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여론마당(오피니언)

추석맞이 고향길 (2)-|독자투고|

윤병우

(이어서)
날이 밝아오자 부스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차례 준비를 한다. 제사를 지내는데 뭔가 순서가 잘못된 느낌이다.
“처음에 세잔을 하고 제주가 먼저 혼자서 절을 하는 것 아니야?”
“그런 것 같네요 ㅎㅎ”
장조카가 씩 웃으며 계면쩍어 한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장조카가 제주가 되었는데 제사를 지낼 때 마다 순서가 다르고 빼먹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제사를 지내는 도중 동생이 한마디 던진다.
“밥그릇과 국그릇 위치가 바뀐 것 아니예요?”
“아닌데, 예전에 형님께서는 분명이 밥그릇은 왼쪽에 국그릇은 오른쪽에 두시던데.”
내가 대답했다.
국그릇의 위치가 바뀌었느니 아니라느니 서로 설왕설래하다가 동생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찾더니 반대가 맞단다. 제사 법도는 집집마다 다른 것인데 돌아가신 형님께 물어볼 수도 없고 동생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가끔 제사를 지내다 보니 매번 제사가 새롭고 서툴게 느껴진다. 새삼 돌아가신 형님이 그리워진다.
제사를 지낸 후 제삿밥을 먹고 부모님과 형님 산소로 성묘를 나선다. 형제, 조카들 가족들이 함께 길을 나서니 큰 부대의 행군 같은 기분이다. 성묘를 한 후 산소 옆에 있는 밤나무 산에서 밤을 줍기로 했다. 평소 형수님께 일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해도 알았다고 해놓고는 그게 안 된다. 하기야 시골에 살면 죽지 않은 다음에야 일을 보고 그냥 있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형수님은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깨어나서 거의 정상을 되찾고 있다.
장갑을 끼고 밤을 줍는데 밤 가시가 장갑을 뚫고 손가락을 찌른다. 그래도 옛날 실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밤나무 아래를 기어 다니면서 밤을 주었다.
“뚝~, 뚝~”
여기저기서 밤송이 떨어지는 소리에 혹시 머리위로 떨어질까 겁이 난다.
잠시 후 “앗~” 하는 작은 조카의 비명소리가 저쪽에서 들린다. 밤송이에 머리를 찔렸단다. 밤송이는 예리하고 약간의 독성이 있어서 찔리면 오랫동안 따갑고 아프다.
서너 시간 밤을 줍는데 허리도 약간 아프고 목이 말라온다.
먼저 일에 꾀가 난 장조카가 엄마에게 얘기한다.
“목말라 죽겠는데 이제 그만합시다.”
그러자 둘째 조카도 한마디 거든다.
“고급 인력들이 이런 일을 하면 수지가 안 맞는데, 차라리 밤 값을 드릴테니 그만합시다.”
그렇게 말을 해놓고도 엄마를 생각하면 일을 끝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아들이다.
산이 비탈져서 알밤 포대를 옮기려면 지게로 져서 날라야 한다. 젊은 조카가 짐을 지겠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지게를 보니 내가 한번 져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 지게 가득 알밤을 지고 산비탈을 오르는데 호흡이 가빴지만 옛 추억에 젖어 즐거운 마음이 더 컸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까지 우리집은 아궁이로 난방을 했다. 그래서 겨울 방학이면 형님 형수님과 지게를 지고 황매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곤 했었다.
“부산 작은 아버지는 지게를 잘 지셨잖아요”
둘째 조카가 역시 선수를 알아 본다.
오후 늦게 부산으로 돌아오기 위해 형수님과 작별을 하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형수님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부산으로 돌아간다니 형수님은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싸주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 이것도 가자가라, 저것도 가져가라 야단이다.
형수님은 신문지로 소중하게 감싼 참기름 한 병과 볶은 참깨 한 봉다리를 가져와서 집사람에게 건넨다.
“형님 잘 먹을께요!”
집사람이 황송해 하며 받아 든다.
우리 형수님은 당신의 아들 못지않게 시동생들을 좋아한다. 시동생이 아니라 부모 자식 간과 진배없다.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고향의 햇살아래 바람을 가르며 차는 부산을 향했다.
“우리가 떠날 때 문간에 혼자 멍하게 앉아 계시는 형님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집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눈에서 습기가 느껴진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왜 그렇게도 슬픈지 나는 엄청 많이 울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그만큼 많이 울지는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 당시 친척 중 어느 분이 “옛말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이 보이는데 형제가 죽으면 하늘이 안 보인다고 했다”는 말을 했다. 큰 병을 앓은 것도 아니고 큰 몸살로 병원에 갔다가 2주 만에 형님이 돌아가시니까 그 슬픔이 감당이 잘 안되었다.
부모는 정신적으로 나보다 한세대 앞이기에 언젠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지만, 형제가 죽으면 자신의 옆구리가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향길은 언제 가도 정겹고 따스하다. 고향에 가면 내 마음은 어린 시절 그 때로 돌아간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는 귀천이 없고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고향은 나에게 언제나 어머니 품안이요 나의 스승이다. (끝)

윤병우 저자 소개
▲출신: 가회면 복치동
▲1974년 대기초등학교 8기 졸업
▲1977년 가회중학교 23기 졸업
▲1980년 진주고등학교 50기 졸업
▲1987년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92년 공학박사 취득
▲1992~199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근무(CDMA이동통신시스템 개발)
▲1995~현재 경성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