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맞이 고향길 (1)
윤병우
명절이 예전 같지가 않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객지에서 고향을 찾아 온 사람들로 동네가 시끌벅적한데 몇 년 전부터 그런 분위기기 많이 옅어진 것 같다. 사람들의 명절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도 원인이겠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시골에는 고향을 지키는 젊은이는 별로 없고, 노인들도 한해가 멀다하고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내 고향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우리 집은 부모님이 돌아가신지 15년이 넘었고, 2년 전에 형님마저 갑자기 돌아가셔서 졸지에 형수님 외에는 내가 최고 연장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의 어깨가 무거워진 느낌이지만 동생도 든든하고, 마흔이 넘은 조카들도 착하고 훌륭하기에 큰 다행이다. 명절이 되면 우리 가족은 동생과 조카들 가족을 포함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고향으로 집합하기에 명절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추석 전날 집사람과 딸, 그리고 아들이 오랜만에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며 고향으로 갔다. 차 안은 제한된 공간이라 불편하기는 하지만 대학생인 아들놈이 깔깔거리고, 큰딸이 분위기를 맞추어 줘서 무뚝뚝한 나를 불편하지 않게 했다.
고향 마을에 들어가니 도로에 귀성객들의 차가 예전만큼 많이 보이지 않는다. 동네 중간을 통과하는 길가의 돌담을 보니 고향에 대한 정감이 물씬 묻어난다.
집에 가니 벌써 조카들과 동생네 가족이 모두 와있었다.
“안녕 하세요~”
“오랫만이네~”
모두들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는다.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질부들이 찌짐이와 소갈비를 굽고, 장조카는 밖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미리 구워놓은 바비큐 등으로 와인파티 준비를 한다.
지금은 개인 사업을 하고 있는 장조카는 모 유통회사의 구매담당을 오래 했던 터라 와인에 대해서는 전문가다. 평소 장조카가 와인에 대해 전문가다운 설명을 하면 가족들 모두들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하지만 와인은 원체 종류가 다양하고 맛의 구별이 어려워 한쪽 귀로 들으면 다른 쪽 귀로 흘러 나가 버린다.
석양이 질 무렵 파티가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조카가 준비한 와인으로 모두 함께 건배를 하고, 술이 몇 순배 돌아가자 모두들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낮에는 날씨가 더웠지만 해가 진 산골의 날씨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와인 몇 병이 동이 나자 냉장고에 보관된 ‘칭따오 맥주’가 끝없이 제공된다. 둘째조카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란다. 그 조카는 부산의 센텀에 본사가 있고 중국 상해에 지사를 두고 있어 중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많다. 평소 얼굴이 까무짭짭해서 중국 사람들도 자기들 동포로 생각다고 해서 웃음을 자아내곤 한다.
이번 추석에는 조카 둘 다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파마머리를 하고 와서 마치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 같다고 놀려도 싱글벙글이다.
테이블의 맥주가 떨어지면 “지현아 맥주~” 하면 싹싹한 아들놈이 자동으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온다.
“맥주는 크게 라거와 에일로 구분됩니다. 라거는 맥주 통의 아래 부분에서 발효가 되고, 마시면 쭉쭉 넘어갑니다. 에일맥주는 윗부분에서 발효를 시키는데 주로 향을 즐기는 것입니다.”
장조카의 맥주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라거맥주와 에일맥주, 그리고 흑맥주의 제조방법과 맛의 차이 등에 대한 설명이 한참 있더니 미리 준비한 고급 ‘스피겔라우 맥주잔 세트’를 집사람과 제수씨에게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맥주잔을 선물 받자 집사람과 제수씨가 좋아하며 인증샷 포즈를 취한다. 스피겔라우 맥주잔은 마실 때 마다 사라지는 만큼의 거품을 새로 만드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조카의 갸륵한 성의에 감동하며 즐거워한다.
산골의 날씨는 역시 다르다. 밤이 늦어지니 갑자기 한기가 돌자 한 사람씩 소리 없이 방에 들어가서는 긴팔 옷을 찾아 입고나와 어느새 모두 긴팔로 바뀐다.
약간의 취기가 돌자 고상한 노래보다 7080 이전의 노래가 구미에 당긴다.
“야! 너희들 노래 수준 좀 높여라~.” 얼큰하게 취기가 돈 내가 객기를 부린다.
다들 어떤 수준 높은 노래를 선곡하는지 조용히 기다리는데 내가 휴대폰의 멜론에서 뽕짝음악을 틀었다. 그랬더니 집사람과 제수씨가 야유를 보내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평소 뽕짝음악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술이 한잔 들어가면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어깨가 자꾸 움직인다.
나는 영락없는 동이족인가 보다. ‘우리 동이민족은 음주 가무를 좋아 한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 얼마나 배웠던가.
어른들이 즐거워하니 애들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 5촌들 끼리 신이 나서 시끄럽게 얘기를 나눈다.
몇 시인지는 몰라도 추석 전야도 정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계속)
윤병우 저자 소개
▲출신: 가회면 복치동
▲1974년 대기초등학교 8기 졸업
▲1977년 가회중학교 23기 졸업
▲1980년 진주고등학교 50기 졸업
▲1987년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92년 공학박사 취득
▲1992~199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근무(CDMA이동통신시스템 개발)
▲1995~현재 경성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