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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보다 검은 손들의 놀이 – 문경자 수필가

부고문자가 떴는데, 고인의 이름을 보니 멀지도 않고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사돈의 팔촌보다 먼 사이다. 단체 카톡에는 별의별 내용들이 다 올라온다. 받아보는 사람들이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본다. 가까운 사람들의 경조사나 조직적인 모임을 알리는 모든 것들은 카톡 방에서 이루어진다. 글자를 잘 못 읽거나 이해를 못하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문자 하나에 마음이 상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도 있으며, 카톡 소리에 짜증을 내며, 그렇다고 그곳에서 탈퇴해버리면 완전 외톨이가 되어서 깜깜이가 된다. 반면에 편리하고 세대차이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좋은 점도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슬픔도 거의 다 사라진다.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과 상주가 맞절을 할 때도 빠지지 않는 것이 폰이다. 대단한 역할을 하는 기계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장례식장에 오는 조문객들도 영정사진보다는 폰에 더 눈길이 간다. 상주들은 부조금이 들어오는 소리, 친척들과 주고받는 문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영정 속 얼굴은 있으나 마나 그냥 그림일 뿐이다. 그 얼굴도 웃고 있으니 별로 슬픈 마음도 들지 않는다. 예전에 흑백으로 보는 부모의 영정사진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슬픔도 묻어 있고, 자세히 보면, 어린 마음에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조문을 오는 사람들도 엄숙하고 조용하고 무언가 얼굴에는 슬픈 표정도 그나마 보였다.
아버지 돌아가시는 날도 그랬다. 제일 멋있는 사진을 골라 확대를 해서 보니 돌아가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영정사진 속에서 웃으며 ‘경자야 울지 말고 잘 살아야 애비 마음도 편하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하는 표정이었다. 요양원에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돌아가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보통 3일장을 치르고 나면, 집안사정에 따라 간략하게 절차를 끝내기도 한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조용하게 잘 치렀다. 돈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부조금은 모두 살아 계시는 새어머니의 건강관리에 쓰는 것으로 합의했다. 되도록이면 좋은 게 좋다고 자식들도 서로 내색을 하지 않고 조용히 끝맺음을 하였다. 부모님이 떠나고 나면 살아있을 때보다는 오고 가는 정들이 식어가는 것도 현실이지만, 더욱 돈독하게 지내는 가족들도 있다.
친구가 전화를 했다. 멀리 있으니 만나기도 어려웠다. 각자의 생활에 쫓기다 보니 잊고 살 때도 있었다. 큰 맘을 먹고 내가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경기도 쪽이라 전철을 4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전철을 찾아가는 길은 쉽게 갈 수 있었다. 버스 타는 곳을 찾아 가서 기다리는데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았다. 친구가 알려준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마중을 나왔다. 친구의 얼굴 수척해 보였다. “어디 아프냐?” 하고 물어보았다. “아니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 가셔서 장례를 마쳤다.”고 하였다. “왜 연락도 안 했냐?” 하고 물어보았다. 고향집에 혼자 살면서 봉사하는 아주머니가 정해진 날짜에 와서 집안일도 해주고, 보건소에서 건강도 돌봐 주니 안심하고 잘 지내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경로당에 나오지 않아 동네이장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문을 따고 들어 가보니 주방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맏아들에게 전화가 와서 곧장 달려 갔다는 말을 하였다. 90세 어른이 혼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자식이 많고 적고 떠나서 홀로 외롭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이제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유품을 정리할 때 눈물이 난다. 자식들이 마련해준 옷가지, 회갑이나 생신 칠순 팔순 백세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를 할 때마다 부모님의 따듯한 웃음과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저 너희들만 잘 살면 된다 하면서 그저 자식들 걱정만 하던 말들이 귓전에 맴돌았다. 슬픔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자식들마다 생각을 달리해서 불화를 일으키는 일도 있다. 혹시나 비자금이나 폐물을 어디에 숨겨 놓았을까 하며 장롱이나 서랍속을 뒤지고, 통장을 찾는다고 집안을 뒤적이는 눈들은 어느새 검은 손이 되어 아수라장을 만든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장판을 뜯어보는가 하면 숨겨놓을 만한 곳은 다 훑어본다. 한 뭉치의 현금다발이나 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집 안을 뒤지는 자식들도 있다. 금방 부모의 지갑에서 나온 돈을 형제들 몰래 감추고 시치미를 떼는 일도 허다하다. 형제 간에도 돈 때문에 기쁨과 웃음과 울음이 다르다. 더 있으면 횡재를 했다는 기분도 들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부모의 죽음보다는 남겨준 재산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드는 일도 있다. 대기업의 총수들도 형제들끼리 원수가 되고 자식 간에 등을 돌렸다는 뉴스를 가끔 보았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까맣게 잊고, 재산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가족들은 별로 슬퍼하는 맘도 안 생기는 것은 아닐까! 무엇이든 많이 주고 가야 부모의 할 도리를 다하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가신 부모님 날 낳고 길러 주고, 이만큼 행복하게 잘 살게 해주었는데 감사한 마음도 덜한 것 같다. 조의금 받는 계좌도 하나가 아니고 각자의 가족 이름으로 되어있다. 자기 앞으로 온 것은 자기가 다 챙겨 가지고 간다며, 그것으로 인하여 형제들이 싸움을 하고 영정 앞에서 큰소리로 떠들어 분위기는 위태로울 정도로 큰 다툼이 일어난다. 부모님만 불쌍하다. 관속에서 나와 다시 살면서 자식들에게 호통을 칠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다. ‘자식들아 싸우지 말고 부모님에 대한 묵념이라도 하고, 날이 밝으면 리무진은 아니더라도 장례식 버스 아래 칸에 태워 화장을 해서 잘 보내다오 마지막 부탁이다.’검은 손 대신 하얀 장갑을 낀 손 모으고 가는 길을 웃으며 보내줘. 제발 부탁한다 아들딸들아!
카톡 소리에 폰을 열어본다. 여기 저기 부고가 뜨고 조모씨의 아버지94세, 강모씨의 장모가 80세, 친구 모친 78세 등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면 조문을 갈 것인지, 입금을 할 것인지 생각해본다. 살았을 때는 별로 따지지 않고 지내다, 그런 소식을 받으며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하고, 그렇게 친한 사이인지, 부조는 얼마를 해야 하는지 계속 자신과 상의를 한다. 부고소식에 마음이 무겁고 그 가족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문자를 보내고 폰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