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반난(吃飯難) – 임장섭 前합천교육장
내가 어렸을 때 인사말은 이랬다. 어른들을 만나면 “아침 잡수셨습니까”, “점심 드셨습니까”. 그 시절은 끼니를 걱정하며 묻고 답하는 일이 일상적인 인사였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도 ‘식사하셨어요’, ‘밥은 먹었어’,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등 이런 인사말이 오간다. 밥은 생존이고, 밥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여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먹어야 산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근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밥 먹고 살기 힘들다’, ‘이래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장사가 너무 안 돼 라면 먹기도 힘들겠어’라는 말들을 자주 듣는다. 고금을 막론하고 필부필부(匹夫匹婦)는 그야말로 식이위천(食以爲天)이다. 먹고사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뜻이다. 인생살이는 먹고 살기에 달려있다. 삶을 위한 노력이 먹고 살기 위한 것이다. 농사를 짓는 일, 취직을 하는 일, 장사하는 것도 모두 먹고 살기 위함이다.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라는 말이 있다.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먹는 이치를 아는 데 있다’는 것이다. 쌀 한 톨이 만들어지는데 하늘과 땅, 햇빛과 바람, 비와 이슬 등 우주가 참여한다는 의미다.
‘먹고산다’는 한 단어다. 먹는 일과 사는 일은 불가분 관계라는 뜻이다. 밥을 잘 먹는 일이 잘 사는 일의 기본이다. 먹을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굶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넘겨짚어 버리면 영원히 안부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밥 먹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가족을 ‘식구(食口)’로 표현했다. 즉 밥을 같이 나눠 먹는 입들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이처럼 친근하고 사랑이 배어 있는 말이 있을까.
우리는 화합과 결속을 위한 동질감을 나타낼 때 식구, 가족이라는 말을 흔하게 사용한다. ‘화(和)’자를 파자해보면 벼 화(禾)에 입 구(口)이다. 곡식알을 함께 입으로 넣다 보면 화목해진다는 뜻이려니, 다들 밥 우정, 밥 정치, 밥 사업, 밥 사랑을 한다. 정(情) 중에 밥 정만 한 게 어디 있다던가.
우리 주변에 밥에 대한 말들이 많다. 안부를 물을 때는 “밥은 먹고 지내나”, 고마움을 나타낼 때는 “나중에 밥 한번 먹자”, 아플 때는 “밥은 꼭 챙겨 먹어”, 한심하다 싶을 때는 “저래서 밥 벌어먹겠어”, 범죄를 저질렀을 때면 “콩밥 먹지”, 무언가 잘해야 할 때는 “밥값은 해야지”,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는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 아이 혼낼 때 “너 오늘 밥 없는 줄 알아”, 직장에서 인기 있는 사람은 “밥 잘 사주는 사람”, 나쁜 사람을 평할 때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사람”, 좋은 아내로 평가하는 기준이 “밥 잘 차려주는 사람”, 공무원을 비꼴 때는 “철밥통” 등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밥’이면 다 통하는 듯하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살아야 하니, 밥벌이와 밥값을 해야 하는 것이 암묵적 약속이다. 사람을 제대로 높이 봐주는 사람이 밥값을 잘하는 사람일 거다.
쌀 이야기는 한국인 고난 극복의 대서사였다. 턱없이 식량이 부족했던 60, 70년대, 정부는 쌀 대신 보리와 밀을 소비하자는 혼⸱분식 장려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을 검열하기도 했다. 혼식이면 O표, 쌀밥이면 X표를 하는 장부가 있었다. 쌀밥 도시락을 지참한 학생은 담임교사로부터 혼이 났으니, 지금으로서는 웃을 일이지만 그 시절 꾸중을 듣던 부잣집 친구를 보고 ‘나도 저렇게 혼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쌀밥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인류의 역사란 어찌 보면 허기와의 투쟁이었다. 배고프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 요즘도 음식은 넘쳐나고 인간은 배고프다. 인류는 필요량보다 30% 이상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있지만, 8억 명이 넘는 사람들은 여전히 굶주린다. 우리에게는 ‘보릿고개’라는 게 건재했다. ‘태산이 높다 한들 보릿고개만 했을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이제 보릿고개를 넘어 세계 6대 강국이 되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함께 뭉쳤다. 가난을 번영의 연료, 풍요를 향한 동력으로 삼았다. 통일벼를 심어 쌀을 증산하고, 혼분식하여 절약하며, 밥 먹고 살기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가서 일한 대가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는 말은 우물물을 마실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 시절의 지도자와 근대화에 노력한 이들을 잊는 것은 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흘반난(吃飯難)이라는 말은 밥 먹고 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슬프고 견디기 힘든 게 굶주림인데, 힘든 삶도 밥을 먹으면 시름이 사라진다. 작금에 밥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친다. 가계가 몇 집 건너 비어 있다. 청년들이 행복하고 빛나는 삶을 누려야 할 시기에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가 12만 명이 넘는다. 2024년 통계를 보면 OECD 국가 중 부모와 사는 캥거루족이 가장 많은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성인이 된 자녀 중 314만 명이 여전히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다. 실업자 중 20%가 Z세대이고, 20대 실업자 비율은 3년째 OECD 국가 중 1위다. 한때 산업화의 주역이던 7, 80대가 이제 관심 밖의 잉여세대가 된 채 밥벌이하겠다고 이리저리 뛰고 있다.
우리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데는 위정자들이 한몫하고 있다. 그들은 말로는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고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는 뒷전이다. 정치의 본질은 백성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해야 하는데, 그들은 ‘익은 밥 먹고 선소리와 선 짓’들을 한다. 서로 악수도 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이 없다. 그야말로 밥맛 떨어지게 하고, 밥 먹고 살기 힘들게 하고 있다. 국민은 밥 먹게 해달라고 절규하는데도 그들 눈에는 백성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제주도에는 이런 방언이 있지 않는가. “살남시믄 살아지매” — 살다 보면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