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수필|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2) – 이호석 수필가

(지난 호에 이어) 예나 지금이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잘못은 전혀 반성하지 못하고 제3, 제5공화국 탄생을 못마땅히 여기며 지금까지도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부른다.
당시 정치인으로 활동에 제약을 받았거나 특별한 이유로 탄압을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일상에서 독재 정치라는 것을 별로 느낄 수 없었고 나날이 부흥하는 나라를 보면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더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지금의 풍요로움이 제3공화국에서 쌓은 훌륭한 업적의 결과라는 것과 제5공화국에서 그 풍요를 더욱 두텁게 한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군(軍) 출신들이 정치를 하였다고 해서 무조건 독재자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국민의 기본 의무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국가 발전에도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평생 정치판에서 호의호식한 사람들이 집권한 정권이 국가의 기반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며 더 심한 독재를 한 경우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제5공화국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탄생한 후 “역사 바로 세우기”란 정책을 시행하면서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하여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분열케 하였다. 지나간 역사는 어떠한 힘으로도 새로 고칠 수가 없다. 어느 정권이라도 반드시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그 공과를 바르게 기록하고, 큰 과오(過誤)가 있으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른 정치라고 생각한다.
또 그 뒤 어느 정권에서 시행한 “적폐 청산”이라는 정책도 다수 국민으로부터 공감받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앞 정권의 공과(功過) 중 공은 숨기고 과에 대해서만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과도한 처벌을 일삼았고, 자기들의 정권에서 생긴 많은 적폐는 스스로 청산하거나 사과 한마디 없이 국민에게 내로남불이라는 용어를 더욱 되새기게 하였다.
그동안 집권자들이 부정부패 척결, 역사 바로 세우기, 적폐 청산 등 그럴듯한 용어들을 남발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고 노력하였지만, 다수 국민은 이러한 정책들을 순수하게만 보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 대부분이 정적(政敵)에 대한 원한 풀이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승자의 뜻대로 역사를 기록하던 조선시대가 아니다. 역대 모든 정권의 공과는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은 고치고,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집권 세력이나 정파에 따라 앞 정권에 있었던 사실을 자기들 입맛대로 고쳐 기록하거나 가르쳐 학생들과 후대에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은 국가의 뿌리를 흔들고 국민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는 아주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에 가장 혐오스러운 두 집단을 보고 큰 실망을 하였다.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하나는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채 하지만, 날이 갈수록 명예, 재물, 권력욕 등 끝없는 탐욕으로 기득권만 키우고 있고, 패거리 정치를 하면서 국가의 근간인 법치를 마음대로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 집단은 판사들이다. 법과 양심은 내팽개치고 사상에 편중된 판사도 있고, 사심을 가지고 국민이 이해 못 할 궤변을 늘어놓으며 엉터리 판결을 하는 판사도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위 두 집단이 국가의 근간을 유지하는 가장 훌륭한 엘리트 집단으로 생각하며 존경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몰상식한 행위를 예사로 하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필요악이란 서글픈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런 푸념을 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나의 생각 따위에는 관심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이 무심한 세월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 언제 종말이 오더라도 이 세상에 와 일장춘몽의 무대 위에서 희로애락의 계곡을 힘겹게 넘나들며 그런대로 잘 살았노라고 소리치며, 자랑스럽게 갈 심상(心想)이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 유수(流水)처럼,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그리고 무한한 자연에 비견한 인생을 티끌과 초로(草露)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수식한 것도 정말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아둔한 나의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심한 세월과 인생 종말이란 달갑잖은 길목에서도 상스럽거나 원망스러운 말 한마디 없이 모두 시어(詩語)처럼 낭만적인 비유 말을 남겨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표현한 선대들의 지혜에 고마운 마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