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마지막 모습
문경자
논설위원
아이구 콩나물 대가리를 그렇게 버리면 되나, 라는 시어머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떨어진 콩나물 대가리를 주워 담았다. 돌아가신 어머님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어머님은 시골에서 혼자 농사를 지어서 가을이면 먹거리를 자식들에게 보내주었다.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쑥을 뜯어 오면 용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뜯어온 쑥을 깨끗하게 씻어 소쿠리에 담아 들고 가시다가 넘어져 엉덩이 쪽을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모셔왔다.
서울에 와서 우리동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손마디 하나만큼 엉덩이 쪽에 금이 갔다는 의사의 말에 바로 입원을 하였다.
보호자로 병원에서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었다. “네가 맏며느리 노릇 한다고 고생이 많네.”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얼마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 모습도 많이 수축해져 갔다. 잠깐 집안 일을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얼른 갔다. 혹시 어머니가 위독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쿵쿵 방아를 찧었다.
의사는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어머님의 상태가 많이 나쁘다는 것이다. 후유증으로 인해 온 몸이 노란 계란을 풀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입원실 창문을 통해 보니 무더운 날씨에 저녁 무렵 노을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의사는 나에게 어머니가 얼마 못 살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수축해진 어머님의 모습이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무섭게 보였다. 의사는 가족들과 의논을 하라며 병실 문을 열고 나갔다. 연세가 72세, 아직은 더 사셔야 할 텐데 마지막 모습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어머님의 눈을 보니 예전과 다르게 보였다. 속 눈썹은 젖어있고 축 처진 눈매가 세상을 포기한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는 더 작아 보였다.
용산에 있는 중앙병원으로 옮겨갔다. 담당의사는 수술을 해보자고 하였다. 7시간이 걸리는 콩팥 대 수술이 끝났다. 수술대 위에 누워 계시는 어머님 모습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고무호스를 연결시켜 소변을 보는 장치를 해놓았다. 대변은 내가 고무장갑을 끼고 꺼내야 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은 했지만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병원에 입원을 하신지 며칠이 지나자 어머님은 짐작을 하셨는지 링거주사 바늘을 위로 뽑았다. 피가 흘렀다. “이제는 나를 시골로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죽어도 시골 집에서 돌아가시겠다고 하는 말을 했다.
병원에서 응급차로 어머님을 모시고 시골로 내려갔다. 가족들이 모여 방문 앞에서 잠을 자며 어머님을 지켰는데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지킨다고 아무도 모르게 일어나 고방으로 가서 농약을 찾았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분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심을 하였다. 다행히 옷에 피만 묻어있고 아무 일없이 지나갔다. 다음날은 링거를 잘 못 빼어서 옷이 피로 물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는 더 신경이 쓰였다. 다 매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직장 때문에 남자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 갔다.
나는 동서와 같이 시어머님 병수발을 하였다. 맏며느리인 나에게 어머니 곁에 누워 부채질이나 하라며 쳐다보았다.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시아버지와 한번도 싸움을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는 등 입이 마르면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신이 나서 끝이 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너는 농사일을 하는 집으로 시집을 와서 고생이 많았다.”고 하셨다. 어머님은 네가 옆에 있어 편안 하구나 하시며 졸음이 오는지 눈을 감으셨다.
시골의 여름 밤은 캄캄하고 어두워 무서움이 더했다. 밤이면 어머니 곁에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워 작은 방에서 몸을 오므리고 잠을 잤다.
어머님은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숨을 쉬는 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목에서 가래 끓은 소리가 들려 아무래도 돌아가시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셋째 동서는 무섭다고 몸을 떨며 밖으로 나가고 나도 따라 나와 집안 아재를 불러오기 위해 들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웃 분이 “너거 시어머니 숨을 거두었다.” 고 했다. 호흡이 없고 심장이 정지된 상태이고 뇌의 활동이 중지되었다. 눈물이 나와 어머님을 울먹이며 계속해서 불렀다. 대답이 없다. 어머님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머님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만져보았다. 계속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려 내렸다. 집안 어른들이 시키는 데로 향을 담근 물로 어머님의 얼굴과 목을 닦아드렸다. 따스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일만 하시던 손을 닦고 손톱 사이에 까맣게 낀 흙을 깨끗하게 해드렸다. 작은 두 발은 뼈만 앙상하여 부채 살처럼 가는 발가락이 삶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70평생 일만 하시다가 눈을 감은 모습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아주 편안함 그 자체였다. 어머님이 미리 준비해둔 명주로 만든 수의를 입혀드렸다. 저고리 섶은 콧날처럼 뾰족하고 치마는 나비의 날개를 연상케 하였다. 버선코는 파리가 앉았다가 미끄러지겠다. 어머님의 바느질 솜씨가 얼마나 야무지고 날렵한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얼굴색은 뽀얗다. 아이구 우리 어머니 어쩜 이렇게 고울까! 17살에 시집오던 꽃 각시 같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죽은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집안 어른들은 베개를 만들어야 한다며 농 안에 넣어둔 삼베를 꺼냈다. 어머님의 곁에서 바느질을 하는 것도 마지막이며 내가 만들어 준 베개를 베고 천년 만년 편안하게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을 그려보았다.“아이구 야무지게 바느질도 잘 하네.” 미안한지 어른들은 칭찬을 하였다. 마무리를 하여 파마한 어머니의 머리를 들고 베개를 베어드렸다.
남자분들이 들어와 나무로 만든 관속으로 고이 모시고 화장지를 삥 둘러 넣었다. 관 뚜껑을 닫아버렸다. 마지막 모습에 영영 이별을 하였다. 자식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관을 잡고 어머니를 애타게 불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인자한 모습을 하고는 내 손을 잡아 주실 것 같다. 손자들 재롱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만 하신 어머님.
돌아 가실 때도 자식들 욕되게 할까 봐 상여도 읍에서 제일 큰 것을 주문하라 하셨다. 눈을 감는 순간에도 당신의 아픔보다 죽음보다도 자식들 걱정 하시던 어머님. 그 모습이 멀어져 가는 순간이었다.
읍에서 주문한 꽃상여가 도착하여 마당 한 가운데 놓였다. 관을 들고 나온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영영 이별을 하는 어머님의 관을 어루만지며 통곡을 하였다. 흰 두건을 쓴 상두꾼들이 우리를 밀쳐내었다. 꽃상여를 메고 마당을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가는 상여를 바라보았다.
들길을 따라 멀어져 가는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