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강은 흐른다 (53) 풀 위의 잠 – 강배훈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한다. 이토록 포근하고 푸른 잠이다. 이 푸르름 속에서 그 어느 곳보다 고향의 냄새가 물컥 베여있는 내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 시절의 골방과 동물원과 춘화, 그리고 무수한 책들, 내가 죽였던 독사 한 마리가 선명히 떠오른다. 오랫동안 독사가 군림한 나라였다. 웃통을 벗은 청년이 탱크 앞에서 저지를 하는 모습의 역사 사진을 우연히 보고 나는 내가 아직 대학 다닐 적의 그 붉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런 나라에 여태 나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내 고향 사람이라는 것은 불그스레한 쇠파리들이 내 귓가를 어지럽히는 것만큼이나 두터운 암전이 일어 아찔해져간다.
선명한 영상들이 햇빛 때문인지 감긴 눈 사이에서 붉게 비친다. 손등을 얼굴 위 눈언저리께 올려본다. 따가움 속에서도 애써 푸른 잠을 청한다.
손국복 시인의 시평|
5·18 군사 쿠데타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역사적 사건이다. 소설 속 화자인 주인공 강준호는 고향을 합천으로 둔 대학생으로 5공 시절, 성난 민심의 동요와 태생적 애향심 때문에 시대의 갈등을 온몸으로 고뇌하고 있다.
민의를 따르자니 고향의 정서가 두렵고 고향을 앞세우자니 민주주의 이념이 손절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적 갈등 앞에 청년의 마음속은 까맣게 멍들어 간다.
부모의 하명을 따르느냐 조국을 배반하느냐? 누구나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쉽게 결정 못할 일임이 분명하기에 이 주인공 청년의 처신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못 둑에 드러누운 주인공은 차라리, 스르르 눈 감고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푸른 잠에 빠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강배훈 작가는 합천 출신의 청년 소설가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진중문예 해군참모총장 소설 대상’과 ‘5월 문학상’에 당선된 신예 작가이다. 지금 합천에 거주하면서 합천문협 중심 일꾼으로 와신상담 대작을 준비하고 있다.