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싣고 – 문경자 수필가
가을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내린다.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과 그냥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빗방울. 손바닥을 펴서 내리는 비를 확인해 본다. 이쯤은 괜찮다. 모두 상관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달린다. 모두 그 소리를 들으며 남의 일이 아니라 여기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폐지를 주워서 싣고 리어카를 끌며 차도를 지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슬아슬하다. 보는 사람들이 더 가슴을 졸이며 무사하기를 바란다. 늙고 초라한 모습을 보며 한때는 날렸을 청춘은 온데간데없이, 낡은 리어카에 싣고 맑은 가을 하늘처럼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측은하게 바라보는 인파 속을 아무렇지 않게 뚫고 가는 모습은 힘에 부쳐 보였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벌어야 먹고살 수가 있으니 한창 잘나갈 때처럼, 지금도 용기 있게 살아간다.
길을 가다 보면 분리수거 한 것을 모아둔 장소에서 돈이 되는 것들을 주워 리어카에 싣는다. 말끔하게 그곳을 정리도 해주었다. 상자나 병이나 종이가 있는 곳은 웃음을 싣고 가는 일터요, 돈을 벌 수 있는 그들의 회사다.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 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노력해서 버는 돈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남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사회의 부작용은 불안한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자그마한 체구에 다리를 절며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내다 팔아 손주들에게 맛있는 과자와 장난감을 사주었다. 우리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해 주며 업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놀아 주었다. 할아버지는 소일거리를 찾아야 한다며 주야로 그런 일을 조금 한 적이 있었다. 아는 분들은 할아버지가 자기 동네서 박스를 들고 가는 모습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말을 내게 전해주었다. 동서가 한번은 나에게 “형님, 할아버지께서 쓰레기를 주워 들고 가는데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못살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용돈을 드리지 않아서도 아니다. 아버지는 그 일 때문에 할아버지와 크게 다투었다. 가족들이 모두 말렸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자식 얼굴에 먹칠하는 것도 아니니 걱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떳떳하게 심심풀이로 하는 거니 모두 가만히 있거라.”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말릴 수도 없고, 한 번 더 간섭을 하다가는 불 같은 성격이 나오면 천하장사도 못 말린다. 할아버지는 고물상에 내다 팔아서 번 돈을 장판 밑에 쫙 깔아 놓고 “깅자 추자야 뭐 묵고 싶노? 하래비가 맛있는 거 사주께.” 하며 그때 웃음 띤 할아버지 얼굴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그 후에 웃으며 할아버지와 잘 지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그런 할아버지를 보면 지금도 생각이 난다. 나는 결혼도 하고, 동생은 직장을 다녔지만 어릴 때 키운 손녀로 생각하며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 불편한 몸으로 손녀들이 엄마 없이 자라는 것을 가슴 아파하셨다. 81세로 세상을 떠나신 해가 수십 년 바뀌었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글을 쓰니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갱자야 시집가서 잘 살아라’ 하시던 따뜻한 말씀이 귓가에 들려왔다.
텔레비전을 보면 농촌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의 생활상을 많이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부모 없이 자란다는 것은 그런 환경에 처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농사일을 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자식들의 마음도 알 것 같다. 농사일을 말려도 끝까지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그 일도 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사계절 거두어들인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서 택배로 보내면 자식들은 “아부지 어무니 잘 묵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그보다 좋은 말이 어디 있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의 말은 웃음을 주고 아픔은 사라지게 만들었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돈 주고 못 사는 것이 많지만 특히 웃음은 살아가는 동안의 보약 역할을 한다. 분리수거를 해서 들고나갔다. 지나가는 할머니는 그곳을 보더니 하하 웃었다. 내가 볼 때는 웃음이 나올 분위기가 아니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돈이 되는 것들이 그대로 쌓여 있네.” 정말 할머니는 그보다 더 좋은 행운의 복권은 없다는 듯이 보였다. 나는 캔을 모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이것을 들고나오면서 꼭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가져갔으면 하고 바랐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얼른 받아서 실었다. 딸그락거리는 빈 캔의 소리가 멀어져 갔다.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려 나도 기분이 좋아 또 웃었다. 순간적인 행복으로 웃는 모습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도 웃게 만드는 마술이다.
할아버지의 행복한 마음이나 할머니의 행복한 웃음이나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비록 그런 일을 하고 있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이다. 많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온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길가에 지나가는 리어카를 보면서 삶의 조건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눈높이는 다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주변에는 웃을 일만 생긴다. 찌푸린 가을 하늘 비도 그치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며 웃는다. 세상이 아름다운 무지개가 있는 반면 먹구름도 끼일 수 있다. 웃음을 싣고 열심히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끌고 가는 리어카에 가을비는 그치고 단풍이 날아와 앉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