비, 선생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와 유품, 일대기를 전시한 율곡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1973년 자운서원, 율곡선생묘, 신사임당묘가 1978년에는 묘정비가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삼가향교임원들은 이번 율곡선생유적지 견학을 통해 선생의 말씀중

  • 지도자는 모름지기 측근을 멀리하고 올곧은 신하를 가까이 해야 한다.
  • 인재등용은 최대한 신중하되 선발한 뒤에는 전폭적으로 신뢰하라
  • 지도자의 엄정함은 공정함에서 나온다.
    라고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선생의 현실적인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실천적 학문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