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대표 묘제 양촌 권근 삼대묘소-장풍득수(藏風得水) 이야기(96)
진대수
풍수가 겸 수필가
(016-624-3694)
조선 초기 문신 학자로 역사와 문중을 빛낸 양촌 권근 삼대 묘소. 회룡고조의 와우혈 중 누운 소 유방에 용사한 명당으로 유명하다. 충북 음성군 생극면 방축리 능안 마을 주변에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양촌(陽村) 권근(權近), 중간에는 둘째 아들 권제(權嗇), 맨 아래에 손자 권람(權擥)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앞쪽으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수리봉에서 뻗어 나와 힘차게 북으로 내달리던 용이 다시 남으로 몸을 틀어 조산(祖山) 수리봉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다. 맨 위에 양촌의 묘소에서 가장 크게 결지하고 남은 힘이 좌우로 몸을 틀면서 권제, 권람의 묘소 뒤에서 두 번을 더 결지한다. 큰 혈은 보통 산줄기마다 한 자리만 있는 법인데, 이곳에는 세 자리나 있으니 매우 특이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이곳은 풍수지리가들에게는 필수의 관산(觀山) 코스이다. 천하에 보기 드문 명혈이기 때문일까?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지명연기설화(地名緣起說話)가 전해온다. 이곳에 선생의 묘를 쓰던 날의 일이란다. 천광 작업을 하는데, 동자승이 나타나 바가지를 내밀며 이곳에서 곧 솟구칠 물을 달라는 것이었다. 누구의 심부름이냐고 묻자, 나무 아래 쉬고 있는 노승을 가리켰다. 동자승을 꾸짖어 물리치고 작업을 계속하자, 갑자기 마실 수 있을 만큼 맑은 물이 펑펑 솟아나는 것이었다. 큰 낭패를 만난 문중(門中)의 선비들은 그때서야 나무 아래에 쉬고 있던 노승이 비범한 인물임을 깨닫고, 그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물이 솟아날 걸 미리 알고 있었으니, 이를 해결할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가득 떠온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난 노승은 수리산을 가리켰다. 이 물은 저 산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것이니, 그 꼭대기 좌우에 연못을 파면 물이 곧 그치리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노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리산 꼭대기 좌우에 두 개의 연못을 팠는데, 그 후 혈에서 솟던 물은 감쪽같이 그치고, 드디어 양촌 선생을 그 자리에 편히 모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꼭대기에 연못을 팠던 그 산의 이름을 ‘수리산(水移山=물이 옮겨간 산)’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수리산 꼭대기에는 연못 두 개가 있는데, 해마다 권씨 문중에서 날을 잡아 연못을 치우고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추원재(追遠齋)입구 마당에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上列次分野之圖=하늘의 현상을 차(次)와 분야(分野)로 나누어 차례로 늘어놓은 천문도를 말한다.)를 필자도 가본 곳이지만 비석에 올린 것을 본 후 지금도 생각하면 눈에 선하다. 하늘의 별 자리를 각각의 위치에 맞추어 일목요연하게 배치해 놓은 도표이다. 양촌 선생 당시의 천문에 대한 관심과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