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娘 – 정개모 합천군문해강사
“홍랑” 얼핏 머리글을 보아서는 한낱 대중가요에 불과 하지만 이는 妓生 洪娘과 官僚 崔慶昌의 간절한 이별의 슬픔이 절절히 담겨 져 있는 노래이다, 실제 홍랑은 妓生(기생) 이름 이고 제목은 ”묏버들가“인데 곡목이 ”홍랑“으로 된 연유는 알 수가 없다 이 노래의 전말을 살펴보면 , 고죽 최경창은 이달, 백광훈 등과 함께 삼당시인 중의 한사람이자 조선 선조 재위 시 영광군수와 북평사를 역임한 관료이고, 홍랑은 함경도지방 홍원의 官妓(관기)이다, 1573, 10 경, 최경창은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보좌역인 북평사로 임명되어 현지에 부임 하면서 그곳 관료들이 주최한 연회 자리에 당연 홍랑도 합석하게 되었다, 마침 병마절도사께서 홍랑에게 흥을 돋우는 노래 한 수를 읊어 보라 명하자 홍랑은 마주보는 최경창을 몰라 보고 고죽 선생의 시를 좋아 한다며 그의 시 한 수를 노래 하였다, 이때 최경창은 34세 홍랑은 17세, 기생과 관료, 신분을 초월한 그들의 사랑은 부임한 첫날부터 그침 없이 짙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불가피 사정으로 최경창은 한양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쉬운 작별에 최경창을 뒤따라 함관령 주막에서 잠시 만나 시 한 수를 적어 드리고 헤어지게 되는데, 그때 적어준 순 우리말 시가 “묏버들가” 이고, 이를 한문으로 번역한 시조가 최경창의 飜方曲(번방곡)이다, 이는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원문 그대로 실려 있으며,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기도 하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 에게
자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홍랑(묏버들가)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운 난초 건네노니
이제 하늘 끝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함관령에 올라 옛 노래를 부르지 마오
지금도 청산은 구름과 비에 어둑하니. 최경창 (송별시)
위 “묏버들가”를 최근 모 교수가 편집하고 유명 음악인이 작곡하여 다시 대중가요로 태어난 ”홍랑“이다, 한편 홍랑과 최경창이 헤어진 4년 후 한양에 있는 최경창이 질병으로 투병 중이란 소문을 듣고 홍랑은 홍원을 떠나 7일 밤낮을 걸어 한양 도착한다 홍랑은 정성을 다하여 최경창을 낫게 하고, 다시 홍원으로 돌아갔으며, 9년후 최경창이 45세로 타계하자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 살이 를 시작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군의 劫奪(겁탈)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얼굴에 흠집을 내고 가장 먼저 최경창의 고죽집(孤竹集)등 유품을 조금도 훼손 없이 보전 하고, 전쟁이 끝나자 해주 최씨 문중에 孤竹의 모든 작품을 빠짐 없이 전수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해주 최씨 후손들은 최경창에 대한 홍랑의 애틋한 사랑을 결코 외면하지 못하고 엄격한 시대적 신분을 초월하여 할머니로 높이 공경함으로써 비석(詩人洪娘之墓)을 세우고, 최경창 부부 합장 묘 바로아래 홍랑의 墓(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